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자를 위한 게임 walkr
시작은 오해였다.
자주 보는 웹 매거진 [ize]에서 ‘걷기 게임앱’을 추천했다. 자꾸만 게을러지는 내 걷기에 동기를 심어주고자 앱을 설치했다. walkr였다. 이제와 다시 찾아보니 ize는 walkr를 분명 만보계 겸 게임 어플리케이션이라고 소개했으나 내게는 만보계가 볼드로 보였던 모양이다. 만보계 ‘겸’ 게임 어플리게이션이라는 정의는 내 머릿속에서 ‘걷기 게임’으로 정보처리되었고, 그렇게 나는 walkr가 되었다. 2016년 9월의 일이었다.
“그거 뭐야?”
누가 봐도 게임이 분명한 그래픽 화면을 만지작대고 있으면 친구들이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어, 이거 걷기 게임이래서 많이 걸으려고
다운 받았는데 안 걸어도 할 수 있더라고.”
Walkr는 말하자면 우주를 키우는 게임이다. 행성을 찾고, 행성에서 자원을 수확하며, 행성에 거주하는 생명체를 늘리는 게 주 활동이다. 내 걸음수 만큼 충전된 에너지는 활동을 촉진하는 용도로 사용한다. 걸음수가 게임에서 사용하는 에너지가 된다는 건 walkr를 수 많은 시뮬레이션 게임과 구분짓는 주요한 특징이지만 ‘워커’라는 이름에도 불구하고 걷지 않아도 무리없이 게임을 할 수 있다. 앱을 설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게임의 핵심이 걷기가 아니라는 걸 눈치챘다. 그 때문이었을까? 비슷하게 walkr를 시작했던 몇 안되던 친구들은 금세 흥미를 잃고 우주를 떠났다.
나를 붙잡은 건 그래픽이었다.
행성이 귀여웠다. 행성마다 다른 생명체가 살고, 그 행성만의 자원을 생산해 내는데 깨알 같은 그래픽이 귀여움을 더했다. 게임 속 친구들과 에너지를 교환하고, 함께 미션을 달성하는 활동도 있지만 다음 찾게 될 행성 그래픽이 궁금해서 앱을 열었다.
그 다음은 습관이었다.
한 달이 지나고, 100일이 지나고, 어느새 일 년을 지나, “그 게임 아직도 해?” 라는 질문을 여러 번 받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아침저녁으로 앱을 열었다. 한 행성을 7단계까지 업그레이드 해야 그 행성의 자연경관이 완성된다는 것, 행성 마다 최고효율을 내는 위성이 정해져 있다는 것도 긴 시간이 지난 어느날 깨달았다. 행성과 위성의 조합이나, 에너지를 빠르게 얻는 방법 같은 팁을 공유하며 전략적으로 게임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다.
그리고 남은 것은 오기였다.
아니면 끈기랄까. walkr의 우주에서 찾을 수 있는 행성은 112개. 행성을 발견할 때마다 워커덱스 빈칸이 채워진다. 처음엔 몇 시간이면 다음 행성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행성 찾기를 거듭할수록 그 시간이 계속 늘었다. 너무 빈칸이 많았던 초반에는 내가 이걸 다 찾을 때까지 이 게임을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walkr를 시작하고 1년 즈음 되자 제법 많은 칸이 채워졌다. 무과금으로. 오로지 노가다로. 나의 오기로.
마지막은 은전 한 닢이었다.
100여개의 행성과 DFR이라고 불리는 식량생산기 40여개에서 자원을 수확 후, 재생산을 하기 위해 식량을 공급하는 데 점점 많은 시간이 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버튼을 누르고 있다가도 ‘대체 이걸 왜 하고 있는 거지?’ 하는 의문이 불쑥불쑥 찾아왔다. 이 시간에 책을 한 장 더 읽는 게 훨씬 유익할 거 같은데? 하지만 어느새 나는 모든 행성을 다 찾는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건 또 왜? 모르겠다. 그냥 갖고 싶었다. 꽉찬 워커덱스, 모두 완료된 미션. 그건 마치 늙은 거지가 소망하던 은전 한 닢 같았다.
마침내 그날이 왔다.
2018년 4월 29일 마침내 모든 행성을 발견했다. (이렇게 말하니까 정말 우주탐험가라도 된 기분이다) 첫 행성을 발견한지 20개월만이었다. 나는 목요일의 글쓰기 소재가 완성되었다며 좋아했다.
시작을 곧잘 한다.
꾸준히 하는 것도 제법 한다. 다만 끝을 못낸다. 무얼 그만둘 줄을 모른다. (아직 싸이월드를 “하는” 사람이라면 설명이 좀 될까?) 끝까지 가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한다. 오늘을 기다리며 행성을 찾았지만 오늘이 지나면 어떻게 해야할지 정하지 못했다. 나도 한 때 우주를 가져 보았노라고 그 우주에는 1,409명의 생명체가 살고 있었노라고 말하게 될 지도 모른다. 아니면 20개월 동안 쌓인 내 걸음의 기록에 오늘의 걸음을 더하게 될 수도 있고.
오늘도 걷는다마는 walkr의 정처는 여전히 모르겠다. (아직 싸이월드 “하는”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