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하루를 준비하는 일.
아침에 눈을 뜨면 물을 먼저 끓인다. 두 번 끓인다.먼저 끓인 물로는 아이들이 하루 동안 먹을 차를 만든다. 아이들은 보리차보다 루이보스 차를 좋아해서 티백이 떨어지지 않게 신경을 쓴다. 첫 번째 물로 루이보스차 두 병을 만든다. 보리차를 끓일 때면 포트에 보리차 한 스푼과 결명자를 함께 넣는다. 색도 더 주황빛을 띠고, 맛도 더욱 깊어진다. 두 번째 끓인 물은 1.5리터 보온 주전자에 담아둔다. 이렇게 담아둔 물은 종일 내가 마시는 커피와 차에 쓰인다. 두 번째로 물을 받아 포트에 올리고 나면 바로 모카포트에 커피를 담는다. 모카포트 안쪽에 있는 나사에 찰랑거릴 정도로 물을 채우고 커피를 담는다. 한국어 설명을 보면 나사에 닿지 않게 물을 채우라고 되어있는데 그냥 눈대중으로 적당히 채운다.
커피는 손이나 스푼으로 누르지 않고 대충 담은 후 위만 평평하게 손가락으로 스윽 지나간다. 혼자 있는 날은 3인용을, 누구라도 오기로 예정되어 있는 날이면 6인용을 사용하는데 요즘 즐겨 쓰는 건 인덕션용으로 나온 것으로, 물 담는 통은 스테인리스이고 커피가 나오는 윗부분은 알루미늄으로 된 모델이다. 아래는 스텐이라 세척과 관리가 쉽고 위는 알루미늄이라 모카포트로 추출된 커피 특유의 맛도 남겨놓아 여러 개 있는 포트 중에 자꾸 손이 간다.
커피를 불에 올리고 나면 전날 밤에 식탁 위에 그대로 두고 들어간 잔들을 씻는다. 보통은 커피잔과 물컵 두어 개 정도지만 혼자의 시간이 깊었던 날이면 와인잔, 맥주잔, 커피잔에 티포트까지 정신없이 나와있다. 이런 잔들을 뜨거운 물에 튀기듯 씻으며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잔을 씻는 시간이 커피가 추출되는 시간과 비슷하게 맞아떨어지는 것은 늘 신기한 부분이다.
찬물을 담아 불에 올리면 포트 겉에 습기가 맺히고 그게 사라지고 조금 지나면 물 끓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곧 슉슉 공기가 빠져나오고 커피가 떨어지는 소리. 반 이상 추출되면 조금 시끄러운 소리를 낸다. 나는 그때 뚜껑을 열고 커피가 튀어나오는 것을 바라보는 걸 좋아한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나오고 더 이상 떨어지는 커피가 없으면 불을 끄고 미리 준비해 둔 접은 면보 위로 모카포트를 옮긴다.
그렇게 잠시 커피 향이 부엌을 채우게 둔다. 에스프레소로 마실 때는 잔에 설탕 한 스푼을 넣은 후 커피를 부어 마시고, 아메리카노로 시작하는 날은 포트 안에서 커피가 식을 때까지 기다린다. 보온 주전자에 담긴 뜨거운 물을 잔에 2/3 붓고 모카포트 안에서 차갑게 식은 에스프레소로 나머지 잔을 채워 만드는 것이 내가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방식이다. 빠르게 마시고 싶을 때는 커피 서버에 적당량의 물을 채워 두세 잔 분량을 만들어 놓기도 한다.
아메리카노를 꼭 머그잔에 마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에 그 날 기분에 내키는 대로 잔을 준비한다. 그날 쓸 잔을 고르는 것도 중요한 아침의 의식 중 하나인데 이건 나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그렇다. 이번에 결혼 15주년을 맞이하며 마음에 두었던 예쁜 잔들을 몇 개 구입했기에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아이들과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그날 하루 동안 쓸 잔과 받침을 고르고 물도 우아하게 마시며 이내 낄낄 웃는다. 그렇게 웃고 나면 비로소 하루를 시작할 준비가 된 것만 같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아마 내일도 반복될 우리들의 의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