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국내산 청포도도 있긴 하다.
오랜만에 물을 받아 목욕을 하고 싶다는 아이들 말에 잠시 고민하다 물을 받아주었다.
거품제는 없으나 한살림 온몸비누는 서너 번 펌핑해 샤워기 물줄기 아래 풀면 꽤 풍부한 거품이 나온다. 유지시간은 오래지 않긴 하지만.
욕조에 물을 채울 때면 이 많은 물이 아깝다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이 둘이 들어가 놀고, 그 논 물로 머리까지 다 감긴 후 샤워기로 씻어내기 한 번만 하니 어쩌면 두 아이가 샤워하며 흘리는 물보다 적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어찌 됐든 두 녀석을 욕조에 넣어두고 실컷 논 다음 마무리해주러 들어갔는데 머리 거품을 내다가 비누통을 보니 뭔가 이상하다.
아까 분명 2/3 가량이 남아있던 용기였는데 1/3로 확 줄어있는 것이 아닌가.
후끈하던 화장실 속 공기가 금세 냉랭해진다.
엄마가 왜 화가 난 것 같은지 물으니 비누를 마음대로 써서 그런 것 같다고 대답한다.
비누를 쓰는 게 왜 안 되는 것 같으니 하니 낭비해서라고.
그래, 맞다. 그런데 그냥 낭비의 문제가 아니고 그 낭비로 인해서 지구가 계속해서 아파지는 거란다. 이해되니?
"어휴, 엄마가 충분히 넣어줬는데 이걸 아깝게 이렇게 마구 쓰면 어떡해!"라고 타박 한 번 주고 설명 없이 넘어갈 수 있는 나이는 내 기준으로 8세, 그러니까 만 7세 정도까지이다. 그 시기를 지난 나이라면 사용하는 물건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어떠한 행동을 하기 전에 생각 한 조각씩 얹어서 해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물론 쉽지는 않은 일이겠지만 말이다.
오늘 고른 책을 읽으며 안 그래도 조만간 아이들과 환경 위기 시대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하여 이야기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 때맞추어 아이들이 사고를 칠 줄이야-
오늘 읽은 책은 약 7년 전에 읽은 《고등어를 금하노라》의 저자인 임혜지 님의 책인데, 그때 그 책은 내게 굉장히 큰 영향을 미쳤더랬다.
그리고 얼마 전에 책을 주문할 때 문득 저 책이 생각이 났고, 그렇게 작가의 다른 책인 《내게 말을 거는 공간들》을 읽게 되었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집, 도시, 현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는 건축가이다.)
그중 집 부분에 대해서 좀 적어보고 싶다.
(이건 사족인데, 《고등어를 금하노라》보다 오늘 읽은《내게 말을 거는 공간들》이 일 년 먼저 나온 책이던데 전체적인 구성이나 책 디자인이 훨씬 나중 것처럼 보기가 좋다. 출판사에 연락하며 표지 디자인을 바꾸어 다시 찍으시는 것이 어떠냐 건의하고 싶은 정도.. 저렇게 좋은 책은 더 주목받아야 한다. )
전형적인 독일의 주거환경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독일의 역사까지 알 수 있고, 어떤 주거공간이 건축적인 면과 환경보존적인 면을 함께 만족시키는 것인지, 또 그런 주거공간 속에서 포기하거나 감수하고 살아야 될 부분은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는 글들이 읽기 좋고 따뜻한 문체로 실려있다.
본인이 건축가이다 보니 전문가의 입장에서도 이야기하고, 또 실제로는 건물에 세 들어 사는 세입자의 입장에서도 이야기하는데 정말 이 분은 검소가 몸에 밴 생활습관을 가지고 계신지라 배울 것 투성이이다. 그런데 비단 저자의 집뿐만 아니라, 지인의 집 소개를 보면 일반적인 독일의 가정이 우리나라의 주거공간에 비해 얼마나 검소하고 절약하는지가 쉽게 보인다. 우리나라처럼 거대한 집에 사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가 또 있을까. 나라는 이렇게 작은데..
우리도 지금 식구가 많다는 이유로 꽤 큰 집에 살고 있는데 마음이 썩 편치가 않다.
전에 <고등어..> 책을 읽을 때 내 아이들은 두 돌이 되지 않은 아가들이었다. 그래서 그때는 막연히 '이 분처럼 아이들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면,
7년이 지나 읽은 오늘의 책은, 그간 나는 얼마나 아이들을 생각한 대로 양육해 왔는가 돌아보게 했다.
이 부모라고 생각한 대로 늘 아이들이 따라왔겠는가.
십 대인 저자의 딸은 난방을 틀지 않는 아빠(저자의 남편)를 향해 털목도리와 털모자를 착용하고 식탁에 앉아 불만을 표한다. (반팔이 좀 선선할 정도의 날씨로, 털 아이템은 반항을 위해 착용한 것이다.) 아빠는 추워서 삶의 질이 떨어진다고 말하는 딸과 날선 논쟁을 벌인다.
에너지가 점점 고갈되고 있기에 지금부터 절약하는 습관은 중요하다고 말하는 아빠와, 사람은 어려울 때일수록 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사는 법이니 자신은 행복한 어린 시절을 위해 따뜻하게 살고 싶다고 당차게 대꾸하는 딸.
결국 십 대 딸을 설득시킨 건 아빠의 말이 아니라, 역사 시간에 본 히틀러의 영상이었지만 (그 시대에 소수의 옳은 목소리를 듣지 않아 초래된 결과들)
내게는 너무나 강하게 와서 꽂힌 말이었다.
전에 <고등어..> 책을 읽을 때 내 아이들은 두 돌이 되지 않은 아가들이었다. 그래서 그때는 막연히 '이 분처럼 아이들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면,
7년이 지나 읽은 오늘의 책은, 그간 나는 얼마나 아이들을 생각한 대로 양육해 왔는가 돌아보게 했다.
이 부모라고 생각한 대로 늘 아이들이 따라왔겠는가.
십 대인 저자의 딸은 난방을 틀지 않는 아빠(저자의 남편)를 향해 털목도리와 털모자를 착용하고 식탁에 앉아 불만을 표한다. (반팔이 좀 선선할 정도의 날씨로, 털 아이템은 반항을 위해 착용한 것이다.) 아빠는 추워서 삶의 질이 떨어진다고 말하는 딸과 날 선 논쟁을 벌인다.
에너지가 점점 고갈되고 있기에 지금부터 절약하는 습관은 중요하다고 말하는 아빠와, 사람은 어려울 때일수록 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사는 법이니 자신은 행복한 어린 시절을 위해 따뜻하게 살고 싶다고 당차게 대꾸하는 딸.
결국 십 대 딸을 설득시킨 건 아빠의 말이 아니라, 역사 시간에 본 히틀러의 영상이었지만 (그 시대에 소수의 옳은 목소리를 듣지 않아 초래된 결과들) 내게는 너무나 강하게 와서 꽂힌 말이었다.
내가 아낀다고 에너지가 더 오래가는 건 아니잖아?
그래, 맞아.
그러나 다 같이 죽는다 해도 죽음에는 차이가 있어. 욕심쟁이 돼지로 죽을 수도 있고, 나누려고 노력하던 인간으로 죽을 수도 있어.
이 말을, 읽고 읽고 또 읽었다.
죽음에는 차이가 있다.
지금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정도는 이 나라에, 이 사회에, 이 환경에 큰 영향이 아닐 수 있으나, 어떤 사람으로 죽을지를 결정하는 것은 삶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문제이다.
나는 욕심내던 인간이 아니라 나누려고 노력하던 인간으로 죽을 것이다.
이 부분을 아이들에게도 읽어주고 우리 함께 노력하자고 다짐했다.
지금도 우리는 너무나 낭비하고, 너무나 욕심내고, 너무나 부족하지만 그렇기에 더 아끼고, 덜 욕심내고, 그렇게 더 나누는 내일을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