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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 Nov 21. 2022

나는 버려져 있는 게 아니다

<지푸라기> 정호승

나는 길가에 버려져 있는 게 아니다

먼지를 일으키며 바람 따라 떠도는 게 아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당신을 오직 기다릴 뿐이다

 

내일도 슬퍼하고 오늘도 슬퍼하는

인생은 언제 어디서나 다시 시작할 수 없다고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이라고

길바닥에 주저앉아 우는 당신이

지푸라기라도 잡고 다시 일어서길 기다릴 뿐이다

 

물과 바람과 맑은 햇살과

새소리가 섞인 진흙이 되어

허물어진 당신의 집을 다시 짓는

단단한 흙벽돌이 되길 바랄 뿐이다


<지푸라기> 정호승



나는 지푸라기다.


나는 회사라는 거대한 조직에서 지푸라기인지도 모르겠다.

여름 햇살을 담았던 푸르던 색은 이제 바래버렸다.

가슴에 품었던 알곡은 내려놓은지 오래다.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남들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 놓여있는지 모르겠다.

먼지 풀풀 나는 지푸라기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이리저리 조직 명에 따라 몸을 내맡기고 떠돌아다니는...

나는 지푸라기다.


나는 버려져 있는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지푸라기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믿고 싶다.


누군가는 나를 보고 위로를 받기 바란다.

누군가는 나를 통해 용기를 얻기 바란다.


오늘은 사내 매신저를 통해 후배의 메시지가 올라왔다.

"선배님이 업무 개선을 해나가시는 모습에 용기를 얻습니다. 힘을 얻습니다."


그래...그러면 되었다.

나는 생각한 것보다 더 가치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어두운 곳에서 눈물 흘리고 있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지도 모른다.


소중한 알곡을 내려놓고 바람에 휘둘리는 지푸라기지만 나를 포기하지는 말자.

언젠가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지푸라기가 될 수도 있을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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