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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림 Mar 01. 2020

#03_마흔, 나는.

이곳에 오기 전 나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미국 작가 리처드 예이츠의 소설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내가 정말 아끼는 책 중 하나이다.


 첫눈에 반해 결혼하여 레볼루셔너리 로드에 있는 예쁜 집에 정착하여 딸과 아들을 낳고 살아가는 젊은 부부 프랭크와 에이프릴. 에이프릴은 생기 넘치고 꿈꾸는 듯한 프랭크의 모습에 사랑에 빠졌지만, 한 가정의 가장이 된 프랭크는 절대 아버지처럼 회사원으로 살지 않겠다던 그 다짐이 무색하게 아버지가 수십 년을 일한 바로 그 회사에서 일하며 평범한 삶을 이어간다. 나름대로 만족하는 프랭크와는 달리 어딘지 모르게 우울해 보이고 위태로워 보이는 에이프릴. 에이프릴은 행복하지 않다. 조용하고 매일이 똑같은 그 삶이.
 에이프릴은  프랭크에게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으라며 날개를 달아주고 싶어 하고, 프랭크 또한 잊고 지내던 두근거림에 설렌다. 파리로 이사 가겠다는  ‘비현실적인’ 계획을 세우며 둘은 잠시나마 아무 근심 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프랭크가 회사를 때려치울 생각으로 장난처럼 낸 기획안이 사장 마음에 들어 승진 소식이 들려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프랭크는 마음을 바꾸고, 에이프릴은 절망한다.

 만일 그녀가 꿈꾼 인생이 남편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었다면, 그 혁명이 좌절되었다 한들 함께 헤쳐나가면 그만일 것이다. 부부싸움은 좀 하겠지만, 현실에 적응해가는 프랭크가 에이프릴에게 있어 다시금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본인의 삶조차 포기할만한 이유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살아갈 힘을 잃고 만다. 함께하는 삶을 이어가기 위해 그녀가 했던 희생을 계속해나갈 의지가 없어진다. 장을 보고 음식을 준비하는 일, 아이들을 돌보는 일, ‘좋은 아내’가 되는 일....

 프랭크는 에이프릴을 설득하고 싶어 했다. 자기는 꿈을 찾지 않아도 된다고, 여기서도 괜찮을 것 같다고. 프랭크는 에이프릴이 괜찮은 줄 알았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괜찮아질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에이프릴에게 중요한 것은 그의 흔들림 그 자체였기에 그녀를 설득하려는 태도 자체가 그녀를 다시 죽을 만큼 고독하게 만들어버렸다.
  에이프릴이 제안한 파리행은 그녀가 남편의 젊은 날과 꿈을 위해 제안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녀 자신을 위한 마지막 제안이었던 것이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이 부부로 열연한 영화도 참 좋아하지만 글이 화면이 되는 거의 모든 작품이 그러하듯,  원작의 섬세한 감정을 두어 시간의 화면 안에 다 담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2년 전에 남편은 이직을 했다. 두 번째 이직이었고 첫 번째 이직보다는 여러모로 자연스러웠다. 사는 곳을 옮길 필요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필요도 없었다. 그즈음 나는 그의 행동과 말을 통해 곧 회사를 옮기겠다는 이야기가 나올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의논은 하되 결정은 본인이. 이것이 내 지론이기에 이직 역시 그가 결정할 문제였다. 긴 이야기 뒤에 그는 "네가 동의하면 겨울쯤 옮길 준비를 할게"라 말했지만, 그 말속에 이미 그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다 들어있기에 나는 "마음 떠났는데 뭣하러 겨울로 미뤄. 당장 시작해"라고 말했다.    그는 매우 기뻐하며 그 결정이 우리 가족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 말했다. 이직 후 매우 바빠졌고, 나와 아이들은 그를 잘 보지 못하고 지내지만 그역시 우리 가족의 미래를 위한 것이리라. 그와 비슷한 나이의 남성들이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실려가는 이야기를 보고 듣기에, 쉬는 날은 부지런히 운동하러 가는 그에게 함께 시간을 보내자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만 모르고 우리 셋만 아는 이야기가 많아지고 아이들의 키는 어느 틈에 나와 비슷해져 간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행복한 미래가 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행복한 미래 속에, 그가 행복하게 만들고 싶었던 내가, 그가 생각하던 모습으로 존재할는지는 정말 모르겠다. 나는 잡히지 않는 행복이라는 단어가 싫어서 그를 떠나왔으니 말이다. 우리가 나눌 수 있던, 실감할 수 있던, 현재의 우리를 감싸고 있던 행복은 그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그리고 인정하기 싫지만 그가 옳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살면 우리의 미래는 엉망진창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너무 없이 시작했으니까. 너무 고난이 많았으니까. 그런데도 나는 계속 삐딱선을 탄다. 어쩌면 네가 그리는 미래가 되기 전에 나는 죽을 수도 있다고 속으로 소리친다. 사람들은 그렇게들 죽어. 행복해질 만하니까 갑자기 아파. 좀 살만해지면 갑자기 사고가 나기도 해. 너무 허망해지면 그런 일들이 생겨. 그러니 행복해지려는 시점을 정해놓고 산다면 어쩌면 너와 나는 영영 서로 다른 말만 하다가 뒤돌아 걸을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그 미래가, 우리가 행복해진다는 그 날이 올지 안 올지 너와 나는 알 방법이 없으니.






(2년 전 이 여행의 시점으로 쓰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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