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종일 아이들이 재채기와 콧물로 힘들어하고 있다. 낯선 중국 환경에 아이들 몸이 적응해 나가는 과정이리라고 생각한다.
멕시코에서 5년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귀임했다. 2년만에 다시 중국 주재원으로 발령이 났다. 중국 주재원 원년이다. 앞으로 4년 이상 중국에서 근무하게 될 것이다. '주재원의 기간 중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답할 몇 가지가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나와 가족의 안전한 귀임이다.
해외 부임지는 한국 환경과 다른 것이 많다. 당연한 일이다. 자연환경도 다르다. 음식 문화도 다르다. 교육환경, 교통 환경, 의료 환경도 다르다. 30~40년 이상 한국에서 살다가 낯선 땅에 적응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살아가는 것이 서투르기 마련이다. 그 과정에서 아프기도 하고, 다치기도 한다. 안타까운 일을 당하기도 한다.
박 차장은 중국 직원들과의 회식에 참여했다. 중국 직원들은 상사인 박 차장에게 중국 술(백주)을 권했다. 중국에서 직원들과 술자리를 하면 상사에 다가와 술을 권한다. 중국 술자리 문화의 특징이다. 직원들이 한명씩 일어나 상사 박차장에 한 잔씩 주기 시작한다. 전 직원이 한 잔씩 주고 가야 술 자리가 끝난다.
술이 약한 박 차장은 처음에는 망설였다. 중국인 직원들의 성의를 무시하기 어려웠다. 몇 잔 들이켰다. 그리고 그것이 박 차장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대리기사를 기다리던 박 차장은 술에 취해 대로쪽으로 비틀거리면서 걸어갔다. 제지할 틈도 없었다. 빠르게 직진하던 차량이 박 차장을 보지 못하고 그대로 충돌했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대형사고였다. 박 차장은 그대로 응급실로 직행했다.
두개골 골절, 흉부 골절, 대퇴부 골절, 장기손상 등 손상 범위가 너무 넓었다. 한국에서 아빠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던 아내와 초등학교 딸아이에게 비보가 전해졌다. 박 차장은 아이들에게 작별도 고하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갔다.
김 과장은 주변의 부러움을 사던 주재원이다. 일을 잘했다. 털털한 성격에 주변에 좋은 평판을 얻고 있었다. 아내도 주재원 생활에 잘 적응했다. 5살, 3살 아이들은 무럭무럭 커가고 있었다. 무엇 하나 부러울 것이 없을 것만 같던 주재원 생활이었다.
연말에 위로 휴가를 얻어 한국으로 돌아왔다.
의례 정해진대로 건강 검진을 받았다. 갑자기 검진을 한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큰 병원에서 추가 검진을 받아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췌장 CT 사진에 이상이 있어 보입니다."
그렇게 찾아간 대형 병원에서는 여러 검사 끝에 췌장암 3기라는 판정을 내렸다.
온 가족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아직 젊은데... 이렇다할 징후도 없었는데 암 3기라니...'
그 뒤 부부간에 무슨 대화가 오고갔는 지는 알 길이 없다.
우리는 비보를 전해들었다. 온 가족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지방 모처 리조트에 가서 번개탄을 피우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소식을 전해들은 김 과장 지인들은 당황했다. 극단적 선택으로 30대 아내와 5살, 3살 아이들만 하늘나라고 가고, 김 과장은 살아남은 것이다.
장례식장에서 김 과장은 넋이 나가있었다. 주변 사람들도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발인을 마친 그 날 김 과장은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 그것이 김 과장의 마지막 소식이었다.
안 차장은 동료 주재원들과 시내에서 반주를 곁들인 저녁 식사를 했다. 시계를 보니 저녁 9시였다. 그렇게 늦은 시간은 아니었다. 식당 앞에 주차되어 있던 택시에 올라탔다. 따뜻한 차안에서 술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눈을 잠시 감았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눈을 살짝 떠보니 평소 가던 길이 아니었다. 정신이 번뜩 들었다. 택시 기사에게 어디 가냐고 물어보았다. 택시 기사는 다왔다고 하면서 낯선 건물의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주차장에는 택시 기사의 일행이 있었다. 말은 통하지 않았다. 안 차장의 몸과 소지품을 뒤졌다. 안 차장은 '택시 강도구나' 싶었다. 몸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라 저항을 하지 않았다.
몸을 뒤지던 택시 강도는 원하는 만큼 돈이 나오지 않았는지 소리를 쳤다. 현지어가 서투른 안 차장은 알아들을 길이 없었다. 안 차장이 알아듣지 못하자 주먹이 날아왔다. 눈 앞에 번쩍 별이 보였다고 한다. 그 뒤로는 발길질이 날아왔다. 그렇게 안 차장을 제압한 택시 강도들은 안 차장을 어디론가 끌고 가려고 했다 한다. 돈이 별로 없자 안 차장을 납치하여 인질을 담보로 가족들에게 돈을 요구하려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안 차장은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바닥에 넘어져서 질질 끌려갔지만 저항했다. 건강한 남성이 필사적으로 저항하니 택시 강도들은 힘에 부쳤는지 몇 마디 욕설을 내뱉고는 도주했다.
안 차장은 택시 강도가 떠나는 것을 확인하고 사람들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지상으로 필사적으로 뛰었다. 강도들이 다시 올까봐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행인들이 있는 것을 확인한 안 차장은 그만 맥이 풀렸다. 바닥에 주저앉았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경찰과 회사에 연락을 해왔다.
연락을 받고 가보니 안 차장의 몰골이 처참했다. 저항하는 과정에서 옷은 여기 저기 뜯겨져 나갔다. 시멘트 바닥에 얼굴이 쓸렸는지 피범벅이 되어있었다. 무엇보다 큰 일을 당한터라 정신이 나가있었다. 얼굴이 크게 상했던 터라 3개월 이상 얼굴에 재생밴드를 붙이고 다녔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래저래 사고가 많은 것이 주재원 생활이다. 김 부장이 항상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건강한 귀임이다.
오늘도 김 부장은 간절하게 기도한다.
주재기간 중 사고없이 귀임하게 해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