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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 Feb 19. 2022

중국 발령이 감사한 이유, 10가지

중국 주재원으로 발령이 났다.


주재원 발령지로 선호하는 지역이 있다. 유럽, 미국, 호주와 같이 거주 환경이 좋은 곳으로 가고 싶어 한다. 인도, 브라질, 아프리카 같은 곳은 주재원 선발이 어렵다. 인지상정이다. 선진국, 편한 곳으로 가고 싶어하는 것이다.


원래 중국은 '3대가 덕을 쌓아야 갈 수 있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로 직원들이 선호하던 지역이었다. 중국이 한국 직원들의 급여를 준다고 할 정도로 판매가 잘 되던 시절 이야기다. 중국 주재원 출신들이 대접받았다. 고과와 승진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중국 근무지는 한국과 가깝다. 집 안에 일이 있으면 주말이라도 한국을 다녀갈 수 있었다. 생활환경도 좋았다. 같은 아시아권이어서 음식이 비교적 적응하기 쉬웠다. 세계 3대 요리라는 중국 요리를 마음껏 경험할 수 있었다. 자녀들은 국제학교에서 영어와 중국어 환경에 노출되는 장점이 있었다.



최근에는 중국이 기피하는 발령지가 되었다. 한국기업이 중국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다. 삼성, LG를 비롯한 주요 기업들이 철수하는 분위기이다. 전체적으로 한국기업의 중국 법인 성과가 좋지 않다. 중국 주재원을 기피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김 부장도 며칠을 생각했다. 왜 중국을 가야 하는가? 왜? 왜? 왜?라고 수 십 번을 되뇌었다.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신뢰할 수 있는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리고 중국 주재원 발령을 받아들였다.



중국 주재원 발령이 감사한 이유 10가지


물론 모든 것이 만족스럽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중국법인 사정이 좋지 않다. 여러모로 환경이 불편하다. 열악한 숙소, 통신기기 미지원, 주재원 차량 노후화 등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그래도 감사하게 된다. 없다면 감사를 만들면 된다. 중국으로 주재원 발령이 나서 좋다.



첫번째, 어려운 곳에 기회가 있다.


진정한 실력은 고난이나 어려움에서 드러나는 법이다. 너무 흔한 말이지만 '위기가 곧 기회다'. 법인이 평탄하게 운영될 때는 실력을 보여줄 기회가 많지 않다. 내가 잘하지 않아도 프로세스에 따라 흘러가기 때문이다. 어려운 환경에서 실력을 보여줄 기회가 오는 법이다. 본사와 후배들도 김 부장이 중국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지켜보고 있다. 기대를 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중국 고사 성어에 '새옹지마(塞翁之馬), 전화위복(轉禍爲福)'라는 말이 있다. 사람의 일은 어찌 될지 모른다. 중국법인의 미래도 어찌 될지 모른다. '이제 바닥이니 위로 치고 올라가는 일만 남았다'라고 생각하면 감사한 일이다.



두번째, 새로운 길을 열어간다.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답설야중거 불수호란행)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어지러이 함부로 가지 말라.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금일아행적 수작후인정)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취는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터이니
- 서산대사


김 부장이 가는 포지션은 어려워진 중국 법인 구원투수 역할이다. 이전에 법인에 없던 포지션과 직무를 만들어서 왔다. 변화와 혁신을 주도해야 한다. 법인의 비전을 세워야 한다. 그동안 누가 해보지 않은 일이다. 의미 있는 족적을 남긴다면 전혀 새로운 일들이 탄생할 것이다. 내가 가는 길이 후배들에게는 이정표가 될 수 있다.


앞에 하얀 눈밭이 펼쳐져있는 것 같다. 아직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내가 가는 발걸음이 하나씩 눈밭에 새겨진다고 생각하면 어린아이마냥 설렌다. 감사한 마음으로 한 걸음씩 내디뎌야겠다.



세번째, 경영자가 되어 일한다.


한국의 조직 운영은 안정적이다. 체계화된 구조 안에서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한국에서는 수많은 직원 중의 한 명이었다. 김 부장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적었다. 운신의 폭이 좁았다.


중국 현지에서 경영자 시각으로 일하는 것이 가능하다. 한국에서는 부장급이지만 중국 현지에서는 임원의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일하게 된다. 누가 시켜서 일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일을 만드는 것이다. 내가 결정하고 판단해서 일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신난다. 평소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마음껏 해볼 수 있다. (물론 책임도 막중하다.)



넷째, 딸아이가 만족하니 감사하다.


어느 날 딸이랑 멕시코 주재원 시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딸아이는 국제학교 생활 경험을 만족스러워했다.

딸 아이 : "아빠! 한국에 와서 영어공부하니 잘 안돼요. 다시 해외에서 국제학교에 다니면 안돼요?"
김 부장 : "아빠는 이미 주재원 다녀와서 기회가 없어..."
딸 아이 : "다시 해외에서 공부하고 싶어요"

딸 아이가 간절하게 원했나보다. 거짓말처럼 주재원 기회가 찾아왔다. 딸아이는 설레는 마음으로 중국 입국을 기다리고 있다. 딸바보 김 부장이다. 딸 아이의 미소를 보니 감사한 마음이 충만해진다.



다섯째, 아내에게 소심하게 큰소리치다.


아내와 결혼하기 전 김 부장의 자존감과 오만은 하늘을 찌를 듯했다. 회사에서 열심히만 하면 성공하는 줄 알았다. 금방 임원이 되고 경영진도 되는 줄 알았다. (정말 세상 물정 모르던 시절이었다.)

김 부장은 당시 아내에게 프러포즈하면서 당당하게 큰소리쳤다.

"나랑 결혼하면 후회하지 않을 거야!"
"오빠만 믿어! 나는 네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잘 나갈거야!!!"

이불킥하고 싶을만큼 치기어린 발언이었다. 얼마 전에 아내가 항의했다. '잘 나간다던 그 때 그 사람은 어디로 갔냐고...'

나는 미안했다. 소심한 목소리로 아내에게 항변했다.

"주재원 2번 나오지 않았느냐! 네가 상상하는 것보다 1번 더 나왔으니 약속은 지킨 것 아닐까?"


'어?' 의외로 아내가 수긍했다.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내는 해외생활을 만족스러워하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에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아내는 중국 발령에 100% 찬성이다. 중국 생활을 기대하고 있으니 참 감사한 일이다.



여섯번째, 재테크에서 한 숨 돌리다.


한국에 있는 동안 부동산 광풍이 불었다. 역대급 상승률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매일매일 부동산 사이트를 보는 것이 일상이었다. 부동산 투자 성공경험담을 들으면서 박탈감을 느꼈다.


할 수 없이 김 부장은 막대한 '지각비(늦은 부동산 투자)'를 내고 겨우겨우 1주택자가 되었다. 영끌이라는 것을 했다. 보험, 청약예금까지 끌어모아 대출을 받았다. 사실상 은행 소유의 집이다. 대부분의 자산이 부동산에 묶여있다 보니 현금이 부족했다. 월말이면 통장 잔고가 심장을 조여왔다. 월급일 전에 몇 만원만 남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전세금을 빼고 중국으로 오면서 숨통이 트였다. 참! 사람 마음이 간사하다. 통장에 잔고가 생기니 마음이 편하다. 감사하다. 중국이 김 부장 통장 잔고를 살렸다.



일곱번째, 중국어를 현업에서 공부하니 감사하다.


김 부장은 외국어 공부를 좋아한다.


「영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이탈이아어, 프랑스어, 독어, 인도네시아어, 중국어」의 머릿글자다. 김 부장이 구사하고 싶은 언어들이다. 평생에 걸쳐 천천히 친구삼아 공부하고 싶은 언어다. 중국어도 언젠가는 공부하리라고 생각했었다. 다만 가장 마지막에 배우리라 생각했다. 선뜻 손이 가지는 않았다.


중국 발령이 나면서 중국어는 취미가 아니게 되었다. 생존이 되었다. 중국인들과 일하면서 중국어를 구사해야 한다. 중국어 공부 몰입도가 장난이 아니다.


배운 중국어는 사무실에서 바로 한번 써본다. 중국인 동료들은 따뜻한 마음으로 김 부장의 서툰 중국어를 들어준다. 어눌한 중국어 표현과 성조는 바로 수정해준다. 그 상황이 뇌에 쏙쏙 박힌다. 상황을 겪으면 뇌에 장기기억으로 간다. 바로 내 중국어가 되고 있다. 중국에서 '언어 취미 한 조각'을 채울 수 있게 되었다. 언어를 배우게 되니 참 감사하다.



여덟번째, 살아가는 모든 것이 글감이다.


중국 직원 & 한국 직원들이 모여 회의를 했다. 김 부장의 중국법인 첫 회의다. 중국어와 한국어가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진기한 광경이었다. 신기한 것이 두 가지 언어가 난무하던데 결론이 난다. 일이 진행이 된다. '이걸 글로 쓰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동안 한국 생활에 대한 많은 글을 썼다. 특별한 일이 생겨야 글쓰기 소재가 되었다. 중국은 모든 것이 글쓰기 재료다. 일하면서, 생활하면서 살아가는 모든 것이 글쓰기 소재가 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움직이기만 해도 글 쓸거리가 천지다. 앞으로 4년 동안 다양한 글을 쓸 생각을 하니 설렌다. 기분이 좋다. 감사하다.



아홉번째, 40년 지기 친구와 재회하다.


국민학교 5학년 시절이다. 하교하는 길이었다. 작은 친구가 걸어가고 있었다. 김 부장이 그 날 따라 왜 그랬을까? 그 친구를 불렀다. 같은 학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이야기를 하면서 갔다. 그 뒤로 40년을 친구로 동행하게 되었다. 일명 죽마고우, 불O친구다. 가장 친한 친구다.


그 친구는 25년 전 중국에서 일을 시작했다. 보는 해보다 보지 못한 해가 더 많았다. 가장 친한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떨어져서 보냈다. 25년 만에 다시 뭉치게 된다. 1시간 거리에서 살게 된다.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되니 감사한 일이다.



열번째, 어두운 곳에 따뜻한 희망이 될 수 있다.


 '선한 영향력(善한 影響力)'

김 부장의 Mission(미션)이다. 꽃길을 걸어가면 좋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 거친 길이라도 감사한 마음으로 갈 것이다. 중국 상황이 좋지 않다. 중국 직원들은 절망 가운데 있다. 좌절, 패배감에 휩싸여 있다. 조직문화를 통해 변화시켜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부자되는 것보다, 승진하는 것보다, 사회에서 성공하는 것보다 더 가슴 설레는 일이 있다고 믿는다. 누군가에게 희망이 된다면 그보다 더 설레는 일이 있을까? 주재원 기간 중 단 한 명에게라도 희망의 빛이 된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이겠는가.




중국 발령이 감사한 이유 10가지를 생각해보았다. 

처음에는 10개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꾸 감사할 거리를 찾으니까 계속 생긴다.

중국 친구를 만들 수 있어서 감사하다.
세계 3대 요리라는 중국 음식을 경험할 수 있으니 감사하다.
중국 문화를 경험할 수 있으니 감사하다.
중국의 유명한 장소를 가볼 수 있으니 감사하다.
중국 법인 경영이 반등하면 전설이라는 이야기를 들을테니 감사하다.
유능한 중국 직원들을 만나서 감사하다.
부족한 중국에 대한 글을 읽어주는 글친구들이 있으니 감사하다.


'감사는 생기는 것이 아니다.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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