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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림 Nov 01. 2018

10월의 마지막 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아마도 나의 유년 시절에 가장 미워했던 사람, 신은 왜 저 사람의 입을 막아 주시지 않는가 고민하게 했던 사람.
어린 우리에게 밥을 차리게 했던 사람, 그러나 그로 인해 내게 경로효친상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상장을 받게 해준 사람.
자신의 딸들로 하여금 나의 엄마에게 상욕을 하게 했던 사람, 남편을 꾀어 며느리가 지금껏 밥을 주지 않아 배고팠다는 말을 하게 한 사람, 그로 인해 그의 딸들이 나의 아버지의 셔츠를 찢게 한 사람.
나의 부모에게 경제적 정신적 충격을 안기고 다른 자식에게 그 돈을 들고 간 사람, 그러나 그 자식이 등 돌린 사람, 그리하여 몹시 외로워진 사람.



본래 사람을 잘 미워하지 않는 언니와 달리 어려서부터 고집이 세고 까탈스럽던 나는 할머니가 너무 미웠다. 엄마를 구박하는 할머니가 미웠고, 부모님이 할머니 때문에 소리 높여 싸우는 게 싫었고, 할머니 때문에 스트레스받은 엄마의 분노가 때때로 언니와 나를 향하는 게 괴로웠다.
나는 할머니가 엄마를 어떻게 구박했는지 잊지 않겠다는 표정으로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할머니의 만행이 엄마를 어떻게 갉아 먹었고, 그 결과가 우리에게 어떻게 돌아왔는지를 곱씹었다.


나는 친할머니를 싫어했고, 외할머니를 사랑했다.
내가 사랑한 외할머니는 오래전에 돌아가셨다. 할머니와의 기억은 내 안에 살아 움직이다 문득문득 튀어나온다.
내가 싫어한 친할머니는 어젯밤에 돌아가셨다. 나는 그 소식을 듣기 전에 설겆이를 하다 아끼던 잔을 깼다. 나는 할머니를 위해 기도했다. 외로우셨을 마지막은 내가 원한 건 아니기에.

북쪽의 끝으로 가서 그는 숨을 잘 못 쉬는 아버지를 태우고 나는 손가락이 구부러지지 않는 엄마를 태운 후 각자 달려 남쪽으로 넘어왔다. 밤운전은 내게도 피곤한 일이지만 엄마를 데려올 수 있어 다행이었다. 엄마네 주차장에서 만나 부모님을 들어가시게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제 돌아가시기 전 종일 그렇게 몸을 씻으셨다는 할머니를 생각한다.

어떠한 일들은, 어떠한 말과 글로도 설명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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