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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림 Sep 28. 2015

우리는 정말 사랑했을까.

앙드레 고르 <D에게 보내는 편지>

연애하는 것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다.

연애할 때는 늘 신체 한 부분을 맞대고 다니고, 옆에 차라도 지나가면 호들갑을 떨며 인도 안쪽으로 몸을 밀어 넣고, 호시탐탐 키스할 순간을 노리던 그들이 정작 한지붕 아래 떳떳하게 같이 사는 신분이 되면 외출해서 아내를 챙기고 (애처가라는 소리를 듣는다.) 손을 잡는 등의 가벼운 스킨십도(야유를 받는다) 매우 쑥스럽고 부끄러워하는 사람들로 돌변한다. 사실 누구보다도 떳떳하게 애정표현을 할 수 있는 관계인데 이게 무슨 일인가.


아주 긴 시간은 아니지만 유럽에서 살면서 내가 본 문화는 철저히 가족중심이었다. 그 안에서도 부부관계에  가장 큰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는  듯했다. 그래서 관계가 오랜 세월 지속된 가정을 보면 나이에 상관없이 아니, 함께 나이를 먹은 부부일수록 더욱 신뢰하고 사랑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보았다.

결혼하고 10년이 넘었다.

나는 이제야 종종 내가 머물 수 없었던 곳이 실상 나와 잘 맞는 곳이었음을 느낀다.

맞지 않는 가치관과 비전의 틈을 좁히며 가장 가까운 사이로 꾸역꾸역 관계를 정의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깨닫는다.

죽을 때까지 서로에게 감사하며 사랑하며 사는 것이 실현 불가능한 미션으로만 보인다.

나만 그럴까. 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당신은 곧  여든두 살이 됩니다.
키는 예전보다 6센티미터 줄었고, 몸무게는 겨우 45킬로그램입니다.
그래도 당신은 탐스럽고 우아합니다.
함께 산 지 쉰여덟해가 됐지만 어느 때보다 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 가슴 깊은곳에 다시금 애타는 빈 자리가 생겼습니다.오직 내 몸을 꼭 안아주는 당신 몸의 온기만이 채울 수 있는 자리입니다.

앙드레 고르 <D 에게 보낸 편지>






 <다 그림이다>라는 책에서 저자인 손철주가 인용한 안드레 고르의 아내를 향한 편지글 일부인 저 부분이 너무나 좋아서 몇 번을 반복해서 읽고 메모도 해 놓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편지들을 모아놓은 편지집이 따로 있길래 한 장 한 장 아껴 읽었던 기억이 있다.

앙드레 고르는 젊은 날에 자신을 헌신적으로 내조한 아내 도린에게 충분한 사랑을 고백하지 못했음을 뉘우치며 2006년 3월, 아내를 위해 이 글들을 쓰기 시작한다.

글을 쓰기 시작할 때 아내는 이미 20년째 투병 중이었고, 고르는 아내가 투병을 시작하던 때부터 모든 사회활동을 그만두고 글을 쓰고 땅을 파며 아내 곁에서 머무르던 참이었다.



밤이 되면 가끔 텅 빈 길에서, 황량한 풍경 속에서, 관을 따라 걷고 있는 한 남자의 실루엣을 봅니다.내가 그 남자입니다. 관속에 누워 떠나는 것은 당신입니다.
당신을 화장하는 곳에 나는 가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의 재가 든 납골함을 받아들지 않을 겁니다.
캐슬린 페리어의 노래가 들려옵니다. 세상은 텅 비었고, 나는 더 살지 않으려네. 그러다 나는 잠에서 깨어납니다. 당신의 숨소리를 살피고, 손으로 당신을 쓰다듬어 봅니다.
우리는 둘 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남아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우리는 서로에게 이런말을 했지요. 혹시라도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도 둘이 함께 하자고.   




앙드레 고르는 젊은 날의 자신의 행동들에 의문이 들어 그 의문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이 편지글을 꼭 써야 했다고 말한다. 1958년에 출간된 자전적 에세이인 <배반자>에서 아래 도린을 "아는 사람 하나 없고, 프랑스어라고는 한 마디도 못하는, 내가 없었다면  망가져버렸을"이라고, 즉 사실과는 전혀 다른 불쌍한 사람으로 묘사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 그를 어지간히 짓눌렀던 것 같다.

그 자신이 그녀에게 있어 완벽한 "배반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젊은 날의 고르는 도린을 사랑하는 자기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표현할 자신이 없었음을 고백하며

편지들을 통해 한평생의 도린이 얼마나 우아했는지, 명철했는지, 사랑스러웠는지를 이야기한다.

편지를 6월까지 쓰고 책으로 출간된 직후인 그 해 9월, 노부부는 침대에 그림처럼 나란히 누워 주사를 직접 놓아 함께 손을 잡고 세상을 등진다.






이런 좋은 날, 하늘도 맑고 바람도 좋은 날.
우리가 연애 중이었다면 남편은 어느샌가 연락도 없이 슬그머니 옆에 와 앉아있지 않았을까.



내가 원했던 (허세 떨듯 말하자면) 유러피언 같은 부부의 모습은, 비단 스킨십과만 관련된 건 아니었다.

대화의 주제, 취미의 나눔, 자녀양육의 관점, 그 모든 것.

십수년 전 어쩌다 보니 외국에 살던 세월은 내가 정말 완벽한 한국인이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예를 들면 오기처럼 맛보지 않으려 한 음식들, 마음을 어렵게 털어놓던 학과 친구에게 이제 우린 친구로도 지낼 수 없다고 차갑게 말하던 일, 고집처럼 가지 않던 여행.

그리고 일 년에 한 번, 비행기가 추락하는 악몽을 기꺼이 견디게 해 줄 정도로 원하던 한국으로 가는 티켓.


그런데 지금 보니 그 시간 동안 나는 그곳의 문화를 몸과  마음속 어딘가에 떼어내려야 뗄 수 없이 아로새기고 돌아온 모양이다.

그게 요즘, 돌아온지 많은 시간이 지나서야 나를 힘들게 한다.

결혼한 부부가 연애하듯 살 수 없는 건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했던 그 모든 노력들이 더 이상 필요 없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부분들을 맞춰가는 것이 함께 걸어가는 부부생활의 미덕이라 믿고 살게 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모든 것들이 어느 날에는 참 지루하고 재미없게 느껴진다.

하교 후 시원한 바람아래 앉아 뛰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남편이 보고 싶었다.

이런 좋은 날, 하늘도 맑고 바람도 좋은 날, 만약 우리가 연애 중이었다면 남편은 어느샌가 연락도 없이 슬그머니 옆에 와 앉아있지 않았을까.

이런 기대는 걸려온 남편의 전화를 괜히 퉁명스럽게 받게 되는 부작용을 낳는다. 물론 남편은 영문도 모른다.


우리는 정말 연애하듯 살 수 있을까.

나는 늘 우리의 삶이 한편의 영화 같았으면 좋겠다 말했다. 그 영화 속의 주인공 커플은 당연히 우리이니, 영화 속 주인공이 약간 비현실적으로 낭만 있게 사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거 아니냐고.

삶의 무게에 눌려 변해버린 남편은, 내가 수없이 되뇌던 그 말들을 기억이나 할까.

젊은 날 준 상처를 씻어주기 위해 통렬한 자기반성을 하며 아내를 돌보았던 앙드레 고르의 사랑이, 한결같음이, 결단력이 부러워진다.

그런 사랑은 흔치 않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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