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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 Jan 18. 2021

#31. 직장인의 글쓰기는 동사다.


생산기술팀의 안 과장은 자동차 생산 공정에서 최신 신기술을 기획했다. 생산 라인에서 일부 공정을 줄일 수 있게 되었다. 공정을 줄이면 생산 비용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연간 절감효과 100억 원에 이르는 전도유망한 기획안이었다. 상사들의 칭찬을 받았다. 동료들의 성원이 이어졌다.


 문제는 안 과장의 기획안이 현장을 염두에 두지 않고 기획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현장에서 적용하기에 문제점들이 많았다. 신기술을 추진할 수 있는 고급인력 확보가 고려되지 않은 상황에서 추진되었다. 신기술을 뒷받침할 수 있는 원자재 공급이 어려웠다. 생산직 기술교육이 부족했다. 생산직들은 불량품을 양산했다. 생산 품질이 안정화되지 않았다. 게다가 신기술 적용으로 인한 부작용이 발생했다. 신기술로 인한 절감효과보다 손해가 커졌다. 품질 비용과 생산손실으로 인해 연간 500억 원의 손실이 발생한 것이다.



당신의 글쓰기가 회사를 위태롭게 할 수도 있다.


2020년 2월 20일 기아차의 SUV 대표 모델 신형 쏘렌토가 사전계약을 실시했다. 2일 만에 1만8,880대의 사전계약이 몰렸다. 완성차업계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이때 국토부에서 공문이 내려온다. 신형 쏘렌토 하이브리드는 연비 미달로 하이브리드 혜택을 적용받지 못한다는 내용이다.


1,600cc 엔진이면 리터당 14.1km/h의 연비를 얻으면 하이브리드 세제 혜택이 주어지지만, 1,598cc 엔진인 쏘렌토 하이브리드는 리터당 15.8km/h의 연비가 되어야만 하이브리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쏘렌토 하이브리드가 획득한 공인연비는 리터당 15.3km/h다.



하이브리드 세제혜택이 사라지게 되어, 기존 가격보다 개소세, 교육세, 부가세 등 총 143만의 가격을 더 지불하게 되었다. 하이브리드 차량에 지원되는 등록세 할인, 공영주차장 50% 할인, 남산터널 진입 시 환경부담금 면제 혜택도 동시에 사라졌다. 결국 신형 쏘렌토 하이브리드는 출시를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기아는 사전 계약자 대상으로 233만 원의 보상을 진행했다. 총 337억 원을 보상금으로 지급했다. 초기 신차 효과를 누리지 못해 손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여기에도 직장인의 글쓰기가 있었다. 실제 제품 출시 단계에서 관련 법규 적용을 충분하게 검토하지 못한 글쓰기 하나가 기업에 막대한 손실을 발생시킨 것이다.



실행을 고려한 글쓰기를 하라


직장인의 글쓰기는 일반 작가의 글쓰기와는 다르다. 직장인의 글쓰기는 실행을 담보로 한다. 실행을 통해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단순한 안내문이나 업무 메일조차도 실행과 결과가 동반된다.


당신이 채용 기획안을 썼다고 생각해보자. 당신이 쓴 글로 인해 회사의 채용방향과 채용 프로세스가 결정된다. 채용팀은 기획안에 따라 채용을 추진한다. 실제로 당신의 쓴 글의 결과로 신입사원들이 입사를 하게 된다. 채용에 관한 기획안이 잘못되었다면 좋은 인재를 확보하지 못하게 된다. 이는 조직과 기업의 성과에 영향을 미친다. 글쓰기에서 항상 마지막까지 염두에 둘 것은 실행이다. 실행을 위해 반드시 고려해야할 것이 있다. '현장'이다.




현장에 답이 있다.


우문현답(愚問賢答)이라는 말이 있다. 사전적 정의는 '어리석은 질문에 현명한 답을 한다'는 것이다. 우문현답을 '리의 제는 장에 이 있다'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현장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말이다. 뛰어난 기획자는 '우문현답'이라는 말을 금과옥조로 여긴다. 직장인은 글쓰기를 할 때 현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직장인 글쓰기의 결론은 항상 실제 현장을 염두에 둔 결론이어야 한다.


본사에서 많은 후배 기획자를 만났다. 현장을 잘 모르거나 경험하지 않은 후배 기획자들의 경우 '현장'에 대해서는 2가지 반응을 보인다.


첫째는, 현장에서의 실제 적용을 고려하지 않는다. 현장을 깊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수준의 결론과 해결책을 낸다. 예를 들자면 '현장관리자 역량 강화', '임직원간 소통 강화'와 같이 어디서나 적용가능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적용까지 가지 못한다. 가치있는 기획안이 되지 못한다. 기획자들끼리 우스개소리로 이런 기획안은 삼성, LG, 롯데에 가져가도 그대로 적용되는 글쓰기라고 이야기한다.


둘째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후배 기획자들이 있다. 현장을 잘 모르니 결론과 해결책을 내는 것을 주저주저한다. 기획안을 쓰고도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결론과 해결책에 대한 확신이 없다. 자신이 없으면 상사를 설득할 수가 없다. 기획자가 스스로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장 적용을 위해 관련 부문 설명회를 하면서 기획자가 쭈뼛쭈뼛거린다. 현장에서 실행을 위해 움직여야 할 관리자들이 진심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현장을 경험하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다. 


기획력이 뛰어난 후배가 한 명 있었다. 해외 생산법인에 주재원으로 나간다고 결정을 했다. 후배는 주재원으로 나가기에 경력상 애매한 시점이었다. 그래도 주재원을 나가기로 결정했다. 현장을 경험해보기 위해서라고 했다. 현장 경험없이 책상에서만 글을 쓰니, 현장 사람들이 인정을 안해준다는 것이다. 기획안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현장에 대한 이야기에서 흐름이 막힌다는 것이었다. 후배는 현장을 경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철저하게 느낀 것이다. 4년 뒤 후배의 변화가 기대된다.


신입사원이 오면 의도적으로 현장을 경험시키는 본부가 있다. 사원 시절 본사에서 일하지 않게 하고 현장으로 내려보내는 것이다. 사원 시절을 현장에서 뒹굴고 부대끼면서 배우도록 하는 것이다. 3~4년을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현장이 눈에 잡힌다. 자신의 글쓰기가 현장에 어떻게 적용이 될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글쓰기가 쉬워진다. 글쓰기가 입체적이 된다.



현장을 가보자. 


모두가 현장 근무를 경험할 수 없다. 기획이나, 지원부서에서만 일하게 될 수도 있다. 현장에서 근무할 기회가 없다면 현장을 방문이라도 해야 한다.


부동산은 임장이라는 용어가 있다. 임장(臨場)은 '현장에 임한다'는 뜻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부동산 투자를 고민한다면 임장을 하라고 한다. 현장을 가보라고 추천한다. 현장에 가서 마트와의 거리, 학교 위치, 편의시설, 교통환경, 주변 시세 등을 실제 거주자 입장에서 체험하고 고민해 보라는 것이다. 부동산에 방문해서 공인중개사들의 이야기를 들업기도 한다. 그래야 현명한 부동산 투자의 답이 나오는 것이다. 후배 중 하나는 가지고 있는 돈이 별로 없었다. 적은 예산으로 집을 사기 위해 주말이면 거주 희망 지역 일대를 1년을 임장 활동을 했다. 가지고 있는 예산에서 최적의 장소를 찾아 투자했다. 실패하지 않는 투자를 해서 지금도 흐뭇해하고 있다.  


주재원으로 근무할 때 현장에서 직원들이 너무 덥다는 고충이 올라왔다. 현지인 매니저와 이야기하면서 '산업용 선풍기 추가 구입'으로 결론을 내리려고 했다. 일단 현장을 보자는 생각으로 현장으로 달려갔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작업자의 상의가 땀에 푹 젖을 정도로 힘들게 일하는 현장 직원들이 보였다. 마음이 울컥했다. 계속 현장을 확인했다.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효율적으로 가동이 되지 않고 있었다. 가동 기온 기준이 너무 높게 설정되어 있었다. 시설팀과 법인장을 설득하여 가동 기온 기준을 조정하였다. 현장 방문을 통해 답을 찾은 것이다.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코로나 상황에서 현장 방문이 쉽지 않다. 방문하는 사람,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 모두 대면 접촉이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그래도 방법이 있다.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현장에서 어떠한 니즈가 있는지, 무엇이 문제인지를 직접 듣는 것이다. 필자의 경우 매년 해외법인 진단을 한다. 자료만 보지 않는다. 반드시 30여 명의 현장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자료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문제점과 이슈들을 알게 된다. 현장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한 진단결과는 살아있는 글쓰기다 된다. 현지의 직원들도 진단결과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자신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고충을 해소할 수 있는 최선의 조언임을 알기에 진단결과를 수용한다.



직장인의 글쓰기는 동사다.


직장인의 글쓰기는 명사가 아니다.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명사형 글쓰기는 책상에서 해도된다. 실행을 이끌어내는 것이 직장인의 글쓰기이다. 직장인의 글쓰기는 동사다. 동사형 글쓰기를 위해서는 현장으로 달려가야 한다.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가슴이 뛰는 글쓰기를 하고 싶다면 책상에서 먼저 일어나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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