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쓰기 선언

눈을 감는 남자

by 손콩콩

1월은 계획하기 좋은 달이다. 다들 계획하고 더러는 시작도 한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나는 시작보다는 끝에 더 동기부여가 되는 편이라 그 해가 넘어가기 전에 소망했던 일을 시작하거나 미루던 일을 해치우곤 한다. 그렇게 해서 작년 말에 허리치료와 필라테스를 시작했고, 독서클럽에 가입했으며, 몇 달을 벼르던 탈색을 했다. (책도 12월이라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고 본다.)

1월 버프를 받아 시작하는 건 어쩐지 3일만 가고 말 것 같고, 모두가 다 하니까 괜히 하기 싫어지는 청개구리같은 마음이 더해져 1월 1일부터 무언가를 시작하지 않는다...는 건 사실 거짓말이고 남들은 정리와 마무리를 하는 12월에 정리는 커녕 미뤄놓은 일을 바삐 시작하느라 산만한 1월을 맞이해서 계획할 여력이 없다. 그래도 결산과 정리, 계획 세우기는 내게 오락과 같아서 매해 잊지 않고 하기는 한다. 보통은 음력설에 하는데 결산과 계획까지는 하더라도 시작은 힘들다. 그럴 때는 3월 2일을 활용한다. 3월 2일부터 무언가를 시작하면 다시 학생이된 것 같고 그러다보면 서울대라도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의욕이 샘솟는다.


위의 두 문단을 요약하자면, 그래서 '아직 2018년 계획을 못 세웠다.'인데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계간 손혜진' 프로젝트를 좀 제대로 해보고 싶다. 계절별로 창작물을 내놓겠다는 목표를 삼고, 1분기는 소설을 써볼까 한다. 학교 다닐 때는 강제로라도 한 학기에 1, 2편은 썼는데 졸업하고 나온 세상이 내가 상상했던 허구의 세계보다 더 현란해서 소설을 쓸 생각을 못했다...는 건 핑계고 그렇게까지 소설쓰기가 간절하지 않았다.


일단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은 먹었고, 회사 사람들에게도 큰소리(?)도 쳤는데 오래 놓고 있었더니 손도 머리도 모두 굳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막막하다. 전에는 어떤 장면만 봐도 뒷 이야기가 떠오르고, 문장 하나에 꽂혀서 A4 두 세장 정도는 훌떡 써내려가곤 했는데... (내가 이렇게 쓰면 다들 진짜 그랬는 줄 알겠지? 후훗)


그래서 찾은 방법이 우선 꽁트를 쓰는 것이다. 좀 짧은 호흡으로 허구의 글을 써내면 소설 근육(그런 근육이 내게 정말 있었다면)이 좀 풀리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그리고 이렇게 시끌시끌 소문을 내는 것이다. 안 쓰고는 배길 수 없도록. 그러니까 이 글을 읽은 사람은 나를 볼 때마다 "소설 쓴다며?", "소설 잘 되어가?", "소설 언제 보여줄거야." 같은 말로 독려해준다면 (아마 난 이글을 지워버리겠지) 좋겠다.


그래서 맛보기로 소개하는 <눈을 감는 남자>


남자가 사진 찍히는 걸 싫어하게 된 건 어렸을 때의 일이었다. 그러니까 디지털 카메라커녕 필름 카메라도 귀했던 시절, 사람들이 전화가 되는 카메라를 한 대씩 가진 세상이 올 줄은 스티브 잡스도 생각하지 못했을 시절이었다.


그 시절 남자의 집은 넉넉한 편이 아니었다. 남자의 부모님은 작은 과일 가게를 운영했는데 빚을 얻어 시작했기 때문인지 쉬는 걸 죄악처럼 여겼다. 빚을 다 갚을 때까지 몇 년 동안 온 가족이 함께 외출한 것은 단 한 번 뿐이었다. 심지어 온 집안의 경사였던 노총각 삼촌 결혼식에도 남자와 남자의 아버지만 다녀올 정도였다.


남자의 가족의 유일한 외출은 남자의 형이 백일장에 나가던 날이었다. 5월의 어느 일요일이었고, 보호자 동반 하에 그러니까 말하자면 가족단위로만 참여할 수 있었다. 남자의 형은 예나 지금이나 글쓰기에 썩 취미가 있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백일장에 나가고 싶은 사람" 이라는 선생님의 말에 홀린 듯 손을 들었다고 했다. 남자의 어머니는 큰 아들의 철없음에 화가 났다. '형이 곧 혼나겠구나.' 남자 직감했다. "가자, 이왕이면 온 가족이 다같이." 그 말에 어머니가 놀라 돌아봤다. 남자의 아버지였다.


백일장 날 아침은 분주했다. 새벽부터 남자의 어머니는 김밥을 쌌고, 아버지는 옆집에서 빌려온 카메라를 만졌다. 어머니는 남자에게 삼촌의 결혼식에 입고 갔던 옷을 입혔다. 그 사이 남자가 많이 컸는지 발목이 껑충했다. 형은 연필을 일곱자루나 깎았다. "멍충아, 럭키 세븐이라고 아냐?" 남자는 모자라 보이는 짧은 바지를 입고 있어도 형이 놀려도 기분이 좋았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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