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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콩콩 May 25. 2018

탈색하면 기분이 조크든요

사는 게 무료해서 뭐라도 해보고 싶을 때 머리 모양을 바꾸곤 했다. 어느 날부터 컷이나 펌으로 더이상 무료함을 달랠 수 없었다. 탈색이라면 모를까. ‘살면서 금발 머리도 한 번은 해봐야지.’ 하고 생각해 왔기에 곧바로 실행해 옮겼다…는 건 거짓말이고 팀장님에게 물어봤다.  


 “저 금발머리해도 돼요?


내 머리를 왜 팀장님한테 물어봤느냐면 뭔가 하면 안될 거 같은 느낌적인 느낌 때문이었다. 광고회사의 AE로 일하고 있었는데 고객사는 보통 보수적인 회사였다. 그 중에서도 보수적인 임원급 보고에 들어갈 때가 적지 않았다. 평소에는 청바지며 티셔츠를 입고 싶은대로 입었지만 임원들을 만날 때면 좀 격식 있는 옷을 챙겨 입었다. 팀장님들한테는 중요한 광고주 미팅이 갑자기 생기기도 해서 재킷이나 구두를 회사에 가져다 두는 분들도 있었다. 미팅인 걸 잊고 큰 후디를 입고 온 동료와 옷을 바꿔 입는 일도 가끔 일어났다.   


그런데 금발이라니.  


 “안돼.”  

팀장님이 대답했다.  


“그럼 투톤도 안돼요? 투톤하고 미팅있을 때는 탈색머리는 묶어서 숨길게요. 티 안나게.”

나는 한 번 매달려 봤다.  


 “안돼...”  

팀장님의 대답은 단호했던가 곤란했던가.   


 팀장님의 반대에 밀려 탈색을 포기했다… 라는 건 거짓말이고 사실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아서 마음을 접었다. 애초에 팀장님에게 물어보기도 전에 ‘탈색은 무슨 탈색이야.’ 라고 생각했다. 내가 다음날 금발머리로 나타났다해도 막을 수 있는 사람도 없고, 광고주가 내 머리색에 클레임 걸 가능성도 희박했지만 하지 말아야 할, 아니 안 해도 되는 이유를 찾느라 애먼 팀장님만 괴롭혔다. 나는 그저 무료했을 뿐이었다.  


‘살면서 금발 머리도 한 번은 해봐야지.’ 라는 생각은 진짜였지만 ‘아직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아. 지금은 아니야.’ 하며 미뤘다. 돌이켜보니 ‘안 어울리면 어쩌지? 내 머리색 때문에 광고주가 내게 편견을 가지면 어쩌지? 그게 내 일을 평가하는 데 영향을 미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섞여 있었던 것 같다.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지 신경 쓰느라 탈색의 선을 넘지 못했다.   


견물생심. 이 말을 여기에도 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사이 탈색을 하는 사람들이 흔해졌다. 이직을 하고는 더 이상 고객사 임원을 만날 일이 없어서인지 회사에서 탈색 머리를 한 동료들도 자주 만났다. 눈에 보이자 뽐뿌가 왔다.  


‘나도나도! 나도 원래 탈색 하고 싶었어!’


유행을 따라 가는 게 아니라 나도 오랫동안 탈색을 생각해왔노라는 증거로 팀장님에게 했던 질문을 들었다. 그리고 곧장 미용실로 달려갔다…는 건 거짓말이고 여전히 “나 탈색할거야.” 라며 입으로만 미용실을 들락거렸다. 뽐뿌는 파도처럼 밀려왔다 다시 밀려나갔다. ‘머릿결이 많이 상한다던데, 두피도 약한데, 안 어울릴 수도 있는데 원복하려면 최소 1년인데…’ 하는 걱정이 아직 남아있었다. 그저 머리 모양 한 번 바꾸는 걸로 감당해야할 세월이 너무 길었다.  


결심은 이상한 지점에서 섰다. 해를 넘기면 탈색을 못할 것 같은 마음이 다른 걱정을 이겼다.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지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었다. 지금 안 어울리는 것이 나중에 들을 ‘나이에 안 맞게’ 소리 보다 더 나아서였다. 거기에 제법 길어진 머리도 결정을 도왔다. 투톤으로 아래쪽만 탈색하고, 상한 머리는 잘라 버리면 그만 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 길로 예약 전화를 걸었다.  




막상 탈색을 하고 나니 기분이 좋았다. 거울 앞에 설 때마다 뿌듯했다. 엘리베이터에서 화장실에서 지하철 차창에 모습이 비췰 때도 그랬다. 네일샵을 다녀온 뒤, 깨끗하게 정리된 손을 볼 때와 비슷했다. 손이야 눈여겨 보지 않으면 놓치기 십상이지만 머리카락은 달랐다. 잘보였다. 머리색 하나 바꾼 걸로 거울을 볼 때 마다 기분전환이 되다니 수지맞았다!

탈색머리  하고 그댈 만나러 가~

머리색을 바꾸고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알은체를 했다. 그저 머리카락 절반이 좀 밝아졌을 뿐인데 오랜만에 만난 사람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가왔다. 서로 이야기를 나눌 이슈가 별로 없었던 사람들까지 한 마디씩 인사를 건넸다.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도 내 머리에 호기심을 보였다. 세상에 탈색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졌어도 회사에 몸 담은 30대가 탈색하는 일이 그리 흔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한 번도 대화해 본 적 없는 사람들과 머리색을 소재로 말을 트게 될 줄은 몰랐다. 이렇게 눈에 띌 일인가? 평생을 심심하게 생긴 얼굴, 한 번 보고 곧 잊힐 얼굴로 살아서인지 그 반응이 흥미로웠다.   


모든 걸 떠나 재미있었다. 내 원래 머리색, 모발상태, 염색할 때 배합한 색깔들, 사용하는 샴푸 등등에 영향을 받아 예상하지 못한 색으로 변하는 머리를 볼때마다 “우와 탈색 꿀잼이다!” 하고 혼잣말을 했다. 진한 퍼플은 빨강을 거쳐 핑크로 변했고, 진한 파랑은 카키빛이 도는 하늘색이 되었다. 빛이 있고 없을 때나 어떤 색의 옷을 입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느낌도 즐거웠다.

보라에서 핑크, 다시 금발로


의외의 실용성도 사랑스러웠다. 이전까지 내게 탈색은 살면서 한 번 즈음 해볼만한 일탈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탈색은 매우 쓸모있었다. 맹맹한 얼굴에 찍어바른 붉은 틴트같달까. 아니면 작은 반사판같달까. 메이크업이나 조명처럼 내 얼굴을 화사하게 만들어 주는데 지워지거나 떨어질리 없었다.


탈색은 생각보다 별일이 아니었다. 가장 기분이 좋은 부분이다. 바뀐 머리색에 바로 반응한 사람도 많았지만 한참 지나서야 “어머? 머리 언제 바꿨어요?” 하고 묻는 사람도 많았다. 바로 반응한 사람이라고 해서 볼 때마다 내 머리색을 화제에 올리는 것도 당연히 아니었다. 내가 탈색을 하든 삭발을 하든 자주 보는 사람들은 금세 익숙해질 일이고, 모르던 사람들에게는 원래 그런가보다 하기 마련이었다. 탈색을 했고, 그리고 그게 다였다.   


 

파란머리의 스펙트럼

일치감치 #목요일의글쓰기에 탈색이야기를 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탈색머리로 기분이 좋아질 때마다 어서 이 글을 쓰고 싶었다. 흐린 하늘색에서 금발로 물이 빠지는 머리를 보고 지금이 글을 쓸 때임을 알았다. 글을 썼으니 조만간 탈색 부분을 다 잘라낼 것이다. 머리를 기르기를 지겨워 하지 않으며, 오래 길러온 머리도 싹둑 잘 잘라내는 내가 좋다. 이제 탈색도 겁내지 않아서 더 좋다. 히히히 기분이가 좋다.  


#목요일의글쓰기 #탈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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