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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 Dec 03. 2022

'내가 보면 진다!' 김 부장의 징크스

징크스(jinx) : 어떤 사물이나 현상 또는 사람과 연관지어 불길한 예감을 먼저 가지는 심리 현상.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시즌이다. 12월 2일 한국 국가대표팀이 포르투갈을 이겼다. 16강에 극적으로 진출했다. 대한민국 축구 역사에 오랫동한 회자될 경기일 것이다. 나는 축구경기를 보지 않았다. 


나는 징크스가 있다. 내가 경기를 보면 응원하는 팀이 진다. 오랜만에 직장동료들과 함께 모여 한국과 가나전 월드컵 경기를 응원했다. 3:2로 아깝게 패배했다. '내가 봐서 졌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12월 2일 새벽, 한창 한국 대표팀을 응원하던 가족들의 함성이 높아졌다. '아 이겼구나'하는 생각을 하면서 잠들었다. '내가 안 보면 이긴다'는 징크스는 더욱 확고해졌다.

출처 : 데일리안 (황희찬 역전골)


김 부장의 징크스는 회사에서 'Tigers Day (타이거즈 데이 : KIA 직원들이 기아 타이거즈 경기를 응원하러 가는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면서 생겼다. 타이거즈 데이 행사를 진행하는 날이면 1,000여 명의 직원들을 동원하여 야구장으로 향했다. 응원을 가는 날이면 꼭 졌다. Tigers Day 행사일을 정한 김 부장에게 '마이너스(-)의 손'이라 놀리는 동료도 있었다. 그렇게 징크스가 되었다. 그 해 프로야구팀 기아 타이거즈는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경기를 보지 못했다. 혹시 질까 봐 그랬다. 그 해 타이거즈는 한국 시리스 우승팀이 되었다.


김 부장이 기획하고 진행했던 타이거즈 데이 (2009년 사진)


그 이후로는 중요한 국가대표팀 경기가 열릴 때면 경기를 보지 않는다. 나는 대한민국을 응원하는 수 천만명 중의 한 명일뿐이다. 내가 경기를 안 본다고 해서 경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국가 대표 경기 결과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법이다. 머리로는 이미 알고 있지만 불안한 마음에 경기를 보지 못한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나만 그러는 것 같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징크스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TV로 경기를 보던지 안보던지가 경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참 비합리적인 행동이다. 우리는 왜 이런 비합리적인 행동을 유지하는 것일까? 


우리는 불확실한 환경을 두려워한다. 불확실한 환경에서 무력감을 느낀다. 결과가 좋지 않다면(한국 대표팀이 경기에 진다면) 우울감을 느낀다. 불행하다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결과를 통제할 수는 없다.


만약 반복된 경험을 통해 자신의 행동이 불확실한 환경에 영향을 미친다는 믿음이 생긴다면 어떨까? 

예를 들어 '내가 응원하는 팀의 경기를 보지 않으니 이기더라'라는 경험이 축적되는 것이다. 경험이 여러 번 계속되면서 이에 대한 작은 믿음이 생기는 것이다. '시험 날 아침에 미역국을 먹지 않는다.'같은 것이 대표적인 믿음이다. 미역국과 시험 결과에 상관관계가 있을 리 없다.


자신의 사소한 행동으로 불확실한 결과를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는 것이다. 누가 봐도 비합리적인 추론이다. 사람은 심리적으로 약한 존재이다. 불확실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작고 사소하지만 특정한 행동을 반복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


<2010.4~5월 프로야구팀 SK의 16연승 기간동안 수염을 깍지 않은 김성근 감독의 징크스>
프로야구 SK의 김성근 감독은 평생 안 기르던 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다. 바빠서 면도를 못한 날 SK가 대승을 거두었다. 다음 날도 수염을 깎지 않았다. 수염을 깍지 않으니 16연승을 달렸다. 경기에 질까 봐 수염을 깍지 못하는 김 감독이다.


어떤 학자는 이러한 징크스를 ‘우리를 행복하고 건강하게 해주는 비합리적 믿음’으로 표현한다. 비합리적이지만 작은 믿음으로 행복감을 더해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내가 안본다고 해서 한국 대표팀이 이긴 것은 아니다. 나도 알고 있다. 작은 기여를 했다는 믿음으로 스스로 행복해한다. 참 유치한 믿음이다. 그래도 이래 저래 기분 좋은 하루다.


"한국 대표팀의 16강 진출을 축하하고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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