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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 Aug 02. 2023

3년 만에 다시 찾은 '도서관'

주재원의 여름휴가


자동차 공장의 경우 공장 전체를 셧다운(Shut Down)하고 직원 전체가 휴가 가는 경우가 많다. 해외공장도 예외가 아니다. 김 부장 회사의 경우 미국, 멕시코, 슬로바키아, 인도, 중국공장이 여름이면 셧다운 휴가에 들어간다. 김 부장도 일주일 셧다운 휴가를 받았다. 이를 '본국 휴가'라고도 한다.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회사에서 왕복 항공권을 지원해 준다.)


주재원의 본국 휴가는 통상 패턴이 정해져 있다.


① 건강검진

회사에서 건강 검진 금액을 50%~100% 지원한다. 주재원과 가족들이 제 때 건강 검진을 하지 않아서 큰 병을 확인하지 못한 경우를 많이 봤다. 너무 안타까운 이야기들이 많다. 

해외 주재국의 경우 한국보다 의료 환경이 열악한 경우가 많다. (인도, 중국, 슬로바키아...)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꼭 해야 하는 이유다.


② 병원 방문

한국에 오랜만에 오면 병원 순례에 들어간다. 치아 스케일링, 충치 치료, 피부과(한국 피부과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고혈압/당뇨약 처방, 탈모약 처방, 개인 지병 치료 등. 병원만 다녀도 하루가 금방 간다.


③ 금융 관련 업무

중국은 한국 사이트가 막혀있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카카오톡, 브런치 스토리, 네이버도 막혀있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하는 송금방법이 제한적이다. 온라인 송금도 불가능하다. 송금액도 한도가 정해져 있다. 한국에 오면 정신없이 금융 관련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공인인증서 갱신 확인, 대출금 상환 및 정리, 자녀들 금융 계좌 확인 등. 휴가 중에 제대로 해두지 않으면 1년 동안 금융 거래가 불편해진다.


④ 부모님 찾아뵙기

1년 만에 돌아오는 한국이다. (중국은 코로나 통제로 인해 3~4년 만에 귀국하는 주재원들도 많았다.)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드린다. 현지 특산물을 미리 준비해서 선물한다. (멕시코 주재원 시절에는 데낄라, 중국에서는 백주(일명 빠이주)를 준비했다.) 조카들에게는 용돈도 두둑하게 안긴다. 오랜만에 외국에서 오는 큰 아빠 노릇을 톡톡히 한다.


그토록 그리웠던 어머니표 음식을 먹으면서 힐링한다. (필자의 경우 전복/새우 삼계탕, 청국장, 오이냉국, 팥칼국수, 김치찌개). 이렇게 먹으면 다시 객지에서 1년을 버티어낼 수 있다.


⑤ 생필품 구입

해외에는 한국산 생필품 인프라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한국산 생필품을 구매할 수 있다 하더라도 가격이 비싸다. 2~3배 가격이다. 한국에 오랜만에 귀국하면 가방 하나 가득 생필품을 채워 넣는다. 채우면 채울수록 돈을 번다는 기분에 촘촘하게 채워 넣는다. (라면, 참치캔, 아이들 과자, 소스류, 김, 비타민류) 거기에 아이들이 읽을 한국 책도 채워넣는다. 홀쭉하게 한국으로 왔던 가방은 배가 터지기 일보직전이다.


⑥ 친구들 만나기, 한국에 근무하는 직장 동료들 만나기

오랜만에 친구와 前 부서 동료들을 만나면 할 이야기가 많다. 행여 현지에서 가져온 술이 있다면 주재 국가에서의 무용담(?)을 안주거리가 된다. 주재국에서의 이야기 하나에 술 한잔이다. 선배들은 고생했다면서 가득 술 한 잔을 건넨다. 후배들은 김 부장의 과장된 주재원 스토리에 귀를 쫑긋 세우면서 들어준다. 직장 이야기, 가족 이야기, 노후 이야기를 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얼큰하게 취해 휘청휘청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한국의 풍경이 그렇게도 아름다울 수 없다.



3년 만에 다시 찾은 '춘천시립 도서관'


위의 ①~⑤번 사항을 이 틀만에 마치고 춘천으로 향했다. 춘천은 장인어른이 은퇴 후 귀향하여 지내시는 도시다. 오랜만에 인사를 드렸다. 하룻밤 자고 아침 일찍 춘천시립도서관으로 향했다.

<춘천시립도서관 내부 : 시설이 훌륭하다.>



3일의 남은 휴가 기간을 도서관에서 지내기로 했다. 사람과의 만남은 잠시 내려놓기로 했다. 주재원 생활 중 사람과의 접촉에 좀 지쳤다.(중국 법인 직원수는 4천명, 주재원은 50명이다.)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갖고 싶었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키보드를 미친듯이 두드리며 글을 토해내고 싶었다.


춘천시립도서관은 3년 만이다. 2020년 여름, 2주의 휴가를 받았다. 춘천시립도서관에 틀어박혀 책을 써 내려갔다. 그렇게 김 부장의 첫 책이 태어난 곳이다. <일 잘하는 사람은 글을 잘 씁니다.>


호기심에 김 부장이 도서관에 있는지 검색해 보았다. 도서관 서가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원래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그렇게 있었다. 꺼내 들어 보니 군데군데 사람들이 읽은 때가 묻어있다. '누군가 내 글을 읽어주었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하다.


<춘천시립도서관에서 구비되어 있는 '일 질하는 사람은 글을 잘 씁니다.'>


조용하게 도서관에서 보내는 여름휴가, 오랜만이다.

아내와 아이들은 한 달 동안 두바이와 유럽 여행 중이다. 가족들도 그 나름대로의 치열한 여름을 보내고 있다. 중국에서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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