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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 May 28. 2023

김 부장! 일을 줄이세요.

"김 부장! 주당 근무 시간이 52시간을 초과하였습니다. 근무시간을 관리하시기 바랍니다."




주재원으로 나오면 아무래로 일이 많다. 주 52시간은 훌쩍 넘기기 마련이다. 아침 6시에 출근하면 저녁 11시까지 일한다. 잠시 자고 일어나면 다시 출근이다. 그렇게 한 주를 일하면 근무시간이 80시간 이상이다. 멕시코 주재원 시절에는 주당 100시간 가까이 일하기도 했다.


멕시코 주재원 시절 결국 탈이 났다. 일요일 저녁만 되면 몸이 반응했다. 회사 출근을 생각하면 심장이 두근거렸다. 사무실에 출근해서 자리에 앉으면 손이 덜덜 떨렸다. 숨이 막힌다는 기분이 들었다. 

'몸이 왜 이러지? 몸살인가?'

당시에는 이유를 몰랐다. 나중에 인터넷에서 검색해보고 그것이 '공항증상'이라는 것을 알았다.



주재원도 지헤롭게 일할 필요가 있다.


첫째, 건강을 챙기면서 일해야 한다. 주재원 기간 중에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건강을 잃게 되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미국 법인 안 차장은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가 극심했다. 현지인들과 소통이 어렵다 보니 혼자 이겨내려고 했다. 그러다가 정신적으로 탈이 났다. 우울증 증세가 찾아왔다. 현지인 의사와 상담을 하고 약을 처방받았다.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더 이상 현지법인에서 일을 할 수 없으니 한국으로 복귀를 해야 했다.


브라질은 조 과장은 젊다. 힘든 줄도 모르고 일을 했다. 나이가 젊으니 매년 진행하는 한국 휴가 건강 검진도 건너뛰었다. 브라질 법인 업무에 뼈를 갈아 넣었다. 한국에 귀임해서 건강검진을 받았다. 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나이가 젊으니 암의 진행 속도도 빨랐다. 조 과장에게 주어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얼마 뒤에 비보가 들려왔다. 조 과장은 시한부 선고를 받고 가족들과 강원도 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호텔방에서 번개탄 불을 피워두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의 아내, 3살/1살 배기 아이들과 함께 세상을 등졌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일만 할 수는 없다. 지혜로운 쉼도 필요하다. 건강을 챙기는 것도 필요하다. 건강해야 오래 일 할 수 있다. 


둘째, 노(No)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No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해외법인 김 차장은 업무 성과가 뛰어나다. 어려운 일도 하나씩 정리 해나면서 해결해 낸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제는 Yes맨이라는 것이다. 

현지 법인에서 준공식 행사를 하게 되었다. 현지 대통령과 한국 최고 경영진이 방문하는 중요한 행사다. 당시 준공식 행사 담당자인 조 차장이 헤매고 있었다. 준공식 날짜는 다가오는데 준비가 엉망인 상황이었다. 법인장은 김 차장에 부탁했다. 

"김 차장! 지금 행사가 한 달 밖에 안 남았는데 준비가 엉망이다. 네가 좀 도와줘야겠다. 연말에 고과를 챙길 테니 좀 맡아줘라."


김 차장은 회사를 위해, 법인을 위해 헌신하기로 결심했다. 준공식 행사에 투입되었다. 행사 매뉴얼을 재정비하고 하나씩 준비해 나갔다. 거의 한 달 동안 회사에서 숙식했다. 잠을 쪼개가면서 행사 준비에 매진했다. 마지막 며칠은 밤을 새우며 행사 준비를 해나갔다. 준공식 행사는 성공적이었다. 김 차장은 행사를 마치고 집으로 복귀하는 길에 정신을 잃었다. 그대로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무엇보다 김 차장이 서운했던 것은 연말 고과에서 준공식 행사 성공에 대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새로운 법인장이 부임하면서 김 차장이 헌신적으로 고생한 부분을 인정해주지 않았다.  


주재원에게 때로는 지혜로운 No도 필요한 법이다. 무작정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다. 꼭 자신이 해야 하는지, 해당 일이 다른 주재원의 업무 영역은 아닌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No를 이야기하지 못하는 주재원은 고생길이 뻔하다.


셋째, 가족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김 부사장은 직장 생활 30년 중 26년을 주재원 생활을 했다. 스페인, 프랑스, 인도, 미국, 브라질 등 전 세계를 무대로 종횡무진했다. 그 노고를 인정받아 부사장의 자리에 올랐다. 회사 입장에서는 너무나 고마운 임원이다.


김 부사장은 주재원 후배들과 술자리가 있으면 항상 가족을 챙기라는 당부를 건넨다. 자신은 주재원 시절 일만 하다 보니 가족을 챙기는 것에는 너무 소홀했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자신이 생각한 대로 성장해주지 못했다. 여기저기 옮겨 다니다 보니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학교 환경에 적응하는 것을 힘들어했다. 사춘기 시절에는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등교거부를 하기도 했다. 그저 아이들 교육은 아내가 하는 것으로만 치부하고 김 부사장은 일에만 매달렸다. 아내도 일만 하는 남편, 가족을 돌보지 않는 남편에 대한 불만이 컸다. 집에 오면 부부간의 언성이 높아졌다. 김 부사장은 해외 생활을 하면서 자녀교육도 아내와의 관계도 모두 잃었다면서 후배들에게 조언을 건넸다. 

"가족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아빠로서 필요한 순간에는 꼭 있어야 한다. 주재원이라고 해서 면죄부를 받는 것은 아니다." 



일을 하지 말고 요령을 피우라는 것은 아니다. 


지혜롭게 일을 할 필요가 있다. 해야 하는 일들을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본인이 감당하기 어렵다고 보면 상급자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일을 조정할 수 있다면 조정해야 한다. (주재원 중에는 적은 업무를 하면서 여유로운 해외생활을 하는 주재원도 꼭 있다. 혼자만 일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주재원 기간 4~5년 동안 일만 하면 성장이 없다. 주재원 기간 중에도 자신의 성장 플랜을 점검해야 한다. 한국 본사는 빠른 속도도 변한다. 해외 주재원 4~5년을 다녀오고 나면 혼자만 정체되었다는 생각에 자존감이 낮아지는 경우도 있다. 틈을 내서 책도 읽어야 한다. 본사 주요 정보를 챙기면서 새로운 트렌드를 점검하고 있어야 한다. 해외 법인 일만 많이 하는 것이 100점짜리 주재원은 아니다.


우리 그룹에는 2천여 명 주재원들이 해외에 나가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누군가는 일만 하다 오는 주재원들이 있다. 누군가는 제대로 된 주재원 생활을 하지 못해 다녀와서 후회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혜로운 주재원들은 주재원 생활을 통해 본인의 일도 챙긴다. 본인의 성장도 챙긴다. 가족들에게는 새로운 경험을 주어 만족감을 준다. 주재원 시간을 120% 활용하고 있다.




어떤 주재원 생활이 좋은 주재원 생활인줄 잘 아는데... 

막상 일을 손에 잡으면 일만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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