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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콩콩 Jan 28. 2018

어느 중독자의 고백

자기계발중독자

그러니까 시작은 자기계발중독자마냥 모임과 과제를 반복하던 지난주부터였다. 그렇지 않아도 할 일이 잔뜩인데 딴짓이 ‘훅’ 하고 들어왔다. 생전 눈길을 준 일이 없던 씨름중계를 넉놓고 보던 시험기간 같은 일이었다.


클로바야 음악 좀 틀어보거라.  
가사있는 음악을 들으면서 생각이 필요한 일을 못한다. 어느새 가사를 생각하고 있거나 음악을 전혀 안 듣고 있다. 음성인식 스피커를 집에 들인 이후 배경음악 장르를 고르는데 한참이 걸렸다. 클로바에게 “책 읽을 때 좋은 음악 틀어줘.” 라고 했는데 잘 알려진 포크송이 나왔다. 네이버뮤직이 큐레이팅을 잘못했는지 아니면 인공지능이 학습을 잘못했는지 아니면 대개는 가사가 저렇게 잘 들리는 음악을 들으면서도 책을 읽을 수 있는건지 나에겐 맞지 않아 음악을 껐다. 그렇다면 가사가 안 들리는(?) 팝송을 들어야겠다. “클로바 팝송 틀어줘.” 비트가 빠른 팝이 나오자 어느새 춤을 추고 있었다. 음악을 껐다. “클로바 조용한 팝송 틀어줘.” 보통은 잘 안들렸지만 후렴구에 훅(hook)이 나오자 가사를 또 따라가고 있었다. 음악을 껐다. 비트도 가사도 없는 클래식을 듣기로 했다. 춤을 추거나 따라부르지 않아서 집중에 좀 더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이후로 종종 클래식을 틀어놓고 책을 읽거나 글을 썼다.


클래식도 따라 부를 수 있었다니
분명 클래식을 배경처럼 깔아 놓고 내 일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따라 부르는 나를 발견했다. ‘레시솔 라시라솔 솔라솔라솔#파파 레시솔 라시라솔 솔라솔라솔#파파 레 레시솔미 미솔미도 도라#파레’ 읭? 뭐하니? 그리고 다시(?)는 집중할 수 없었다. 피아노 학원에서 한 번 칠 때마다 악보 위에 동그라미를 그리던 그 곡. 인천 집에 살 때는 몇 년에 한 번쯤 악보를 꺼내 치곤 했었다. ‘근데 그거 나 아직 칠 수 있나? 한 번 쳐보고 싶다. 우어어어어 지금 당장 안 치고는 못 배기겠어. 당장! 다자아아앙!’ 하고 지난 두 달 간 꺼져있던 디지털피아노 전원을 켰다. 구글에서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를 검색하고 이게 16번 1악장 다장조였다는 걸 비로소 알았다. 이어폰 줄에 손가락은 자꾸 걸리고, 작은 휴대폰 화면에 깨알같은 음표들로 눈은 침침하고, 고작 악보 한 쪽을 치면서 왜 이렇게 틀리는지. 함께 검색된 다른 곡들의 앞단까지 몇 번 깔작댔더니 새벽 두 시였다. 깔깔. 이 시간에 피아노 소나타라니. 모차르트 나셨네. (라고 웃기엔 그 분은 너무 천재지만. 세상 천재, 세상 멋쟁이 하트)


회피의 동물, 자기합리화의 요정

잘자리에 누웠는데 자꾸만 영롱한 피아노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원래 올해는 피아노를 쳐야하는 운명이었는데 내가 자꾸 소설이니 뭐니 딴 데 한눈을 파니까 하늘이 운명을 알려준 것이 아닐까. 하지만  벌여놓은 일이 이렇게 많은 판국에 피아노까지 얹기엔 염치가 없었다. 두 마음이 싸웠다.

천사: 솔직히 말해. 피아노가 치고 싶은 게 아니라 딴짓하고 싶은 거잖아. 도망칠 생각말고 하던 거나 잘하라고.

악마: 뭐? 내가 무슨 유흥을 즐기겠다는 것도 아니고, 시간을 죽이겠다는 것도 아니고, 피아노가 도박도 아닌데 있는 피아노 좀 치면 어때 어떠냐고오!!!


악마가 이겼고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2,3,4권을 샀다.

양심상 5권은 안 샀다고 한다.


어느 중독자의 고백

집에 빨리 가고 싶었다. 일하다가도 문득문득 맑은 피아노 소리가 떠올랐다. 손가락이 움찔거렸다. 집에 돌아와서는 깨끗하게 씻고 피아노 앞에 앉았다. 악보를 펴고, 이어폰을 꽂았다. 아날로그 피아노보다 소리나 터치감은 못하더라도 야밤에 소음 걱정없이 온전히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참 좋았다. 틀리는 소리도 너무 잘 들리는 게 문제였지만. 어렸을 때 배웠던 곡을 치다가 새로운 곡을 익혀 보려고 음원을 찾았다. 그 김에 원래 알았던 곡들도 다시 찾아 들었다. ‘어? 이게 이렇게 빠른 곡이었어?’ 그 속도에 맞춰 다시 치려는데 짜증이 났다. 당연히 마음처럼 칠 수 없었다. 속도가 빨라지니 더 많이 틀렸다. ‘매일매일 꾸준히 연습하면 비슷하게는 칠 수 있을 거야. 우선 손가락 굳은 걸 좀 풀어야 하니까 하농을 살까?’ 어? 또냐? 또야! 젠장 맞네 맞어. 자기계발 중독자.


피아졸라랑 파가니니는 또 뭔데

친구따라 탱고 콘서트에 갔다. 반도네오니스트로 유명한 고상지씨와 클래식 연주자들이 함께하는 공연이었다. ‘이게 반도네온 소리구나!’ 처음으로 반도네온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바이올리니스트가 굉장히 힘들어 한 곡도 있었는데 제목이 <상어>였다. “탱고계의 파가니니” 라는 코멘트가 붙었다. 인상적인 연주였고 앵콜로 다시 들었다. 좋은 공연이었고 집에 와서 피아졸라와 파가니니를 번갈아 가며 듣고 있다. 모차르트 선생님? 잔소리 하지 말아 주세요. 그러면 하기 싫어진단 말이에욧! (먼산)

고상지와 김덕우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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