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잘 읽는 방법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다

by 손콩콩

소설가가 꿈이라고 하면, 으레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또래에 비하면 많이 읽은 시절도 있었을 것이다.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책을 읽을 때도 있었다. 대졸실업자로 분류될 때는 하루종일 책으로 도피하기도 했다. 하지만 보통 많이 읽어야 할 것 같은 부담만 안고 살았다. 많이 읽지 못했고, 좋아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안 읽어서 그렇지 읽을 줄은 안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책 잘 읽는 방법?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다.

책 읽는 방법을 쉽게 구체적으로 알려주는데 왜인지 가슴이 따뜻해 지는 그런 책


새내기시절, 문학동아리에 가입하고 읽은 첫 책은 <파우스트>였다.
정확히 말하면 동아리 모임을 위해 ‘읽어야 했던 책’이었다. 나름 문학소녀라고 믿고, 무려 문학동아리에 가입했지만 돌아보니 한국소설 말고는 읽은 책이 없다시피했다. 서양고전은 더더욱 읽은 적이 없었다. <파우스트>는 두껍고, 주제나 내용도 어려웠지만 무엇보다 번역체에 기가 질려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그려왔던 대학생활과 달라 조금 실망할 즈음이라 그랬는지 책 한 권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럽고 싫어 학교를 그만두고 싶을 지경이었다. 고전이라는 이유로 이렇게 재미없는 책을 참고 읽어야 하는지, 아니 그전에 대체 고전이 뭔지 그게 뭐라고 내 기를 이렇게 죽이는지 싫어 싫어 다 싫어.

우리가 살아가는 구조를 알아내는 데 책, 특히 고전만큼 좋은 게 없어요

“고전이 달리 고전이겠어. 고전을 읽어야해.” 라는 말은 ‘고전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고전은 중요하기 때문이다.’ 처럼 들렸다. 남들이 그렇다니까 그런줄 아는 젠체. 그런 의심은 ‘고전’이라면 기가 죽는 나를 위한 방어였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사는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라니. 읽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겠군.


안 읽을 땐 하나도 안 읽고, 읽을 땐 몰아 읽었다.
책 읽기의 맥이 끊겼다가 다시 시작할 때마다 무얼 읽어야 할지 막막했다. 책은 너무 많은데 무얼 읽어야 실패가 없을까. 서울대 권장도서, 청소년 권장도서, 지식인의 서재나 명사들이 추천한 책들을 메모해 뒀다가 도서관에서 가서 찾아 읽었다. 메모할 때는 재미있어 보였는데 도서관에서 만나면 읽기 싫어지는 책도 많았다. 몇 십 권의 목록에서 겨우 두 세 권을 건졌다. 책을 읽다보면 읽고 싶은 책이 생겼다. 한 두 권만 읽어도 그랬다. 책에서 책을 소개하거나 인용하기도 했으며 아예 다른 책을 소재삼기도 했다. 소개된 책에 흥미가 동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듯 읽을 책이 생겼다.

아아. 그래 책 속에 책이 숨어 있었구나. 그래서였구나.


안타깝게도 꼬리는 진작 끊어졌다.
영어공부에 집중하겠다며 출퇴근길에 독서 대신 영어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부터였다. 곧 영어공부도 안하고 책도 안 읽는 시간이 반복됐다. 그러다가 이직을 했다. 옮긴 회사에 도서비를 무제한 지원하는 제도가 있다고 했다. 그게 내게 어떤 의미인지 처음에는 몰랐다. 평생 산 책이 손에 꼽혔다. 과제를 해야하거나, 이미 읽었는데 너무 좋아서 또 읽고 싶거나, 보고 싶은데 도무지 대출순서가 돌아오지 않는 책들만 가끔 샀다. 내게 ‘책은 빌려 읽는 것’이었다. 이상하게도 산 책에는 손이 안갔다. 대출기간 2주를 원동력 삼아 책을 읽어버릇 해서 언제든 읽을 수 있는 책은 우선순위에서 밀렸던 것 같다.

많이 사야 읽을 수 있다니...


지난 한 해 태어나서 가장 많은 책을 샀다.
백 여권. 한 달 평균 열 권 남짓. 10만원~15만원 정도였다.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데도 ‘지난 달에 산 책을 아직 다 읽지도 못했는데 또 책을 사도 될까?’ 하는 죄책감에 서점가기를 미룰 때도 있었다. 서점에서도 책을 쉽게 못 골랐다. 회사돈도 귀하고, 그걸 읽어야 하는 내 시간도 귀하니까. 내 책이지만 빌려 읽는 책처럼 다뤘다. 책 끝을 접거나 밑줄긋기는 커녕 책을 활짝 펼치지도 않았다. 못했다는 것이 옳겠다. 저 까짓게 감히 읽지도 못할 책을 사도 될까요? 책을 마음대로 다뤄도 될까요? 제가 그럴 수 있을까요?


처음으로 책끝을 접었다.
책을 활짝 펼치지 않는 채로 읽는 습관은 여전하지만 <책 잘 읽는 방법>을 읽으면서 처음 책을 접었다. 앞으로 내책이라서 더 소중한 경험들이 쌓일 것이다.


이제야 조금 ‘책값 무제한 지원’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다. 덕분에 나는 책 읽는 분위기, 책 권하는 분위기에 산다. 회사 사람들은 매일 책 이야기를 한다. 옆 자리 동료의 책상 위에 올려진 책에 힌트를 얻고, 옆 부서 동료가 SNS에 올린 책 사진에 영감을 받는다. 어떠어떠해서 좋았다는 책추천도 끊이지 않는다. 문득 침대 머리맡에 탁자에 가방 속에 놓인 이 책들을 본다. 나는 책값 무제한 지원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이미 책 사는 재미, 그걸 읽는 재미을 알아버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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