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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림 Feb 27. 2020

#01_여행의 시작

혹은 머묾의 시작인지도.


 지난밤의 어둠과 습한 기운이 아직 머물러 있는 새벽, 아이들을 깨웠다. 지난밤 열린 창으로 들어온 모기 때문에 잠을 못 자 칫솔에 짠 것이 치약인지 폼클렌징 인지도 헷갈리는 나와는 달리, 아이들은 벌떡 일어나 얼굴 구석구석을 비누로 꼼꼼하게 씻고 양치까지 마치고는 대충 챙겨놓은 빵을 나누어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밤을 벗어버리는 모습이다.

 뒷좌석에 문이 없는 작은 차에는 사람 넷과 짐가방 두 개가 다 들어가지 않아 택시를 불렀다. 우리는 로마를 떠나 기차를 타고 남쪽으로 550킬로미터를 내려가려는 참이다. 차로 가려면 여섯 시간에 달하고, 그럴 일은 없겠지만 걷는다면 4일은 꼬박 가야 하는 거리이다. 차멀미가 심한 아이들은 무거운 짐을 각자 책임져야 함에도 주저하지 않고 기차를 택했다. 식사를 마친 아이들의 여린 어깨에 각자의 배낭을 얹는다.




 떼르미니 역에서 출발한 기차는 남쪽으로 쉬지 않고 잘도 달린다. 전날 밤 나는 파스칼 키냐르의 로마의 테라스를 읽었다. 우습지만 제목 때문에 꼭 로마에서 읽으려고 챙겼던 책이다. 소설 속 주인공 몸므는 살레르노의 해안 절벽에 몸을 숨기고 살아간다. 기차를 탄 지 얼마나 지났을까. 다음 정차는 살레르노라는 안내방송이 조용한 객실에 울려 퍼진다. 지난밤 읽은, 살레르노 해안 절벽에서 몸을 웅크린 몸므를 떠올리니 기분이 묘해진다. 나는 어떤 시간을 향해 거꾸로 달리고 있는 걸까. 두통이 조금씩 심해지고 속을  게워내기 위해  종이봉투를 달라고 해야 하는지를 고민할 때쯤 빠올라 Paola역에 도착했다. 최종 목적지로 가려면 이곳에서 다시 차를 타고 30분 가까이 이동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 버겁게 느껴졌다. 역으로 마중 나온 사람은 형부 마리오의 어릴 적 친구 마르코이다. 멀리서부터 웃으며 다가오는 서글서글한 인상의 그를 보자 지끈거리는 두통도, 토할 것 같은 기분도 잠시 사라지는 것 같다. 나를 보자마자 팔을 끌어당겨 바쵸를 하고, 이 작은 동네에 온 걸 환영한다고 소리친다. 아이들은 처음 보는 외국인 아저씨가 포옹을 하며 반겨주자 금세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영어를 해야 하나 이탈리아어를 해야 하나 고민하는 그에게 매끄럽지는 않을 테지만 이탈리아어로 어지간한 대화는 가능하다고 말하니 멋진걸! 을 연발한다.

 마르코도 대부분의 이탈리아 사람들이 그렇듯 작고 귀여운 차를 몬다. 트렁크에 짐을 꾸역꾸역 넣고 배낭은 들어가지 않아 무릎에 올리고 출발했다. 잠시 사라졌던 울렁거림이 다시 몰려와 눈을 감고 유리창에 머리를 기대니 마르코가 연신 뒤를 돌아보며 소리를 친다.


Dai, Apri gli occhi e guarda fuori dal finestrino! 
 (그러지 말고 눈을 뜨고 창밖을 보라고!)



 날 좀 내버려 둬, 정말 죽을 것 같단 말이야...라고 중얼거리며 간신히 눈을 뜨니 우리는 산을 끼고 빙글빙글 돌며 산 위로 오르는 중이다.  만석이었던 기차에는 뒤로 가는 자리밖에 남아있지 않았고 그 결과 세 시간 내내 제멋대로 날뛰는 내장기관을 붙들어야 했는데,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길이 대관령 옛길보다 더한 꼬불길이라니. 한숨을 쉬며 다시 눈을 감으려는데 마르코는 눈을 감고 있으면 바로 토할 수도 있다고 진지하게 고개를 흔들며 말한다. 걱정 어린 조언을 모른 척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자세를 고쳐않고 힘겹게 눈을 뜨고 창밖을 보니 비현실적인 풍경이 이 작은 차를 감싸 안고 있다. 






 아. 탄식인지 감탄인지 모를 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한쪽으로는 울창한 산이, 한쪽으로는 어디가 끝인지 모를 바다가, 위에는 우리가 하늘색이라 표현하던 그 색의 하늘이, 그 안에는 선명한 하얀색의 구름이 넘실대고 있었다. 한 번 코너를 돌면 바다가, 또 한 번 돌면 산이 보이는 길의 반복이다. 매년 여름 언니가 아이와 이곳에서 여름을 보내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이곳이 형부 부모님의 고향이라는 것도. 그러나 이 길, 이 바람, 이 하늘, 이 바다와 산은 언니에게서 듣지 못한 풍경이다. 여기가 우리가 이 여름을 보낼 피우메프렛도Fiumefreddo구나. '차가운 강'이라는 지명부터 마음에 든다.

 꼬불길을 따라 해발 220m에 위치한 마을 어귀에 도착하니 산 아래 지역에 머물고 있는 마르코는 차가 더 이상은 들어갈 수 없는 입구에 짐과 우리를 내려주고 집에 일이 있어 바로 다시 가봐야 한다고 한다. 데려다준 것도 고마운데 뭘 그렇게 미안해하나 했더니 내린 지 1분도 되지 않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왜 바퀴 달린 가방에 짐을 싼 것일까. 이런 남부 시골마을에 포장된 도로가 있을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바퀴는 이런 길에서는 무용지물일 뿐 아니라 들기에도 오히려 걸리적거리기만 한다. 이 동네에서 매년 여름을 보내는 언니는 대체 왜 이 오래된 마을의 바닥을 잊고 바퀴 달린 캐리어에 짐을 싸는 것에 동의했을까. 그러나 동생은 멀미로 헤롱대고, 열 살 조카들의 등에는 이미 무거운 배낭들이 매달려 있으니 그 짐을 재주껏 들고 끌고 오르막과 계단을 오르는 일은 오롯이 언니의 몫인 터 원망은 의미를 잃는다.



 한낮, 남부의 뜨거운 열기 아래 땀과 피곤에 절은 여자 넷이 힘겹게 산 위의 오래된 동네를 가로지른다. 삼삼 오오 모여 여름을 즐기는 동네 사람들의 모근 시선이 우리에게 꽂히고 있다. 주인 옆에 늘어져 있던 개도 고래를 번쩍 들고 우리를 본다. 앞서 걷던 언니가 몇 년 전 마리오를 따라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동네 주민 대부분이 태어나서 동양인을 처음 보는 거였다고, 묻지도 않은 질문에 답을 해준다. 이곳에서 나고 자라 떠나지 않고 계속 사는 주민들은 도시로 갈 일도, 다양한 인종을 만날 일도 없다. 이 지역의 절경이 알려지며 최근에는 관광객들도 오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유럽인이고, 기차나 버스가 연결되지 않는 지역이다 보니 어릴 때 도시로 나간 사람들이 여름을 보내기 위해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이 끝나는 순간 높은 나무문 앞에 도착했다. 



여기야. 우리가 머물 곳.



 수백 년 된 건물의 엘리베이터 없는 3층으로 짐을 끌고 오르니 이미 3주 전에 할머니를 따라 이곳에 와있던 새카매진 조카와 마리오의 부모님, 그러니까 언니의 시부모님이 두 팔을 벌리고 뛰어나온다. 우리는 이들과 이 낯선 곳에서, 낯선 시선들 속에, 낯선 일상으로 여름을 채우겠구나. 

 이곳에서라면 나는 좀 더 어두워져도 되겠다.

이 햇살과 바람은 누군가가 끝없이 가라앉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테니.




+ 벌써 2년이 지나버린 긴 여행의 기록을 하나씩 올려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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