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에 금이 갔다

by 손콩콩

베란다로 난 유리문을 문득 올려 봤다가 없던 무늬가 생긴 걸 알아차렸다. 커튼을 열고 보니 무늬가 아니라 유리문에 생긴 금이었다. 놀란 마음에 사진을 몇 장 찍어 프론트(내가 머무는 곳은 서비스 아파트로 빈홈이 소유한 집을 레지던스처럼 빌려 쓰는 형태라 프론트가 있다)로 내려갔다. 직원이 몇 호인지 묻고, 사진을 확인하더니 내일 오전에 유리를 바꿔준다고 했다. ‘내일 오전에 바꿔주는 군...’ 하고 별생각 없이 올라왔는데 유리 교체가 아니라 금이 생긴 이유가 문제였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500원짜리 동전만 한 크기의 홈이 파였고 홈 가운데는 송곳 만한 작은 구멍이 있었다. 그 구멍을 중심으로 시작된 금은 유리문 꼭대기부터 바닥까지 퍼져있었다. 꼭 총알을 맞은 모양 같았다. 최소 새총은 되었다. 그냥 둔다 해도 당장 깨질 것 같지 않았지만 비슷한 충격이 또 있다면 얼마든지 부서져 내릴 수 있어 보였다.

‘대체 어디서 날아온 거지?’

유리문 너머로 보이는 건 8차선 도로 건너편에 서있는 건물뿐이었다. 그 건물은 어림짐작으로도 200미터쯤 떨어져 있었다. 아래에서 쏘아 올렸을까? 우리 집은 아파트 단지 끝에 있는 12층. 단지 담장 밖으로 주택이 좀 있기는 하지만 2~3층 건물이라 높이 차이가 꽤 컸다.

‘우연일 수 없다. 누가 겨냥한 거야.’

나나 우리 집을 겨냥한 것은 아니겠지만 (아니겠지. 제발) 누군가 이 지점을 겨냥하고 무언가를 쏘았다. 이런 생각이 들자,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 소식을 들은 동료들은 빨리 집에서 나오라고 당부했다. 당장 부동산에 전화를 넣었다.

“총알 같은 걸 맞고 유리에 크게 금이 갔어요. 저희 집이 12층이고 허허벌판 옆인데 어디서 뭐가 날아왔는지 모르겠어서 불안해요. 방을 바꾸고 싶어요.”

“어머, 어쩌다 그런 일이. 저희 관리팀이 오늘 휴무라 내일 오전에 빨리 알아봐 드릴게요. 근데 누가 장난한 걸 거예요.”

장난? 나를 달래려는 말이었다면 실패했다.

“사장님, 지금 사진이라도 보셨으면 장난이라는 말씀 못하셨을 거예요. ”

사장님이 유리에 금을 낸 것은 아니지만 화가 났다. 그게 장난이었다 한들 위험은 사라지지 않는다. 죽거나 크게 다치거나 최소 재산에 손해라도 입어야 장난이 아니었다고 인정하고 나를 도울 텐가. 어떤 상태인지 확인해 보지도 않고 예민하고 까다로운 사람 취급이라니.

프론트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너무 심각해서 내일까지 못 기다리겠어. 부동산에 집을 옮겨달라고 했는데 내일 된대. 오늘 임시로 지낼 방을 알아봐 줘.”

프론트 직원이 알아보는 흉내도 내지 않고 휴일이라 담당자가 없고, 또 연휴라 방도 없다고 했다.

“난 오늘 밤에 있을 곳이 필요해. 알아봐 줘.”

내가 다시 요청하자 직원은 고객센터에 문의하고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이미 오후 4시가 넘었어. 만약에 내가 지낼 곳이 없으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해. 언제까지 연락 줄 수 있어?”

As soon as possible 이라는 대답을 듣고 집 앞 카페에서 기다렸지만 해가 다 지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

“아직 연락이 없어서 왔어. 방은 준비됐어?”
“휴일이라 방이 없어. 내일 오전에 시설팀이 갈 거고 작은 금이니 괜찮을 거야.”

사진을 보고도 작다니. 순간 내 마음에도 금이 갔다.

“하나도 안 작아. 이 영상을 보라구. 이게 작아? 위쪽부터 바닥까지 금이 갔어. 이건 누가 겨냥한 거 같아. 또 그러면 어떡해? 난 이제 내 집에 못 있어. 네가 나라면 있을 수 있어?”

혹시나 하고 찍어놨던 영상을 보여주며 강경하게 말하자 그제야 10분 안에 방을 찾아주겠다고 했다.

금 영상을 감상하시겠습니다...


“난 여기서 기다릴 거야.”

방을 찾을 때까지 안 움직일 생각으로 프론트 앞쪽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났다. 30분까지 기다리고 한 번 더 이야기할 마음이었다. 다음엔 화를 내야 하나? 다행히 30분이 되기 전 다른 방 키를 받았다.

집으로 돌아가 거실과 방의 암막 커튼을 쳤다. 밖에서 우리 집을 절대 볼 수 없기를 바라며. 혹시나 무너져 내릴지 몰라 거실 유리문 근처 물건들을 멀리 치웠다. 얼마 안 되는 귀중품이 든 금고문을 잠그고, 흩어져 있던 소지품들을 한데 모아 담았다. 물건을 정리하며 잠깐 유리문 근처를 지날 때마다 등줄기가 서늘했다.

최소한의 물건만 챙겨 다른 층의 임시 방으로 옮겨왔다. 방의 위치 창이 난 방향, 가구에 침구까지 너무 똑같아서 방을 옮겨왔는 줄도 모르게 익숙하지만 침대에 누워 이 글을 쓰며 공격당한 내 집에 대해 생각한다. 뻥 뚫린 뷰, 멀리 보이던 사이공강, 하루 종일 잘 들던 빛. 이제 다음 집에서는 누리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바꿀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이렇게 쉽게 바꿀 수 있다니 이게 집이 맞나 어리둥절하다. 아니지 이게 정말 내 집이었다면 이렇게 쉽게 포기하거나 바꾸려고 하지 않았겠지. 누군가가 쏜 작은 돌이, 메뚜기처럼 옮겨 앉은 내 모양새가 나의 사이공 생활을 은유하는 것만 같다.


어디서 자꾸 사각대는 소리가 난다.

무사히 잠들 수 있겠지.
무사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