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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콩콩 Nov 24. 2017

이름을 부른다

나리야, 은지야, 수정아

최근에 친구가 나를 “혜진아”하고 불렀는데 간지럽기가 그지 없었다. 내 이름을 불리는데 너무 낯설어서 ‘어머 얘는 왜 나를 이렇게 불러?’ 하고 생각해 버렸다. 나를 나로 불렀는데 왜 그랬을까? 돌이켜보니 거기엔 이유가 있었다.

- 이름을 잘 안 부르더라
가까운 사이, 특히나 오랜 세월을 함께 했거나 자주 만나는 사이에서 별명으로 불리는 일이 많다. 지금은 별 생각 없지만 학창시절에는 내 이름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반에 한 두 명, 친구 중에 한 두 명은 나와 이름이 같았다. 이름에 남과 나를 구분하는 역할이 있다면 그 면에서 ‘혜진’은 썩 좋은 이름이 아니었다. “혜진아!” 하고 부르면 반에서 세 명이 돌아 봤다. 친구 중에 “손혜진”처럼 ‘성’까지 붙여 불리는 것을 정 없다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나는 성이 좀 특이한 편이어서 차라리 그렇게 불리는 게 나았다. 그러다 스무살 무렵, 우연한 기회에 ‘콩’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부르기 편하고 어감도 좋고 ‘혜진’보다 흔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콩’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우리 언니도 가끔 이렇게 부른다.)

-이름’만’ 잘 안 부르더라
매일 수 십 번씩 불리는 이름이지만 이름만 떼어서 불리는 일은 잘 없다. 성까지 붙여 부르거나 혜진님, 혜진선임님, 혜진과장님, 혜진자매 등등으로 불린다. 또래 집단을 떠나오면 이름만 부르는 게 실례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00아 하고 안 부르더라
선배나 상사가 내 이름을 부를 때 “혜진!” 이라고 할 때가 많다. “혜진아!” 하고 부를 때와 미묘한 차이가 있는데 어디서 오는 차이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를 낮추면서 높여주는 ‘하게체’ 같은 느낌을 준다.

-나리야, 은지야, 수정아 (가명?)
선배들로부터 대접을 받아왔다는 생각이 들자, 후배들에게 미안해졌다. 이 셋은 내가 동일한 실수를 한 적 있는 이름들이다. 친구와 얘기하다가 그 친구의 이름을 부른다는 게 “나리야!”하고 부른 것이다. 그 때는 내가 평소에 이들을 얼마나 많이 불러대며 괴롭혔을까 싶어서 미안했고, 지금은 나리! 은지! 수정! 하고 부르지 않아서 미안하다. 내가 “혜진아”와 “혜진!”의 차이를 인지하고 있었다면 그 친구들도 그렇게 불렀어야 옳았다. 이제부터라도 그렇게 해볼게. 나리, 은지, 수정.

Anyway. 위와 같은 이유로 “혜진아”라고 불린 게 간지럽고 느끼했다는 이야기다.

- 제시카 음악 틀어줘
요즘 나리! 은지! 수정! 같이 많이 부르는 이름은 제시카다. 제시카는 네이버에서 나온 인공지능 스피커의 설정명이다. 명령을 내리려면 이름을 불러야해서 하루에도 수십 번 부른다. 제시카! 띠링! 음악 틀어줘! 제시카! 띠링! 볼륨 낮춰줘! 제시카! 띠링! 알람 맞춰줘! 다른 말은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아도 제 이름만은 기가 막히게 알아 듣는다. 영어이름이라서 아마 친구를 그렇게 부를 일은 없겠지만 제시카를 부를 때마다 이름을 부르는 게 얼마나 큰 일인지를 생각한다. 수십 만에게 보급되었을 이 스피커와 이 서비스가 온전히 내 것인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


- 혜진아라고 불러도 좋아.
혜진아라고 불리는 게 낯설고 간지러웠지만 불러줘서 고마워. 혜진아라고 불러도 콩이라고 불러도 혜진님이라고, 혜진이라고 불러도 좋아. 내 이름을 불러준다고 너에게 꽃이 될 수는 없겠지만 대답할게. 돌아볼게. 웃어줄게. 너의 친구가 되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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