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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콩콩 Oct 27. 2017

계간 손혜진

오늘의 대화명

<계간 손혜진>은 프로필 상태 메시지나 대화명으로 자주 쓰는 문구다. 일상에서 ‘계간’이란 말을 쓸 일이 없고, 사람 이름에 붙어 있을 일은 더더욱 없어서 종종 무슨 뜻이냐고 질문을 받곤 한다. 계간(季刊)은 계절에 따라 한 해에 네 번씩 정해 놓고 책이나 잡지같은 것을 발행하는 일을 말한다. 하지만 이렇게 설명하는 경우는 잘 없다. “월간 윤종신 같은 거, 대신 이건 계절별로”라고 하면 대부분이 한 번에 이해한다. 그렇다. <계간 손혜진>은 <월간 윤종신>의 카피캣이다.

카톡과 라인의 프로필

<월간 윤종신>이 등장했을 때 무릎을 탁 쳤다. 짧고 간결하지만 강렬한 이름이었다. 특히 ‘월간’이 눈길을 끌었다. 그 때 그는 ‘라디오스타’, ‘패밀리가 떴다’에 이어 ‘슈퍼스타K’까지 다양한 장르의 예능에서 고루 활약 중이었다. 창작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활동과 빼곡한 스케줄에도 매달 노래 한 곡과 뮤직비디오를 세상에 내 놓겠다니. ‘월간’은 형식만 의미 하는 게 아니었다. 그는 의지를 이름에 넣어버렸다. 빼도박도 못하도록.  


‘환생’이라는 곡을 알게 된 이후로 그가 만든 노래, 특히 가사를 좋아했다. 예능 늦둥이에 등극(?)한 이후로는 그의 재치를 아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사하는 그는 너무 섹시해서 반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월간 윤종신>은 그 멋짐에 정점을 찍는 선언이었다.


우습게도 좋으면서 샘이 났다. 흔하다 못해 낡은 느낌의 ‘월간’이란 단어에 40년을 써온 그의 이름을 붙였을 뿐인데 너무 멋있었다. 매월 음악을 만들려고 벼러 왔던 것도 아니면서 선점 당한 느낌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로 쓸 수 있는 자신감 또한 부러웠다.


나도 그런 걸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대로 따라하는 건 싫었다. 그 때 ‘계간’이 생각났다. 이거였다. 같지 않지만 충분히 비슷했다. 한 달에 한 번 무언가를 만들어 낼 자신도 없는데 마침 잘됐다 싶었다. 3개월에 한 번, 일 년에 네 번 정도라면 뭐라도 하겠지.


그로부터 7년이 지났다. <월간 윤종신>은 오늘까지 이어져 그 이름으로 검색되는 곡만 무려 아흔 일곱 곡이나 된다. <계간 손혜진>은 여전히 나의 대화명이다. 그리고 예상했겠지만 그 이름으로 검색되는 결과물은 없다. 이번 분기에는 소설을 쓰고 다음 분기에는 노래를 만들어야지 라면서, 입으로만 그 시간을 지나왔다. 아주 가끔 무언가를 만들기도 했지만 계간에 턱 없이 모자랐다.


사실 <계간 손혜진>은 <월간 윤종신>의 카피캣이 아니다. 카피캣이라도 되었으면, 그의 1/4이라도 닮았으면 하는 마음의 이름이다. 그리고 그 마음을 잊지 말았으면 하고, 오늘도 그 대화명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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