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 책임질 수 있어?
오래전부터 누군가가 '좋아하는 무엇'을 물어올 땐 대답이 어려웠다. 무엇을 '좋아한다'고 말하려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만 될 것 같았다. 대상에 대한 사랑은 지속적이어야 하고, 누구보다 대상을 잘 알아야 하며, 대상을 향해 시간이나 돈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 같은 그런 책임. 이런 책임을 다할 수 없다면 '좋아한다'라고 말할 수 없었다. 어딘지 거짓말 같기 때문이었다.
지금 회사 입사지원서 양식에 좋아하는 노래나 소설로 자기를 소개하는 항목이 있었다. 다른 부분은 다 작성 해 놓고 그 질문에 막혀서 며칠을 미루다가 지원을 포기할 뻔 했다. 무릇 좋아하는 소설이라면 열 번 쯤은 읽었거나 필사를 했어야 할 것 같고, 소설을 읽기 전과 후의 삶이 눈에 보이게 달라졌어야만 할 것 같았다. 좋아하는 노래라면 그 노래를 처음 만났을 때의 잊지못할 기억이 있다던가. 못해도 '테잎이 늘어날 때까지 들었다' 같은 에피소드 하나 쯤은 있어야 하지 않는가. 책임질 수 없는 깊이로 좋아하는 '노래'나 '소설'로 어떻게 나를 소개한단 말이지? 고민 끝에 좋아한다는 말에 책임을 다해야 된다고 생각해서 대답이 조심스럽다는 말머리를 쓰고 나서야 겨우 그 항목을 채울 수 있었다.
반박1. 좋아한다는 소리 잘만 하잖아?
서점에 가는 길에 친구가 '좋아하는 책'이나 '좋아하는 작가'를 묻는다고 하자. 그 질문에 "좋아한다는 말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답할 수 없어." 라고 하지는 않는다. 대신 '현재 관심이 있는' 또는 '최근에 흥미롭게 읽은' 등으로 질문을 번역하여 대답한다. 그 정도 융통성은 있다. 카페에서 '좋아하는 커피'를 묻는대도 마찬가지다. 그건 특별한 호기심이 아니라 '안녕하세요?'나 '별일 없지?' 같은 인사랑 닮았다. 그런 인사에 "안녕이요? 지금 안녕이라고 했습니까? 실업률은 역대 최대에 출산률은 역대 최저를 기록하는 이 나라에서 남북관계마저 이렇게 험악한데 어떻게 안녕할 수가 있겠습니까?" 라고 대답하지는 않을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이란 말 앞에 '가장'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어버리면 대답을 머뭇거릴 수 있다. 물론 이 경우에도 '걔 중에 제일 나은'으로 바꾸면 대답이 한결 수월하다.
반박2. '가장 좋아하는 음식' 닭발 아냐?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놀랄 수도 있겠는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닭발이 아니다. 그건 '자주먹는 음식' 정도다. 그것도 남들보다 자주 먹는 것이지, 내가 먹는 다른 음식과 비교하자면 그리 자주도 아니다. 닭발보다는 김밥을 훨씬 더 많이 먹는다. 닭발이 주 0.5회 라면, 김밥은 주 2회니까. 물론 별식(別食) 중에는 가장 자주 먹어서 2016년에는 '올해의 음식'이라는 타이틀을 주기도 했지만 '가장 좋아하는 음식'의 타이틀을 얻진 못했다. 그렇다고 김밥을 가장 좋아하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김밥은 끼니를 챙기기에 간편하고 저렴하며 웬만하면 실패가 없는 '안전한 음식'이다. 그럼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대체 뭐냐고? 흑흑 저한테 왜 이러세요. 책임질 수 없기 때문에 대답할 수 없다고요.
반박3. 원피스는 진짜 좋아하면서!
어느 날 또 원피스 쇼핑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런데도 원피스를 좋아한다고 인정할 수 없었는데 인정하는 순간, 정말 본격적으로 원피스를 사 재낄 것 같아서 였다. 그래서 몇 가지 원칙을 세우고 나서야 내가 원피스를 좋아한다고 선포(?) 할 수 있었다. 얼마 못 가 모든 원칙은 산산이 부서졌고, 원칙이 부서질 때마다 내 원피스 수는 늘어났다. 그런데 여전히 원피스를 사들이고 있지만 더 이상 원피스만 사지는 않는다. 기분을 낼 때는 무조건 원피스만 입었는데 이제는 그렇지도 않다. 그 마음이 예전과 다르다는 걸 아는데 그냥 뭉뚱그려 원피스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반박4. 글쓰기가 좋아서 작가가 꿈이라더니
그럼 무엇을 좋아한다고 할 수 있을까. 어려서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다. 글쓰기는 힘들 때 위로가 아플 땐 치유가, 머리가 복잡할 때는 정리가 되어주었다. 그런데 글쓰기를 좋아한다고 하기에는 그동안 글을 너무 안썼다. 얼마나 안썼는가 하면, 내가 작가가 되고 싶어서 국문과에 갔었다는 사실이 낯설어 질만큼. 정확히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는데 졸업 후 소설이라고는 단편도 하나 안쓴 정도랄까. 사실 여전히 내 꿈은 작가인데 꿈이라고 하기에도 글쓰기는 좋아한다고 말하기에도 부족해서 자꾸 과거형 어미를 쓴다. 좋아한다기 보다 겁내지 않는다 정도로 격하시켜야 할 것만 같다.
짜증1. 좋으면 좋은 거지 무슨 말이 이렇게 많아
오랫동안 좋아하는 것이 분명한 사람을 부러워 해왔다. 그들은 그 말에 책임을 다했다. 질릴 때까지 돈까스와 냉면만 먹었고, 어떻게든 그 가수의 콘서트 티켓을 따냈으며, 수십 번 같은 영화를 보고, 매일매일 달리고, 기어코 세계여행을 떠났다. 나는 주로 그렇지 못했다. 좋아하는 것도 재능일까. 그것도 주워지는 것일까. 노력으로 무언갈 좋아할 수는 없으니까. 대체 어떻게 하면 좋아한다는 말에 그토록 책임을 다할 수 있을까.
결론. 좋아하는 것이 분명한 것을 좋아해.
새벽 3시까지 이러고 있는 걸 보면,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나는 좋아하는 것이 분명한 것을 좋아한다. 아아, 참 세상 피곤하게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