뭐 이런 운동이 있지?
대학 동아리에서 운동을 했다. 미식축구 선수로 활동했다. 운동은 자신 있었다. 힘으로 하는 것은 자신 있었다. 큰 공을 다루었는데 '작은 공이 뭐 문제이겠나' 싶었다.
첫번째 홀 티샷을 하기 위해 섰다. 어드레스를 했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연습장에서 연습했던 것들이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어드레스, 그립, 스윙리듬, 볼의 위치 이런 것들이 기억나지도 않았다. 그냥 휘두를 뿐이었다.
생크다. 해저드로 볼이 날아간다. OB란다. 탑볼, 생크, 훅, 뒷땅... 할 수 있는 실수는 다 했다. 정신을 못차릴 지경이었다. 동반자들에게 미안하니 볼을 찾으려 뛰어다녔다. 다음 볼을 치려고 어드레스를 하면 숨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연습 스윙을 하는데 잔디를 스치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아무리 힘을 뻬도 스윙이 떴다. 무한정 연습 스윙만 할 수 없다. 자신이 없어도 스윙에 들어간다. 역시나 탑볼이다. 또르르 굴려서 앞에 떨어진다. 홀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먼지... 동반자들보다 2배씩 볼을 칠 수 밖에 없다. 정신없이 4시간을 뛰어다니보니 어느새 18홀이 끝났다. 첫 필드 경험이었다.
점수는 엉망이었다. 그래도 즐겁게 첫 라운딩을 했다. 평소 골프에 대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배운 것이 많았다.
첫째, 동반자를 위한 배려가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호스트였던 회사 선배는 라운딩하는 후배들에게 골프우산, 골프공, 행운의 2달러를 선물했다. 기분좋게 라운딩을 시작하라는 배려였다. 후배는 얼린 생수와 간식을 준비해왔다. 다른 동료는 천원짜리 복권을 36장 준비해서 홀마다 2장씩 상품으로 전달했다. 내기를 하지 않아도 서로 웃으면서 즐겁게 라운딩을 했다. 혼자 즐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즐기는 것이 골프임을 알았다.
둘째, 결과보다 과정을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 점수가 잘 나오면 좋겠지만 항상 그럴 수는 없다. 어떤 골퍼의 경우에는 볼이 맞지 않으면 짜증을 내고 라운딩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드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좋은 점수를 내겠다고 볼만 죽어라고 쫓아다니면 4시간이 아까울 것 같다.
첫 라운딩 동반자들이 훌륭한 분들이어서 그런지 즐겁게 운동을 했다. 라운딩하는 과정 자체가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평소 회색빛 건물에서 일하다가 오랜만에 초록빛 자연을 만끽할 수 있었다. 라운징 동반자들과 평소 못한 이야기들도 나누었다. 동반자가 잘 치면 힘찬 목소리로 "굿샷!", "나이스 온!"같은 응원을 하면서 서로를 격려했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라운딩하는 과정을 즐기는 것이 골프라는 것을 경험했다.
셋째, 욕심을 버리는 것이 어렵더라. 골프는 '힘을 빼고 치라'고 한다. '욕심을 버리라'고 한다. 귀에 따갑도록 들었다. 필드를 나갔는데 욕심이 절로 생겼다. 드넓은 필드를 보니 손에 힘이 절로 갔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동료를 생각하면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욕심을 부릴수록 볼은 맞지 않았다. 직장생활도 삶도 욕심을 부릴수록 의도한 바로 되지 않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지난 20년 직장생활 내내 그렇게 부담스러웠던 골프였다. 미루다 미루다 이제서야 머리를 올렸다. 한 번 쳐보고 '생각보다 좋은데?'라고 느꼈다. 글친구 영감 작가님는 '쳐봐야 찬양, 비판, 포기도 할 수 있다'라고 조언해주셨는데, 쳐보니 찬양쪽으로 마음이 돌아서는 것 같다.
오늘도 연습장으로 향한다. 뻣뻣한 허리로 엉거주춤 스윙을 하지만 나이 50에도 새로 배울 수 있음에 감사하며 연습을 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