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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콩콩 Nov 10. 2017

가이드라인

남들이 봐도 되는 솔직함

우연한 기회로 책 만들기 워크숍에 참여하게 되었다. 당장 만들고 싶은 책이 있어서는 아니고, 같은 팀의 절반이 워크숍에 참여한다기에 친구 따라 강남 가듯 신청을 한 것이다. 하지만 언제가 되든 책은 만들게 될 거라고 생각하며 살았으니 아주 갑작스러운 결정은 아니었다. 그동안 여기저기 써놓은 글도 적지 않으니 그중에 추리면 뭐라도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일기였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스무 살 무렵까지 꾸준히 일기를 써왔고, 싸이월드가 등장한 이후부터 최근까지 종종 그곳에 일기를 남겼다. 싸이월드가 빈집처럼 텅 비어버린 후로는 텀블러를 대나무 숲 삼았다. 이 정도면 소스가 충분하다 못해 많으니 가장 최근의 일기가 모여있는 텀블러의 글들을 정리해 볼 요량이었다.  하지만 그건 안일한 생각이었다. 3년 전 일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쓸 만한 것이 없었다.  


‘남들이 보기 부끄러운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 라거나, ‘남에게 보여주기에는 부족해서’ 같은 이유는 아니었다. 블로그의 이름이 무려 대나무 숲인데도 거기에 저장된 일기가 다른 사람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고 있었다. 


속상한 일이 있어 쓴 일기에 무엇 때문에 속상한 지가 담기지 않았다. 그때의 기분만 단편적으로 드러났다. 내 일기고, 그 주된 독자가 나인데도 암호처럼 사건을 숨겨 놓았다. 자연 앞뒤의 맥락은 일기를 쓴 나만 알았다. 남들이 봐줬으면 해서 공개된 블로그를 만들어 놓고, 남들이 봐도 봐도 모를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누가 나의 기분을 알아줬으면 하면서도 시시한 나를 알게 되는 건 싫었던 것이다. 물론 사건과 맥락과 내 생각이 잘 정리된 글도 있었다. 그런 글들의 공통점은 하나였다. 남들이 봐도 되는 감정. 남들이 봐도 되는 생각. 남들이 봐도 되는 사건.   


좋은 글은 꾸밈없는 글, 솔직한 글이라고 배웠고, 믿었고, 그렇게 써왔다. 다만 그 솔직함에 가이드라인이 있었다. 딱 남들이 봐도 되는 정도까지만 솔직했다. 꾸밈은 없었으나 재단은 있었다. 과장은 없었으나 편집은 있었다. 


사실 가이드라인은 아주 오랜 습관이다. 매일 일기를 숙제로 내야 했던 초등학교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나는 좀 영악한 편이었다. 읽는 선생님을 염두하고 일기를 썼다. 하지만 없는 일을 쓴다거나 내 생각을 꾸며 말하지 않았다. 다만 고민이나 이기적인 마음, 갈등은 일기에 쓰지 않았다. 그저 모범적이고 엉뚱한 어린이 역할에 충실했다. 선생님들은 알았을까? 아마도 몰랐을 것이다. 그 시절 나는 꾸밈없는 일기로 선생님들의 칭찬을 받았으니까. 


내 방, 네 방의 구분이 없었던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자기만의 공간이 모호했던 집에서 일기장은 너무 접근이 쉬운 곳에 있었다. 가족들은 다른 사람의 일기나 편지를 보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내 일기를 엄마나 언니가 보는 것이 싫었다. 책상 위의 일기장엔 수업시간에 느낀 점, 등하교 길에 길에서 있었던 일,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같은 이야기를 썼다. 누가 100번을 본다 해도 괜찮았다. 옷장 속의 열쇠가 달린 일기장에는 좋아하는 남자아이의 이야기, 그래서 좋았고, 그래서 슬펐던 이야기를 썼다. 열쇠는 저기 구석진 곳 아무도 관심이 없는 그곳에 꼭꼭 숨겼다. 



이 글도 가이드라인을 벗어나지 않는다. 내가 둘러놓은 이 라인 안에서 나는 안전하다. 이 라인 밖으로 더 좋은 글이 기다리고 있을까? 궁금하지만 바깥으로 발을 내밀기는 너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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