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선 Jun 03. 2023

50세! 첫날입니다.

만나이통일법
우리나라 나이 계산을 ‘만(滿) 나이’로 통일하는 내용을 담은 민법 및 행정기본법 일부개정법률을 말한다. 해당 법은 2022년 12월 8일 국회를 통과한 데 이어 12월 27일 공포되면서 2023년 6월 28일부터 시행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사람을 만날 때 항상 나이 계산이 헷갈렸다. 나이만 듣고서는 나보다 형인지 동생인지 알 수가 없다. 결국

'몇 년생이세요?'라고 물어봐야 상호간 나이가 정리된다.

이제 우리는 '만 나이 시대'를 앞두고 있다. 


금요일... 생일이다. 이제 만 나이로 50이 된다

'벌써 50이라니...참 많이 달려왔구나.' 

감회가 새롭다. 아내와 아이들은 '반 백 살'이 되었다면서 아빠를 놀려먹는다.  

가족들이 아빠에게 쓴 생일 편지.


50세의 첫날, 그래도 회사는 돈다.


50세가 되는 첫날이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바쁘다. 김 부장에게는 의미 있는 날 중의 하나일 줄 모르나, 회사에서는 그저 수많은 바쁜 날 중의 하나일 뿐이다.


07:00 ~ 08:00  판매전략부 부장 채용 면접

후보자는 30대의 젊은 중국인이다. 후보자가 면접장으로 들어오는 데 인사팀 김 부장 눈빛이 흔들렸다. 상상도 못 한 복장으로 후보자가 나타났다. 반바지에 면티를 입고 왔다. 머리에는 선글라스를 올려 썼다. 정년이 다 되어가는 한국인 법인장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처음 경험해보는 면접이리라... 

김 부장은 속으로 되뇌어본다. '복장은 문제없다. 후보자가 실력만 있으면 된다.' 걱정이 앞서는 채용 면접이다.


09:00 ~ 10:00  업무 감사 Kick-off 미팅

'크게 문제는 없겠지?' 하는 마음으로 업무 감사 Kick-off 미팅에 앉았다. 지난 1년간 직원들 업무 매뉴얼과 업무 프로세스 정립에 총력을 기울였다. 감사하게도 직원들은 부장을 따라와 주었다. 지금은 다들 정해진 프로세스에 따라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불안한 마음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참 대범하지 못한 부장이다.

 

10:00 ~ 12:00 밀려있는 결재 그리고 업무 대응

부장이 결재를 해야 진행 되는 일들이 줄줄이 밀려있다. 직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결재를 밀어올린다. 사내 인트라넷에는 결재요청 알람이 수시로 울린다. 새로운 메일은 수시로 올라온다. 협조를 요청하는 메일들이다. 사내 메신저를 통해 문의가 쇄도한다. 인사와 총무에 관련된 문의사항들이다. 하나씩 답변하도 보면 금새 시간이 지나간다.


12:00 ~ 12:45 도시락 

점심에 임원 2명과 도시락을 시켜서 함께 앉았다. 너무 바빠서 시간을 못 내시 도시락을 먹으면서 업무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저녁에 술 한잔 하자는 약속'은 이미 1년째 지키기 못하고 있다. 판매 임원은 요즘 죽을 지경이라며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13:00 ~ 14:00  본사 비전 내재화 영상회의

최근 본사에서 기업 비전을 새롭게 정립했다. 비전 내재화를 위한 전사 설명회가 영상회의로 진행되었다. 본사, 각 사업장, 해외법인 등에서 50여 명의 직원들이 참석했다. 본사의 주요 임원들이 참석한 자리였다. 

비교적 젊은 직원인 서 대리가 사회를 보고 있다. 서 대리가 이런 경험이 많지 않을 텐데 생각보다 잘 진행한다. '나중에 크게 될 재목인데...' 김 부장은 아빠 미소를 지으면서 설명을 듣는다.


서 대리는 설명회가 마무리될 즈음 '이제 마지막으로 질의응답을 받겠다고'한다. 온라인 공간은 순간 적막이 흐른다. 사회자에게 가장 곤란한 순간이다. 

'사회자를 좀 도와야겠구나...'

김 부장이 영상회의 시스템에서 마이크를 On으로 하고 간단한 질문을 이어나갔다. 회의가 끝나고 나니 서 대리의 메신저가 날아왔다.

" 부장님! 질문을 아무도 하지 않아서 당황했습니다. 질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14:30 ~ 17:00  신상품 런칭 전략 회의

중국에 신상품을 런칭할 예정이다. 런칭 전략에 대한 회의가 진행되었다. 본사 핵심 임원들이 영상으로 대거 참여했다. 중국인 임원이 런칭 전략을 영어로 프레젠테이션 해나가기 시작했다. 본사 사장님의 표정이 어둡다.

"빠진 것 없이 잘 준비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딱 이거다 하는 특징이 없습니다. 중국 소비자의 시선을 확 끌어당기는 런칭 전략이 단 하나라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직장생활도 매한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김 부장은 수첩에 메모를 적어 내려 간다. 

'직장생활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을 고만고만하게 잘해서는 의미가 없다. 이거다 싶은 것을 해내는 직장인이 성공한다. 인정받는다!!!'


17:00 ~ 19:30 채용 면접

2명의 판매전략부 부장 채용 면접을 추가로 진행한다. 다행스럽게도 마음에 드는 후보자가 나타났다. 법인장은 바로 채용을 결정했다. 이제 연봉 협상을 진행하면 된다. 이렇게 채용 과정을 통해 중국인 직원이 새로 입사하면 묘한 감정이 밀려온다. 감히 비교할 수는 없지만 출산한 것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19:30~20:00 직원들의 생일 축하

채용 면접을 마치고 자리로 오니 몇몇 직원들이 기다리고 있다. 어떻게 알았는지 케이크를 준비했다. 같이 김 부장의 생일을 축하해 준다. 회사 동료들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다.

국적이 달라도... 나이가 달라도... 피로 이어진 가족이 아니라도... 또 하나의 가족이다. 


멀리 공장에 있는 직원들은 메시지와 축하 영상을 보내왔다.


22:00   그래! 가족이다. 그리고 집이다.

사무실이 있는 상해에서 가족이 있는 쑤저우까지 차를 내몰았다. 2시간 거리다. 가족들은 아빠를 기다리고 있다. 미역국과 케이크가 준비되어 있다. 훌쩍 커가는 중학생 딸과 초등학생 아들이 약간의 안무를 추가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준다. 자기들끼리 깔깔거리면서도 끝까지 불러냈다.

참 감사한 일이다. 아빠가 주재원으로 해외를 돌면서 아이들도 해외 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었을 텐데 잘 자라주었다. 바쁜 주재원 생활을 핑계로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하니 늘 미안할 따름이다.


식사를 하고 케이크를 한 입 베어무니 한 주의 피곤이 쏟아져내린다. 잦은 출장으로 호텔을 전전하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몸이 노곤해진다. 눈꺼풀이 천근만근이다. 

"오늘 왜 이러지 너무 피곤하다."고 했더니 아들 녀석은 무덤덤한 얼굴로 "아빠 50살이 되어서 그래!"라면서 팩폭을 날린다.


50살의 첫날 참 힘들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있어서 더 바쁜 하루를 보냈다.

그래도 가족이 있으니, 돌아올 집이 있으니 참 감사하고 행복한 50살의 첫날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