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잘못되어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든 게 언제부터였을까.
창문 아래에서 들리는 동네 사람들의 수다 소리가 알람을 대신한다. 잠시 누워 노란색 커튼을 통과해 들어오는 아침의 햇살과, 그 햇살에 춤추는 먼지를 바라본다. 밤새 열린 창문으로 들어와 방 안을 채우던 소리들을 생각한다. 맥주병 부딪히는 소리, 웃음소리, 장난치며 높아지던 목소리들, 그러다 갑자기 자고 있을 사람들을 의식했는지 킥킥거리며 쉿 하던 소리까지. 지난밤 우리가 옥상에서 늦게까지 나누던 이야기도 누군가의 방 안으로 새어 들어갔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곳에 우리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달빛 아래 맥주를 마시며 그 어떤 이야기를 나누든 우리는 자유다.
하루에 한 번 바다에 내려가는 일 외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아니, 할 수가 없다.
책과 뜨개를 챙겨 왔지만 산과 바다의 가운데에서는, 자연이 그대로 액자가 되는 창으로 둘러싸인 이 오래된 집에서는 어떤 일에도 집중할 수가 없다. 아침을 먹고는 점심을, 점심을 먹으면서는 저녁에 뭘 먹을지를 생각할 뿐이다. 와이파이 혹은 lte는 필시 미래 세계에나 존재하는 단어일 것이다. 용량 제한이 있는 3G도 너무나 귀해 문자 하나 확인할 때마다 줄어드는 데이터에 전전긍긍하느니 인터넷이란 게 없던 세상에 살고 있다 생각하기로 한다. 찢어진 청으로 덮인 소파 앞에서는 1960년대 제조일자가 찍혀있는 선풍기가 초록색 날개를 털털거린다. 내 언젠가는 저 선풍기를 해체해서 먼지를 털어내고야 말리라 생각만 해 본다. 벽에 붙어있는 사진 속에는 언니의 시아버지의 아버지가 무성영화 속에나 나올법한 양복을 입고 계시고, 장식장 위 아무렇게나 널린 물건들은 눈을 가늘게 뜨고 살펴보면 제일 새것처럼 보이는 녀석도 한국전쟁과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골동품 마니아들이 이 집에 온다면 기쁨의 함성을 외칠 것이다. 언니는 하나 가져가도 모르실 거라며 웃는다.
제멋대로 움직이며 소리를 내는 스프링이 느껴지는 침대에 누워 천장에 달린 실링팬이 돌아가는 걸 본다. 묘한 중독성이 있어 한 번 보기 시작하면 무아지경에 빠져버린다. 무아지경에 빠져 팬을 보면 돌고 도는 질문이 다시 나를 찾아온다. 나는 왜 이곳에 와 있나. 집으로부터 이렇게 먼 곳에.
모든 것이 잘못되어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든 게 언제부터였을까. 꼭 하고 싶은 것도 아니었는데 엄마가 원하는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었을 때였을까. 부모님의 미움을 받고 경제적 지원이 끊기는 것이 두려워 정작 하고 싶었던 것에서 마음을 접었을 때였을까. 혹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은 몇 번의 연애가 끝났을 때였을까. 그도 아니면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고 내 이름으로 많은 대출을 받으시면서 내가 일하던 학원에 국세청 직원들이 찾아왔을 때였을까. 너무나 피곤해진 내가 결혼으로 도피한 게 잘못이었을까. 아이가 안 생긴 게 내 탓이었을까. 어렵게 낳은 아이를 키우기 위해 모든 꿈을 뒤로 미룬 게 남편 탓이었을까. 다 놓아버리고 싶던 끝도 없는 우울과 권태는 언제부터 나를 지배했을까. 숨 가쁘던 일상이 지나가고 고요한 공기가 집 안에 내려앉는 밤이 오면 모든 질문들이 손가락을 높이 쳐들고 흔들며 모든 잘못된 일의 원인은 나라고, 내가 무언가를 잘못해서라고 탓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그 모든 것은 그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러운 생의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우울함도, 모든 것이 덧없다 느낌도 심각하게 생각할 것은 아닌지도 모른다. 세상의 모든 마흔 살의 여성이 느끼는 흔한 감정인지도. 그러니 어쩌면 나는 그저 겉보기에 아무 근심 없어 보이는 나란 존재가 사실은 이렇게 겨우 겨우 버티고 있다는 걸 누군가에게 소리 내어 말하고 싶었을 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단단하게 뭉쳐지지 않아 힘겹게 버텨온 모래성은 가벼운 바람에도 흩날릴 테지. 마흔 살의 내가 딱 그 짝이로구나. 괜찮지 않은데 너는 강한 사람이라 말해오니 괜찮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아서, 아이들을 남의 손에 맡길 수 없는 예민한 사람이어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기 싫어서, 여러 가지의 선명하지 않은 이유로 나는 푸슬거리는 모래성이 되었다.
천장에 달린 팬은 여전히 돌고 있고 느리게 도는 날개들이 생각보다 시원하다. 이렇게 가만히 누워 있으면 나 자신을 향한 질문은 끝이 없을 것이다. 내가 쓰는 글 속에서 나는 어디까지 솔직할 수 있을까. 끝까지 솔직해지지 못하고 비겁한 문장들 뒤로 숨게 될까 봐 겁이 난다. 불쑥불쑥 튀어나올 과거의 내가 지극히 이기적인 모습일까 봐 두렵다. 서서히 변화해 온 내 모습을 원래부터 그랬던 것인 양 말하게 될까 봐 서늘해진다. 이곳은 티켓값만 마련하면 장기간 아무 경비 없이 머물 수 있는 곳이란 점에서 내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지였기도 했지만, 현재의 내게 익숙한 것들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마주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니 나는 이곳에서 솔직한 나를 마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