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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 Sep 11. 2022

'미니멀리스트(Minimalist)'가 되는 순간

"이대로 한국에서 짐이 안 왔으면 좋겠어요"


딸아이는 깨끗하게 정리된 중국에서의 집을 보고 한 마디 외쳤다. 나와 아내는 서로를 돌아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가방 2개면 충분한 삶이 아닌가?


김 부장은 2022년 1월 중국에 입국했다. 입국할 때 들고 온 캐리어 2개가 김 부장 소유물의 전부였다. 한국에서 보낸 짐은 8월이 되어서야 중국에 도착했다. 그동안 캐리어 2개 분량의 짐들로 생활했다. 가끔은  불편한 것도 있었다. 그러나 생각보다는 살만했다.


독신 생활 6개월 중에 다른 숙소로 이사해야 했다. 가방 2개만 들고 가면 됐다.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삶이었다. 지금 있는 곳에 얽매일 필요가 없었다. '노마드(유목민)의 삶이란 이런 것인가' 싶었다.


김 부장은 그동안 이고 지고 살았던 김 부장 소유물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 '필독서인데 언젠가 한 번은 읽어하지' 하고 버리지 못하던 책들 (큰 책장 5개 분량)

 - 추억이 아쉬워 버리지 못했던 대학교재와 강의노트

 - 자격증을 따겠다고 공부했던 수험서들

 - 언젠가는 글을 쓰리라 생각하면서 모아두었던 집필 노트들

 - 해외 출장 가면 하나씩 모았던 머그컵과 볼펜들

 - 취미 활동을 위한 도구들 (악기, 마술도구, 아트풍선, 그림 도구/작품들)  

 - '언젠가 다시 입겠지'하면서 버리지 못하던 옷들

   (지금은 작지만 다이어트 성공하면 다시 입어야지 하면서 못 버리고 있다.)

 - 회사 출근 복장은 캐주얼로 바뀐 지 오래되었는데 버리지 못하고 있는 정장 십 여벌


버렸어야 했다. 이고 지고 살았던 소유물들이 김 부장의 주변을 옥죄이고 있다.

MBN  <5억 원의 사나이> 중 캡처 / 책으로 둘러싸인 남자 이야기


강제로 미니멀리스트가 된 가족들


가족들이 중국에 입국했다. 미리 구해둔 쑤저우 아파트로 들어갔다. 기본 가구가 빌트인되어 있는 아파트다. 가족들은 가져온 트렁크 4개의 짐으로 생활했다. 생각보다는 불편함이 크지 않았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간다.


넓은 집에 트렁크 4개 분량의 짐을 풀어넣어도 집이 항상 깨끗하다. 짐이 없기 때문이다. 딸아이는 호텔에서 사는 같다면서 "한국에서 짐이 안 왔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한다.


드디어 한국에서 보낸 짐이 도착했다. 

컨테이너 하나 가득, 160개 박스 분량의 이삿짐이 도착했다. 여기저기 짐을 풀어놓았다. 깨끗했던 집은 온데간데 없었다. 집 안 여기저기가 물건들로 너저분하게 되었다. 짐을 피해 사람이 피해 다닐 지경이었다.


삶의 중심이 '사람'이 아니라 '물건'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결심을 내려야 했다. 아내와 상의를 했다. 물건들을 버리기로 했다.


옷을 버렸다.

3년 이상 입지 않은 옷을 과감하게 버렸다. 이제는 입지 않는 양복도 1벌을 빼고 버렸다. 정장을 샀을 때 가격을 생각하며 버리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김 부장이 나중에 살 빼면 입으리라 생각했던 작은 바지들도 버렸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십었던 옷들도 버렸다. 앞으로 4~5년은 갈 계획이 없는 스키복도 버렸다. 지금은 신지 않는 신발들도 과감하게 버렸다. 언젠가 한 번은 신겠지 생각하고 버리지 못하던 정장 구두들도 하나만 남기고 버렸다.


책을 버렸다.

2000년 입사한 이래로 책을 이고 지고 살았다. 책을 버리면 큰 일 나는 줄 알았다. 나중에 글 쓸 때 참고하리라 생각하면서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지난 2년간 보지 않은 책은 과감하게 버렸다. 30년을 이사 때마다 들고 있던 대학교재와 대학노트도 버렸다. 책장 5개 분량의 책이 책장 하나 분량으로 줄어들었다. 버려서는 안 되는 앨범/결혼사진들은 풀지 않고 박스에 넣어 창고에 넣어두었다. 언제든지 중국을 떠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취미 활동을 위해 들고다니던 짐을 버렸다.

마술도구, 아트풍선 도구, 그림 도구와 김 부장이 그린 몇 가지 그림들을 버렸다. 10,000피스 퍼즐로 맞추었던 그림도 버렸다. 지난 2~3년간 하지 않았으면 버렸다. 몇 개 있는 등산가방도 하나만 남기고 버렸다. 겨울 등반에 필요한 아이젠(미끄럼 방지 체인)들도 앞으로는 쓸 일이 없다.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렸다. 안 쓰는 골프백도 버렸다.


불필요한 생활용품을 버렸다.

주방에 여기저기 박혀있던 소품들을 버렸다. 지나치게 많은 '용기'들을 버렸다.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김치냉장고용 용기들도 버렸다. 지금은 쓰지 않는 그릇들을 버렸다. 안 쓰는 조리도구도 버렸다. (오래된 냄비, 프라이 팬 등) 해외 주재원 생활에 받았던 기념품, 여행 중에 샀던 기념품들을 버렸다. 최소한만 남겨두었다.   


그렇게 한 달 내내 버렸다.




휴일 아침이다. 가족들은 아직 꿈나라에 빠져있다.

유튜브에서 '휴일 아침에 듣기 좋은 음악'을 검색하여 튼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내린다.

노트북을 켠다.

글을 쓰기 위해 키보드를 두드린다.

눈을 들어 거실을 보니 깨끗한 집이 낯설다.

딸 아이말대로 호텔에 있는 것 같다.


삶의 주인이 '물건'이 아닌 '사람'임을 느끼는 휴일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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