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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림 Apr 06. 2016

반인간적인 교육을 집어치우는 것.

이 책은 학교가 일반적으로 안고 있는 모순을 분석해보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 모순이란 민주주의 교육에 앞장서야 할 학교들이 오히려 민주주의의 근본 원리들을 위태롭게 하는 체제를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그 결과 학교는 필연적으로 언론, 기업이익, 학원 재단 그리고 믿기지 않겠지만 노동운동 조직에 의해 생성/유지된 거짓 정치선전에 가담할 수밖에 없다.

-도날도 마세도



하워드 진 《하워드 진, 교육을 말하다》


사실 이 책의 원제는 "Howard zinn on Democratic Education"으로 되어있다.

내가 영어울렁증이 심하긴 하지만 원제가 말하고자 한 것이 "민주교육"인 것쯤이야 알 수 있었고, 주목할만한 점이 아닌가 싶었다.

교육과 민주교육은 그 의미가 확연히 다르다. 

사전에도 교육은 "지식과 기술 따위를 가르치며 인격을 길러 줌. "이고 민주교육은"민주주의에 입각하여 민주 시민의 양성을 목표로 하는 교육."이라 되어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 민주시민은 무엇인가.

민주주의는 "국민이 권력을 가지고 그 권력을 스스로 행사하는 제도. 또는 그런 정치를 지향하는 사상."이며 민주시민은 그 권력을 바르게 행사할 줄 아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교육과 민주교육이 같은 말일 수 있겠는가.

이 민주교육의 시작이자,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역사를 아는 것"이라고 하워드 진은 말한다.


그리하여 저는 일찍부터 역사를 연구하는 모든 사람이 어떤 특정한 관점에서 역사를 연구하고 특정한 관점에서 사실을 선별하며, 사실이 제시되는 순간 그것은 더는 순수한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순수한 사실을 얘기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제시되는 순간, 사실에는 어떤 판단이 끼어들지요. 
어떤 사실은 널리 알릴 만큼 중요하지만 또 다른 사실은 그 정도로 중요하지는 않다는 판단이 개입하게 됩니다.



이미 우리나라는 어떠한 "특정한 관점 "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정부가, "순수한 사실 "을 숨기려는 의도로 국정교과서를 통과시켰음을 생각해 볼 때, 아이들을 키우며 역사 속 사실을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 것인지를 끊임없이 교육해야 하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먼 곳 미국에서 하워드 진이 콜럼버스의 양면성, 전쟁의 미화, 노동운동의 한계를 말하며 민주교육의 필요성을 외쳐왔다면, 

좀 더 친근하고 쉽게 민주교육을 시작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사람으로 우리나라에는 이오덕 선생님이 계셨다.

이오덕 선생님의 글은 내가 아이들을 키우고 교육하는데 있어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 있게 추천하는데, 이오덕 선생님의 책 중에 《민주교육으로 가는 길》이란 책이 있다.

지금 당장 아이를 민주교육을 통해 민주시민으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오덕 선생님의 글을 읽으시길 추천한다.


민주교육의 목표는 민주의 인간을 기르는 것이겠지요. 
민주의 인간이란 세상과 남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 그대로 자신의 행복이 되는 사람, 
자기의 개성과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면서 창조적으로 살아가는 사람, 
불의와 부정을 미워하고 정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p127


환경을 오염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주어야 합니다. 
자기가 먹고 마시고 놀거나 공부한 자리를 더럽혀서는 사람 노릇을 할 수 없다는 마음가짐을 항상 가지게 하고 자기의 몸에서 오염물질이 나오지 않는 삶을 살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이러한 생명존중과 자연보존에 대한 교육은 아주 어릴 때부터 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릴 때에 이런 가르침을 받으면 지극히 자연스럽게 그런 삶이 몸에 붙지만, 자라난 다음에 가르치면 대단히 어렵습니다. 
p130


사람에게 도덕이 없을 때, 사람은 짐승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짐승 이하의 괴물이 됩니다. 
나는 우리 사람들이 짐승 정도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생각합니다. 
p180


서로 해치고 남의 위에 올라서도록 하는 이 반인간적인 교육을 집어치우는 것, 
이것밖에 우리가 살아날 길은 없다. 

p334



카프카의 그 유명한 말처럼 이 문장들은 도끼가 되어 나를 마구 내려쳤었다. 

완곡한 표현이 아니라서 더 좋았다.

그래, 이 반인간적인 교육을 집어치우자. 그것이 아이들을 살리는 것이다.라고 확신을 가지게 되었더랬다.



봄이 왔다.

시드는 게 싫어서, 피었을 때 말려버린 프리지아 꽃다발의 샛노란 색이 하얀 테이블과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한다.

읽던 부분을 펼쳐놓은 채로 사라진 아이의 흔적이, 한 손에 들고 조몰락거리다 책 옆에 두고 간 플레이모빌이, 그 채로 완벽한 한 장면이 된다는 생각을 한다.

어느 날에는 아이들을 재워두고 친구와 북클럽을 한다.

분식을 먹다가도 느닷없이 문학토론의 장으로 빠졌다가 신세한탄이 되는가 하면 육아상담에 교육론까지 펼쳐지는 종잡을 수 없는 우리의 시간들.

이런 시간들이 있어서 조금 더 살아있는 것 같다. 조금 더 봄날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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