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ink Saigon

나는 사이공을 마셔버리기로 했다

by 손콩콩

몇 년 전 친구들과 함께 하노이로 짧은 여행을 갔는데 여러모로 좋았다. 같이 간 친구들과의 호흡이 특히 좋았고, 그 중심에는 비슷한 음식 취향이 있었다. 우리는 모두 커피, 맥주, 베트남 음식을 사랑했고 3박 5일 동안 1일 1쌀국수, 2커피, 3맥주 하면서 매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여행이 얼마나 좋았냐면, 잠정적으로 “다낭”을 다음 여행지로 정하고 다함께 여행 적금을 붓고 있는 정도.


그건 내가 하노이를 겪지 않고도 베트남 근무에 손을 들었을지 궁금해질만큼 결정적인 경험이었다. 베트남에서 일 하는 내 모습을 상상할 때마다 입에 침이 고였다. 갓 내린 커피의 기분 좋은 산미가 혀끝을 감싸고, 시원한 맥주가 경쾌하게 목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그 맥주가 단돈 500원.




1. 커피커피커피

베트남은 세계 2위 커피 생산국이다. (1위는 브라질) 사실 막입이라 커피맛은 잘 모르지만 한국에서 마시는 커피 대부분이 그닥 신선하지 않은 커피라고 들은 이후로는 신선한 커피에 대한 로망이 생겼다. 따지고 보면 커피도 농산물이니 신선한 것이 더 맛있는 건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갓 지은 햅쌀밥이 맛있듯 산지에서 막 재배한 커피를 막 로스팅해서 막 내려 마신다면 막막 엄청 맛있겠지. 으아.

카페 덴 다 (베트남식 아이스 블랙 커피, 설탕 주의)


커피산지는 아니지만 사이공(호치민)에도 카페가 많다. 작은 노점부터 스페셜티 커피를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내려주는 고급 카페까지. 그 생김만큼이나 다양한 맛과 가격의 커피를 누리기엔 하루가 모자라다. 나의 일일 카페인 수용치가 최대 커피 두 잔인 까닭이다. 심지어 베트남식 커피는 하루 한 잔이면 넘치는데 핀(phin) 방식으로 내린 커피의 농도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처음에 멋 모르고 베트남식 커피를 하루에 두 잔 마셨다가 오후 내내 속이 메스껍고 두통이 일어 혼이 났다. 연유를 넣어 쓰고 달콤한 베트남식 Cà phê sữa đá(카페쓰어다)가 유명한데 거기에서 연유를 뺀 Cà phê đen카페덴(덴은 검다는 의미)을 한 모금 마신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죄인은 사약을 들라.”

핀이라는 도구로 내려 마시는 사약커피


김치가 “맵다”라는 단 하나의 형용사로 설명될 수 없듯이 사약같이 쓰기만한 카페덴도, 설탕덩이같이 달기만한 카페쓰어다도 그 맛의 스펙트럼은 아마 매우 넓을 것이다. 매일 마시고 또 마시다 보면 이집과 저집, 어제와 오늘의 커피가 다름을 알게 되지 않을까.



2. 밀크티의 매력

카페도 카페지만 충격적일만큼 많은 건 밀크티샵이다. 밀크티샵이 아니더라도 웬만한 카페는 다 밀크티를 판다. 여기서 만난 대학생 하나는 커피는 안 마시지만 밀크티는 매일 마신다고 했다. 쌀국수가 보통 2,500원 하는데 3,000원이 넘는 밀크티를 매일 마신다니 내가 아는 밀크티가 맞나 싶었다. 도대체 밀크티의 매력이 뭘까 궁금했는데 사이공 생활 3주만에 나도 이틀 걸러 한 잔씩 밀크티를 마시게 되었다. 그 사이 밀크티의 매력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라는 건 거짓말이고 순전히 사이공의 “양”때문이다. 사이공 식당은 하나같이 내가 기대한 양의 2/3만큼만 나오고, 배는 3시쯤 꺼진다. 3시만 되면 너무 배고프기 때문에 뭐라도 먹지 않을 수 없고 그렇게 밥 보다 비싼 밀크티의 맛에 빠져들어 가고 있다.

요즘 핫한 더 엘리. 가로수길에도 있다고 한다


3. 그리고 맥주

맥주마다 맛이 다른 걸 알게된 후로 새로운 곳에 가면 꼭 그 지역 맥주를 마셔 본다. 지역명을 달고 있는만큼 Bia Saigon(비아 사이공, 사이공맥주)이 많이 보이지만 이제까지 마신 베트남 맥주 중에 최고는 Bia bababa(비아 바바바, 333맥주)다. 라이트한 맛이 아주 내 취향이다. 사실 333맥주만으로도 이미 충분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 없으니 틈이 나는대로 다른 맥주에 도전한다.

베트남이라고 써있으면 일단 사는 거예요


4.기승전 인스타홍보

함께 사이공에 온 친구가 오토바이 뒤에 별별 것이 다 실려가는 모습을 모은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었다. 이름하여 바이크 리퍼블릭. 말 그대로 오토바이 공화국인 이 도시에 너무나도 어울리는 계정이었다. 여행이라면 그날 먹은 음식, 음료, 걸었던 거리가 다 특별하게 다가와서 하루에도 수십, 수백 장의 사진을 찍고, 여기저기 자랑도 하지만 생활이라는 게 어디 그런가. 자칫 흘려보낼 수 있는 일상을 붙잡는 데에 기록만한 것이 없으니 나도 무얼 하나 해보면 좋겠다 싶었다. 사이공이라 가능하거나 사이공이라서 더 흥미로운 소재를 찾자. 내가 좋아해서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사이공 라이프에 작은 활력이 될 소재. 잘하면 파워 인스타그래머가 될 소재! (큰꿈)


잠깐 고민했고, 나는 사이공을 마셔버리기로 했다.


사이공에 도착한 첫 주에 시작해서 거의 매일 커피, 맥주, 밀크티, 그리고 카페를 올리고 있다. 사진을 더 잘 찍고 싶은 마음이 크고, 글로벌 인스타를 꿈꾸며 3개 언어를 쓰느라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대체로 즐겁다. 하나씩 쌓이는 기록을 볼 때마다 이 도시에 대한 이해가 조금이라도 늘어나는 것 같아 뿌듯하다. 우연히 만난 카페를 제외하고는 보통 하나하나 검색하고, 비교하고, 직접 가서 마셔보고 올리니 정보로도 썩 괜찮을 것이다.

https://www.instagram.com/uong_saigon/ >> uống Saigon. 우옹 사이공, 베트남어로 사이공을 마시다라는 뜻이다. 자자, 팔로팔로미!


어떤 기억은 시각으로 남고, 어떤 기억은 촉각으로 남는다. 밴쿠버과 파~아랗고 노~옾은 하늘로 내게 각인된 것처럼 아마도 사이공은 나에게 미각 그중에서도 달콤쌉싸름한 음료로 기억되지 않을까. 커피를 마실 생각에 글을 쓰면서도 침이 고인다. 꼴깍.


#목요일의글쓰기

#사이공도미닉 #우옹사이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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