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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림 Sep 28. 2015

고독에 대하여.

크누트 함순 <굶주림>

 

 

내게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있다고 해서,

깊은 밤 잠에서 깼을 때 옆에 자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고 해서,

갑자기 전화해도 흔쾌히 함께 점심을 먹어줄 사람이 있다고 해서,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는 요즘 참 고독하다는 생각을, 참으로 외롭다는 생각을  종종한다.

창 밖 내 시선 끝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에게도 ,

같은 침대를 쓰는 사람에게도,

함께 밥을 먹어주는 친구에게도 ,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켜켜이 쌓여갈수록 나는 더 외로워진다.

 

 

 

그럴수록 나는 나만의 세상 속으로 빠져들어가게 된다.

나는 이제 목소리를 높이며 나 자신을 변호하고 싶지도,

사소한 부분들을 붙들고 따지고 싶지도,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구질구질하게 설명하고 싶지도 않아져서

그저 입을 꼭 다물고 눈을 질끈 감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써 본다.

 

 

 

 

 

크누트 함순의  《굶주림》이라는 책이다.

크누트 함순의 책은 처음 읽어보았다.

아직도 처음 접하는 작가들이 이렇게나 많으니, 설령 지금부터 죽을 때까지 책만 읽는다 해도 못 읽는 책들이 넘쳐 나리라.

방세를 내지 못해 길로 내몰리기도 하고, 숲에서 노숙을 하기도 하고, 며칠 굶는 일은 다반사가 돼 버린 "나"는 사실은 글을 쓰는 사람이다.

그러나 연필을 손에 쥐고도 자신이 생각한 단어를 종이에 옮기지 못할 정도로 배고픔에 시달리다 보니 삶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배고픔과 굶주림이 사람을 어떻게 몰고 가는지, 그러나 그 극한의 상황에서 자존심을 지키려는 저 작가의 고결함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묘사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것은 분명 함순의 자전적인 이야기일 것이라 추측했다고 하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 그런 자세한 묘사가  어찌 상상만으로 가능하단 말인가.





 

독자는 이 야릇한 책을 한 장 넘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마음 가득히 피와 눈물이 솟구치는 것을 느낀다.
섭취하는 모든 것, 남에게서 얻어낸 모든 것을 그는 거의 즉시 게워낸다.
병든 그의 자존심이야말로 살찌워주기 가장 어려운 것이다. 
자신이 겪은 현실만을 통하여 독자를 압도하는 것이이 걸작품의 특성이다.

 -앙드레 지드의 서문 中






이 노르웨이 작가의 묘사력은 너무나 뛰어나서 도스토예프스키와 비길 정도라는 평에 과연 그러하다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그러나 그의 그러한 능력과는 상관없이 말년에 (그것이 설사 노령으로 인한 정신적 혼란에 따른 것으로 판단되어 가벼운 형을 받았을 지라도) 나치에게 동조하고 그들을 지지한 것이 작가의 오랜 괴로운 시절을 지나고 얻은 빛나는 명성을 한순간에 무너뜨렸음 또한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과연 그는 나치가 뭔지는 알고 있었을까?

"나는 나치즘이 무엇인지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그것을 알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물론 내가 때때로 나치정신으로 글을 썼다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나는 그것을 모른다. 왜냐하면, 나는 나치정신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라고도 말했다던 크누트 함순.

평소 그의 글에서는 유태인 배척주의 사상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았으며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을 싫어하고 인간 생명에 대한 존엄심이 대단했던 사람이었다는데,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정치적 감각이 전혀 없고 자기만의 세상 속에서 살고 있던 명성 있는 작가인, 그러나 80이 넘은 노인으로 귀까지 멀은 그를 누군가가 정치적으로 이용했음은 자명한 사실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작품으로만 말한다’라는 원칙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 중 하나로서, 앞으로 그의 작품을 어떤 마음으로 대할지는 조금 더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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