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2. 축하..해야 하는 거지?
호치민으로 발령이 났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물었다.
“축하..해야 하는 거지?”
질문은 가족과 친구로부터 멀리 떨어지는 안타까움, 이제 곧 이별해야하는 아쉬움 같은 것들을 담고 있었지만 그보다는 ‘그게 너한테 축하할 일이 맞지?’ 쪽이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호치민”이라는 이름에서 좌천(?)의 냄새를 맡은 것 같았다.
‘그러니까 호치민에 발령이 났다고? 거기가 베트남이던가? 베트남이 안전하던가? 깨끗하던가? 그래 그런(?) 곳에 가는 너의 마음은 괜찮니?’ 의 줄임말 처럼 들렸다. 비약이 좀 섞였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런던이나 뉴욕, 도쿄였으면 받지 않았을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정작 나는 그 질문을 받고 나서야 사람들이 ‘호치민’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기껏해야 나는 하노이가 아니라 호치민인 것이 약간 아쉬운 정도였다. 아무래도 하노이는 호치민보다 좀 더 오래된 도시라 베트남 정취가 좀 더 물씬나는 느낌이었다. 이왕가는 해외라면 서울과는 뭐가 달라도 다른 곳에 가는 것이 더 멋지지 않을까?
하지만 같은 질문은 계속됐고 결국 소식을 알리는 메시지를 바꿨다.
“해외사업팀에 지원해서 발령났어.”
사람들은 더 이상 축하를 해도 될지 묻지 않았다.
호치민에 도착하자 질문이 바뀌었다.
“숙소는 어때?”
이미 서울에서 호치민 숙소 사진과 영상을 받아 보았다. 영상 속 집이 너무 좋아서 동료들과 기대하지 말자고 서로를 다독였다. 우리는 ‘직방’에 올라온 사진 속 집과 실물의 차이를 익히 알고 있었으니까. 도착해서 집 문을 열었다. 서울에서는 못 본 ‘사진과 같은 집’이 여기 호치민에 있었다.
“숙소는… 음 일단 서울 우리집보다 좋아.”
집은 빈홈이라는 주상복합 아파트다. 단지 안에 종합병원과 국제학교가 있을 만큼 크다. 우리동 1층에는 GS25가 있고, 2분 거리에는 호치민에서 가장 높은 81층짜리 건물이 있다. 81층 짜리 건물 안에는 무려 람보르기니까지 파는 큰 쇼핑몰이 있고, 심지어 아이스링크가 있다. 단지를 슬슬 걸어다니면 5분 안에 스타벅스, 콩카페, 파리바게트, 뜨레쥬르, 본가를 만난다. 라이프 가드가 있는 야외 수영장도 단지 안에 여럿 있다. 이름이 센트럴 파크인 공원도 있는데 과연 그리 불릴 만큼 크다.
“엄마, 여기 베트남 안 같아. 여기는 송도신도시 같아. 진짜 딱 그렇게 생겼어.”
타지에 딸을 보낸 엄마를 안심 시키기 위한 말이기도 했지만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단지 안에 있을 때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실감이 안났다. 슬리퍼를 신고 길 건너 식당 ‘북촌’에서 돌솥비빔밥과 순두부찌개를 먹고 신한은행을 지나 집으로 돌아오노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질문은 계속됐다.
“호치민 좋아?”
그저 안부로 묻는 말이니 줄곧 지금 송도신도시에 있다며 농을 던졌다. 하지만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기가 무섭게 ‘아 맞다! 여기 호치민이지!’ 하고 화들짝 깨어났다. 이 도시는 오토바이가 왕이다. 사람도 이긴다. 인도가 아예 없는 도로도 많고 인도가 있어도 오토바이가 주차되어 있어 정작 보행자는 도로로 내려가서 걸어야 한다. 그나마 남아 있는 인도도 무거운 오토바이가 지나다닌 탓에 깨져있기 쉽상이다. 가장 무서울 때는 길을 건널 때다. 보행 신호등이 드물고, 지키는 오토바이도 드물다. 나를 향해 달려오는 오토바이 떼에 온 신경을 세우고 길을 걷느라 쉬이 피곤해졌다.
퇴근 후 조용하고 깨끗한 빈홈 단지에 들어설 때마다 안도하는 동시에 불편했다. 송도신도시에서 호치민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현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좋은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단 말인가. 마치 직무를 유기하고 숨어 버리는 기분이었다. 호치민이 좋으냐고? 아직 호치민을 보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말할 수 있겠어.
그러다 주일에 한인 교회를 찾아간 동네에서 내가 상상했던 호치민을 만났다. 차가 한 두 대 다닐 만한 골목 양쪽에 과일가게며, 식당같은 상점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적당히 붐비고, 적당히 단정하고, 적당히 낯설고, 적당히 익숙한 적당한 호치민이었다.
‘여기네, 여기야!’
나는 드디어 로컬다운 로컬을 찾았다며 좋아했다. 호치민을 이해하려면 이곳에 다시 와야겠군.
그리고 일주일이 더 지났다. 사람들이 호치민에서 맡는 “좌천”의 냄새와 내가 만난 “송도신도시”의 간극을 설명하려던 이 글은 그 사이 방향이 바뀌었다. 2주 남짓한 시간 동안 가로수길 같은 호치민, 홍콩같은 호치민, 밴쿠버 같은 호치민, 파리 같은 호치민을 만났다. 여러 호치민을 만나고 나서야 나는 그 모두가 ‘호치민 같은 호치민’이었음을 깨달았다.
내게 익숙한 다른 도시를 떠올리게 한다거나, 동네주민의 반이 외국인이라거나, 부촌 중의 부촌이라 해도 이곳은 송도가 아니라 호치민, 밴쿠버가 아니라 호치민이었다. '아차!' 결국 나도 호치민에서 좌천의 냄새를 맡았던 사람들과 다를 것 없이 멋대로 맛대로 호치민을 재단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750원짜리 반미와 서울만큼 비싼 월세의 아파트가 공존하는 이곳은 호치민. 나는 지금 호치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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