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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 Nov 24. 2022

문제는 펜이 아니다. 글씨를 쓰는 것이다.

NASA의 첨단 볼펜, 스페이스 펜(space pen)


NASA(미 항공우주국)은 우주에서는 펜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무중력 상태에서 펜을 사용할 수 없다. 잉크가 중력의 힘으로 내려오지 않기 때문이다. NASA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최고의 과학자들을 투입하여 TFT를 만들었다. 기계학, 화학, 유체역학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투입되었다. 수백만달러에 달하는 연구비가 투입되었다. 끝내 스페이스 펜(space pen)이라는 첨단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미국의 과학자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미국이 소련의 기술을 크게 앞질렀어!" 라며 좋아했다.


소련의 우주 과학자들은 전혀 다른 해법으로 접근했다. 우주인한테 볼펜 대신 연필을 지급했다. 미국은 '무중력 상태에서 쓸 수 있는 펜'을 만드는 것에 집중했다. 소련은 '무중력 상태에서 글씨를 쓰는 것'에 집중했다. 글씨만 쓰면 되니 연필이면 충분했던 것이다.





생각을 바꾸니 답이 보였다.


중국에 부임하고 보니 10년이상 해결이 안되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가 있었다. 한국 주재원 숙소 문제였다. 벌레가 들끓었다. 수시로 박쥐가 출몰했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 추운 30년된 낡은 숙소에서 주재원들이 살고 있었다.


열악한 환경인지라 주재원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바꾸려고 해도 이해관계자가 너무 많았다. 반대하는 그룹들이 있었다. 합자 관계에 있는 중국 관리자들이 한국 주재원 숙소 변경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아무리 설득해도 '한국 주재원 숙소 변경'에 동의하지 않았다. 한국 주재원과 중국인 관리자 사이에 감정적인 대립까지 갈 지경이었다.


중국 관리자들의 니즈에 집중해보았다. 중국인 관리자들은 '주재원 숙소 변경'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었다. '예산'이 추가로 들어가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었다. 중국 관리자들이 민감해하는 '예산'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하기로 했다. 김 부장은 계산기를 두드려보았다. 그리고 결정했다. 주재원 숙소를 변경하는 것이 아니라, 주재원 숙소 폐쇄를 결정했다. 발상의 전환이었다.


주재원 숙소를 운영하면 임대료, 숙소 식당, 식대지원, 인터넷 비용, 한국 TV 비용, 관리비용 등이 들어간다. 과감하게 주재원 숙소를 폐쇄했다. 연간 총 예산의 80%를 주재원 숫자로 나누었다. 각 주재원들에게 임대료 지원금으로 배정해주었다. 주재원들이 알아서 예산 범위 내에서 시내에 집을 구하도록 했다. 주재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열악한 숙소를 벗어나 시내에서 번듯한 아파트를 구해서 살 수 있게 되었다. 주재원 만족도가 대폭 상승했다.


중국 관리자들에게는 예산이 20% 절감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예산이 20% 절감된다는 데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주재원 숙소를 변경해야 한다'는 프레임에서 벗어나니 답을 찾을 수 있었다. 한국인 주재원과 중국인 관리자 모두가 만족할 답을 찾아낼 수 있었다.


NASA가 봉착한 문제는 '펜의 개선'이 아니었다. '글씨를 쓰게 한다'는 것에 집중해야 했다.

우리도 '주재원 숙소 변경'이 핵심 문제가 아니었다. '주재원 거주 환경 개선'에 집중해야 했다. 굳이 주재원 숙소가 아니어도 만족할만한 거주지를 주재원 스스로 찾도록 도와주면 되는 것이었다.




주재원 숙소를 폐지하고 나니 숙소 관리에 들어가는 불필요한 업무가 대폭 줄었다. 김 부장은 최후의 승자는 내가 아닐까 생각하면서 슬며시 미소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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