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김밥의 미래> 탄생기
퍼블리셔스 테이블라는 강남
재미있는 일을 물어오는 어미새 같은 친구가 이번엔 <퍼블리셔스 테이블>이라는 독립출판 마켓을 물어왔다. 작가님들을 직접 만날 수 있고 '문화역 서울 284'에서 열리며, 팀의 다른 사람들도 함께 한다는 이야기에 '그러마' 했다. 지난 12월에 만든 <어른의 일>을 몇 권 더 찍어 가면 되겠거니 하는 마음이었다.
며칠 후, <퍼블리셔스 테이블>에 내놓으려고 다들 새 책을 만들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행사까지는 3주 남짓. ‘에이 설마. 그때까지 어떻게 만들겠어?’ 하지만 설마는 점점 사실로 변해갔다. 대단하고 무서운 친구들... '그렇다면 나도 새 책을 만들겠어!' 친구따라 강남행 열차에 귀 얇고 엉덩이가 가벼운 나는 또 발을 올려놓았다.
말하자면 소설 같은 거
책을 위해 새로 글을 쓰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자연스럽게 전에 쓴 글 중에서 책으로 꾸리면 흥미로울 만한 것들이 후보로 올라갔다. 첫 번째 책인 <어른의 일>은 에세이를 모은 책이라 허구로 써놓은 글들이 몇 편 남아 있었다. 소설이라고 하기엔 좀 모자라지만 그래도 말하자면 소설 같은 글이었다. 대부분 쓰다 만 것들이라 탈락했다. 노래를 만들고 싶어서 써 둔 글도 좀 있었다. 멜로디가 붙지 않은 채 블로그 어딘가에 널부러져 있는 글들을 엮어볼까 싶었다. 말하자면 가사 같은 거. 가사도 시도 무엇도 아닌 점도 문제였지만 모아 보았자 책으로 나올만큼 길지 않아 탈락했다. 그나마 좀 많이 남아있는 글은 연애 이야기였다. 말하자면 사랑같은 거. 말.하.자.면.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말이야. 하지만 나는 말할 수 없단 얘기야~~ 책 아이템을 고르다가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는... 작가의 정신건강을 위해 말하자면 시리즈 최종탈락.
김밥의 미래
3월에 <김밥의 미래>라는 글을 브런치에 올렸다. 어떤 포인트인지는 모르겠지만 브런치 추천글로 소개 됐고 4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그 글을 읽었다. 내가 가장 오래 공을 들인 글도, 잘 썼다고 생각한 글도 아니어서 좀 의아했다. 가설은 둘 정도. 브런치 유저 중에 ‘김밥애호가’가 많다. ‘김밥’과 ‘미래’의 콘트라스트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전자라면 어느정도 만족할 수도 있겠지만 후자라면 조금 미안한 내용의 글이다. 과거에 김밥을 싫어했던 내가 현재(2017년)에 김밥을 올해의 음식으로 선정하면서 미래의 나에게 김밥이 어떤 존재가 될지 궁금해진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제목으로 이 글을 선택하면서 기대했을 내용은 AI, 우주, 미래식량 같은 거 였을까?
어쨌든 글을 썼고 그 글을 4만 명이나 읽는 바람에 김밥의 미래에 책임감이 생겨버렸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김밥에게 의미있는 존재가 되자. 그 방법은 책을 만드는 일이었다. 책 <김밥의 미래>는 브런치에 썼던 글이 줄기가 되는 김밥 에세이다. 김밥과 김밥집에 얽힌 나의 이야기를 그림과 함께 소개하는 작고 가볍고 하찮아서 귀여운 나의 두 번째 책.
먼저 김밥을 먹어요
책을 만들기 위해 우선 김밥집 세 곳을 정했다. 나의 김밥 인생, 어쩌면 내 인생에 영향을 미친 세 곳이고, 누구에게 소개해도 칭찬받을 자신이 있었다. 김밥집에 찾아가 생각없이 지나쳤던 간판을 찍고, 같은 것만 시키느라 안 봤던 메뉴판을 분석하며 사장님 (또는 직원)에게 이전에 없던 질문을 던졌다. 익숙한 공간과 맛이 별안간 새로워졌다. 혼자 먹기에는 당연히 많은 양의 김밥을 사서 친구들과 나눠먹는 재미 또한 이전에는 몰랐다. 내가 좋아하는 식당을 나의 소개로 친구도 좋아하게 되는 것. ‘내가 김밥책을 만드는 건 그래서일까?’ 신나는 일이었다.
김밥을 그려요
처음부터 김밥을 그릴 생각은 아니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친구가 김밥을 그리겠다고 했고, 그 말이 김밥책을 만들기로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결정을 하고 보니 이건 내 책도 친구 책도 아닌 책이 되겠다 싶었다. ‘그럼 내가 그리지 뭐.’ 김밥 사진을 예술로 찍지 않을 바에야 그림이 낫겠고 그릴 사람이 없으니 내가 한다는 판단은 실수였다. 김밥 그림 하나에 글 한 편 쓰는 시간이 들었다. 그나마 김밥을 어떤 식으로 표현할 것인가를 정한 뒤의 시간이었다. 스타일을 찾기까지 며칠이 걸렸다. 해놓고 보니 뿌듯하지만 하는 동안 진땀이 났다.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했을까. 마켓이 열리는 날이 정해져 있으니 멈출 수는 없는데 해 뜨는 걸 보면서 편집을 하고 있자니 웃음이 났다. ‘나 지금 뭐하는 거야. 으흐흐흐흐.’ 뭐하긴 김밥 그리지.
이 집 표지를 잘하네
퓨처리즘을 표방하는 메탈릭한 재질을 떠올릴 수 있는 이 표지는 ‘미래’ 라는 제목을 이미지로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김밥이 호일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임은 모두가 인정할 것이다. 실제 쿠킹호일을 촬영하여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쳤고 결국 디자이너 친구의 손길을 통해 완성됐다. (전문가의 중요성!) 덕분에 사진을 찍으면 아주 웃기고 예쁘게 잘 나와서 인증샷 찍을 맛이 난다. 표지 최초 공개시 작가의 인스타 댓글이 평소보다 5배 이상 늘었다는 통계가 있다. 이 책의 절반은 장조림 김밥꺼고 나머지 절반은 표지꺼랄까. (그러니 나머지는 덤 같은 거다. 빈손으로 왔다가 옷 한 벌은 건졌다는 우리네 인생같은 책!)
의리북스에서 다양성을 맡고 있어요
결국 책은 세상에 나왔고, 나는 마켓에 나갔다. 의리북스(우리 테이블 팀명, 의리로 한 권씩 사준다고 해서 의리북스)에서 <김밥의 미래>는 다양성을 맡았다. 카테고리를 풍부하게 만들어 의리북스가 꼭 들려야 하는 재미있는 부스가 되는데 일조했(다고 믿고 싶)다. 하지만 정말 눈에 띄긴 했는지 부스를 찾아 온 많은 사람들이 우선 <김밥의 미래>를 들어 살펴본 후, <로그아웃 좀 하겠습니다>를 구매했다. 웹으로 말하면 <김밥의 미래> 광고배너의 역할을 한 거다. 괜찮아 난 슬프지 않아. 김밥아 내가 봤어 너 잘했어.
퍼포먼스를 덤으로 드려요~
작가에게 오프라인에서 직접 구매한다면 김밥 포장 퍼포먼스를 볼 수 있다. 책값은 5,000원!!!(퍼포먼스 포함가) 김밥 한 줄 값에 책 한 권, 인증샷소스, 퍼포먼스까지 얻을 수 있다면 이거 거저네 거저!
수익 전액 일부는 작가의 김밥값으로 후원됩니다.
아니 내가 왜 작가 김밥값을 후원해? 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김밥의 미래에 의미있는 존재가 되려면 무엇보다 김밥을 많이 먹고, 새로운 김밥집에도 가야하지 않을까? 그런데 걱정 마세요. 수익이 나려면 아직 멀었.... 쿨럭 훌쩍 푸히힝
모쪼록 맛있게 읽어주세요!
책 본문보다 더 긴 후기를 재미나게 읽었다면 이제 <김밥의 미래>를 만날 시간! 구매문의는 이곳 @quarterly_shj 으로! 오프라인 서점에 입고되면 업데이트 하겠다.
#목요일의글쓰기 (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