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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콩콩 Mar 29. 2018

1983

누가 그 해에 태어났는가

오래전부터 83년생들을 지켜보고 있다. 포털에 인물검색 서비스가 등장하기도 전 부터니까 짧게 잡아도 15년이다. 나와 나이가 같은 셀럽은 신기하게도 기억에 뚜렷이 남아서 그들의 활동에 자연스레 관심이 생겼다. 근황은 어떤지 앨범은, 작품은, 배역은, 화제성은 어떤지 그 활약을 따라 짚어왔다. 십 몇 년을 지켜보며 얻은 인사이트는 83년생 셀럽의 활약이 비슷한 또래의 82, 84년생보다 미미하다는 것. 안타깝지만 지금까지는 그렇다. 심지어 최근 나온 소설도 <82년생 김지영>으로 83년을 한끗 비켜갔다. 조지오웰의 소설도 하필 <1984>다. 대체 83년에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아니 아무 일도 없었던 건가?


83년생 연예인

셀럽을 연예인으로 좁혀 보자. 82년생을 대표하는 연예인으로 송혜교, 손예진, 한가인, 한지민, 현빈, 비, 이준기를 들 수 있다. 83년생 대표 연예인은 정유미, 이하늬, 한혜진(모델), 김희철 정도. 82년생 탑스타의 대부분이 데뷔 초반부터 지금까지 거의 20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켜온 것에 비해 83년생 스타는 서른이 넘어서 두각을 보인 경우가 많다. 누군가는 내가 예로 든 83년생들을 과연 송혜교와 같은 탑스타로 묶을 수 있느냐며 이의를 제기할지도 모른다. 82나 83이나 뭐가 크게 다르냐며 그 둘을 나누고 있는 나를 이해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83년생이 82년생, 84년생보다 덜 유명한 게 속상하다. 82, 84년생이 못하기를 바라는 건 아니고 그저 83년생이 어디가서 안 꿀렸으면 좋겠다.  

잘 버티는 83년생

>> 83년생 연예인은 누가 있을까 궁금한가요?


우리 83둥이들

다른 83년생들이 나를 애틋하게 생각해줄리 만무하나 나는 애틋한 마음으로 83년생을 걱정한다. 지역별 차이가 있겠으나 연합고사 없이 고교에 진학한 첫 세대. ‘열린교육 1세대’, ‘이해찬 1세대'라는 조롱의 꼬리표를 달고 실험대상처럼 자라 단군이래 최저학력이라는 불명예를 씌움받은 세대. 그 최저학력으로 사상초유의 불수능을 치루고 국내에서 월드컵이 치뤄지는 해에 스물이 되어 지옥과 천국을 오간 동지. 중1에 H.O.T를 만나 고3에 잃으며, 1세대 아이돌의 흥망성쇠를 십대에 경험했지만 비(82), 세븐(84), 동방신기(유노윤호가 86), 보아(86)가 호령하던 시절엔 이렇다할 아이돌을 못 내놓은 그 83년생(그나마 슈주의 이특과 김희철이 83). 나와 비슷한 호흡으로 이제까지 살아왔을 우리 83둥이들. 내가 격하게 애껴. 알고 있니?


83년생 김민섭 

작년부터 관심이 생긴 작가 김민섭. 맥도날드 아르바이트와 대학 강의를 병행하던 시절에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필명으로 썼고 이후 대학을 벗어나 세상으로 나온 83년생이다. 대학에서 10년 넘게 쌓아온 시간을 깼다는 데 한번, 전업작가의 길을 택했다는 데 또 한번, 그리고 전업작가로 4인 가정의 생계를 성공적(?)으로 이어간다는데 한번 놀랐다. 무엇보다 술술 읽히는 문장에 단단하고(하지만 경직되지 않은) 깊이있는 생각이 담겨 있어 놀랐다. 83년생이 언제 이렇게 컸지? 아, 나만 빼고 다 컸나?


83년생 조석

김민섭 작가는 페이스북에도 활발히 글을 쓴다. 83년생의 이야기라고 꼭 집어 말하지는 않지만 종종 그의 글에서 83년생의 삶을 읽는다. 얼마전 그가 글에서 동갑인 만화가 조석과 이말년을 언급했다. 자랑스럽게도 (나 혼자 정말 자랑스러워 한다) 마음의 소리의 조석과 이말년 시리즈의 이말년은 83년생이다. 김민섭 작가는 조석과 이말년의 작품에서 ‘육아’를 볼때면 “이제 정말로 ‘어른’이 되었구나 싶다”고 했다. 군대와 아르바이트 이야기를 코믹하게 그리며 등장한 웹툰 작가가 부모가 되어 육아 이야기를 그린다. 안 그리려야 안 그릴 수 없게 삶 깊숙이 들어온 육아. 어느새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어른이 된 83년생. 그 사이 웹툰계에서 그들은 시조새급이 되었고, 여전히 활발하게 그린다. 83년생 작가들이 계속 자신의 이야기, 나아가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 보면서 안심한다. 나와 비슷한 누군가가 나를 대변해 주는 것 같아서. 우리 존재가 세월이랑 같이 흘러가 버리지는 않을 거 같아서.  (이 글을 쓰다가 응급의학과 의사인 남궁인 작가도 83년생인 걸 알았다. 지켜봐야지.)

>> 83년생 김민섭 작가의 글이 궁금한가요?


83년생 손혜진

가끔 내 이름을 검색한다. (나만 그래?) 한 반에도 서너 명 쯤 있었던 흔하디 흔한 이름인데 성이 좀 특이해서 그런지 아직 인물검색 결과는 없다. 검색결과의 대부분도 “손예진”의 오타다. 아직 내 이름이 인물로 등록 안되어서 좋다. 내가 꼭 첫 번째 검색 당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이름을 검색창에 넣을 때면 왠지 조마조마 하다가 결과를 보고는 작게 안도한다. 스물 여섯 무렵만해도 나는 세상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속한 분야는 바꾸는 사람이 될 줄 알았다. 평범한 사람, 일반 사무직, 대체 가능한 인력, 원 오브 뎀임을 아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별로 대단치 않은 사람임을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임을 인정하는 게 아직도 쉽지않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검색 당하는 첫 번째 손혜진은 내가 되는 걸 상상하며 산다.  

손예진 때문에 종종 내 이름을 선점당한 것 같기도 하지만...

사랑하는 만큼 질투했다

고백한건대 순수한 마음으로만 83년생을 지켜본 것은 아니다. 사랑하는 만큼 질투했다. 관심있는 만큼 경계했다. 정이현의 소설집 <오늘의 거짓말>에서 72년생들은 서태지가 72년생이라는 것을 자랑스러워 하기도하고, 절망스러워 하기도 한다는 대목이 나온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다.) 그 대목을 읽으면서 서태지 같은 존재가 83년생에 없다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버렸다. 나와 세상을 겹치게 살아온 누군가가 내가 따라갈 수 없는 저 멀리에 도착해 있는 건 어떤 기분일까. 83년생 슈퍼스타를 기다리는 한편 정말 나올까봐 조마조마 찌질한 나.


88년생 권지용 

사실 83년생뿐 아니라 72, 79, 85, 88, 90, 97년생의 삶도 트래킹 하고 있다. (주로 연예인이다.) 88년생 권지용은 세계에서 팔로어가 가장 많은 사람이고, 별명이 무려 연느인 김연아는 90년생이다. 세계 무대를 찢어버린 방탄소년단의 막내는 97년생이다.  


스물 일곱에 쓴 일기에 이런 대목이 있다.   

“어떤 누구는 벌써 무언가를 이룬 나이. 혹은 이뤄냈던 나이. 결혼을 해도, 취직을 해도, 등단을 해도 하나도 대단하거나 어색하거나 화제가 되지 않는 나이 그 스물일곱의 일기”

9년 전에 나는 이룬 것이 없어서 조바심이 났다. 조바심이 나다 못해 우울했다. ‘나이’라는 테두리에 갇혀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는데 지금 보니 얼마나 어린가. 9년 후, 마흔 다섯의 나는 오늘의 나를 보고 분명 ‘어리다’라고 돌아볼텐데 서른여섯의 나는 ‘나이’의 그늘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이 나이에 이룬 게 없어서 어쩌지 고민하면서 다른 사람은 몇 살인지 궁금해 한다.(사실 이 글도 내 나이를 밝혀야 해서 쓸까말까 고민했다) 긴 글로 변명하려 해보았지만 ‘나이’는 혹은 ‘나이에 대한 강박’은 나의 벽이다. 아직 못 넘었고, 여전히 견고하다. 에휴.


그런 와중에 지구상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83년생은 북에 계신다. (이 마저도 84년생이 유력하다고...)


#목요일의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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