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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림 Mar 13. 2020

#04_이제는 들어가 볼까

평생을 바라보기만 했던 바다

 내가 물에 들어가지 않는 데에는,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면 수영을 전혀 못 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어떠한 사건들은 실제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육체에 깃들어 각인되는 것이 아닐까.

 나는 물이 발에 닿을 때면 알 수 없는 공포를 느낀다.




 나는 다섯 살, 혹은 여섯 살이다. 우리는 전 해에도, 그 전 해에도 그랬듯 아빠의 낡고 소리 나는 프라이드를 타고 멀미를 하며 깊은 계곡에 들어와 텐트를 치고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다. 그때에는 다들 여름휴가를 피서라 칭했다. 나는 수영복이랄 것을 입지 않았다. 위는 벗었고, 아래는 하얀 면 팬티를 입었을 뿐이다. 나는 물로 들어간다. 계곡은 물이 깊지 않다. 엄마와 아빠는 함께 온 친구들과 돗자리 위에 반쯤 누워 웃고 있고 팔을 뻗으면 닿을 곳에 언니가 튜브에 매달려 둥둥 떠 있다. 나는 언니를 향해 웃으며 한 발 한 발 들어간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 아래의 땅이 사라지고 배꼽께 있던 물이 코 위로 올라온다. 영문을 모르고 발버둥을 치지만 입으로, 코로, 눈으로 물이 들어온다. 아니, 눈에서는 물이 나오는 건가. 정신을 차린 나는 축 늘어져있다. 엄마는 왜 튜브를 가지고 들어가지 않았냐고 어깨를 흔들며 야단을 치고 아빠는 그 청년이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냐며 다행이라고 반복해서 말한다. 어린 나는 죽음의 냄새를, 죽음의 소리를, 죽음의 색을, 물로부터 느꼈다. 나는 그냥 운다. 엄마가 화를 내니까 울고 내가 죽을 뻔했다는 말에 운다. 그리고 다시는 물에 들어가지 않겠다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은 다짐을 한다.


 나는 그때의 나의 다짐을 평생을 두고 충실하게 지켰다. 수년간 지중해를 낀 나라에서 살았으면서도 바다에 가면 해변에서 얼쩡대기나 했지 물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일행은 내 속도 모르고 바다에 와서는 물에도 안 들어간다며 나를 놀렸지만, 마음대로 생각하게 두었다. 수영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했으나 신혼여행 때도 내 짐에 수영복은 없었다. 그는 수영을 배우는 것이 더 안전할 거라 말하면서도, 밀어붙이지는 않았다. 나의 트라우마를 이해했다기보다는, 싫어하는 일을 강요하지는 않는 사람이라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제주도의 푸른 밤 아래 홀로 수영을 하며 아마도 나를 이해하려 노력했을 것이다. 결혼해서 남해와 동해에서 각 3년씩을 살았다. 아이를 키우며 자연스레 집 앞 바다에, 수영장에 갈 일들이 생겼지만 내 정신력이 허용하는 범위의 물높이를 넘어설 수 없었다. 그는 아이들에게 수영을 가르치며 말하길,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아빠는 괜찮으니 엄마부터 구하라 했다. 그리고 그 말은 날 더 두렵게 했다.



 그런 내가 뭔가에 홀린 듯 바다에 들어간 건 설명하기 힘든 일이다. 그날이 그가 말하던  "혹시 무슨 일이 생긴 날"이었다. 수영복을 입기는 했지만 내 자리는 언제나 그렇듯 뜨끈한 모래 위였고, 아이들은 이모와 함께 물속에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한 걸까. 잠시 정신이 어떻게 되지 않고서야 내가 내 발로 바다에 들어갈 리가 없다. 신나게 노는 아이들 옆으로 가고 싶단 생각에 사로잡혀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바다로 들어갔고, 조금씩 걸어 아이 쪽으로 걸어갔을 뿐이다. 순간 발아래가 사라졌다. 나는 계곡물에 빠져 정신을 잃은 다섯 살로 돌아갔다.




 아이가 물 위로 고개를 내밀고 웃고 있었다. 아이의 키는 나보다 8cm가 작다. 아이를 향해 걸으며 아이의 머리가 나와 있으면 내게는 가슴 정도겠구나, 내 정신력이 허용하는 범위에 아슬아슬하지만 아이가 있으니 나도 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한 게 온전한 의식의 마지막이다. 그러나 아이는 서있는 게 아니라 떠있던 거였다. 아이는 수영을 할 줄 알았고 물에 몸을 맡긴 상태였는데 나는 아이가 발을 딛고 서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발아래가 꺼지는 순간 몸에 힘이 들어가면 가라앉는다는 이론이야 나도 잘 안다. 하지만 이미 나는 이성을 잃었다. 너무 놀라 순간적으로 유유자적 떠 있던 아이의 어깨를 잡았다. 그 찰나의 순간에, 빠져 죽는 공포보다도, 살겠다고 자식의 어깨를 잡아 누른 나 자신에게 더 놀라서 달궈진 솥뚜껑을 잡은 것처럼 손을 뗐다. 여섯 살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죽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여기서는, 아이들 앞에서는, 집에서 9000km나 떨어진 곳에서는 죽고 싶지 않다고. 나는 이미 울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팔다리를 움직여 봐도 고개가 좀체 수면 위에 머물지를 못하고 계속 물을 먹고 있었다. 머리가 물속으로 들어가면 발이 닿았다. 그러니 이곳은 깊지 않은 곳이다. 발을 차고 올라가면 머리가 물 밖으로 나간다. 그러나 머물지 못하고 다시 물속으로 들어오니 숨을 쉴 수가 없다. 뿌연 시야 사이로 언니의 시어머니인 논나리아가 보였고, 나의 움직임을 이상하게 여긴 논나리아가 친구인 쟌니 할아버지를 불렀고, 별명이 물개인 쟌니 할아버지가 순식간에 다가와 나를 잡고 끌어당겼다. 물론 이 상황은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다. 나는 쟌니 할아버지가 다가온 것도, 나를 끌고 나온 것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로 엄청난 바닷물을 들이켜고 있었다. 아, 세상에. 소금물이 그보다 짤까. 



 눈물 콧물을 흘린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물이 너무나 맑아 물아래 바닥이 경사진 것까지 보이는 곳이었다. 아이의 웃는 얼굴만 보고 다가가느라 바닥이 없어지는 것도 몰랐다. 언니 시부모님의 오랜 친구인 칠십 살의 쟌니 할아버지는 그을린 피부에 탄탄한 몸을 가지고 계셔서 바다에 갈 때마다 정말 건강한 할아버지구나 하며 감탄했는데, 내 생명의 은인이 될 줄이야. 로마에 돌아가면 쟌니 할아버지에게 보낼 선물을 사고 카드를 쓸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가면 수영을 배워야지. 비록 더 큰 트라우마를 안게 되었지만, 아이 앞에서 죽음을 다시 맛본 것은 여섯 살의 경험과는 다른 결과를 낳았다. 나는 정말로 수영을 배울 것이다. 





 난리를 겪고 나서는 이곳 사람들로부터 어마어마한 놀림감이 되었다. 태어나면서부터 바다와 벗하는 이들이라 내 공포를 알 리가 없지. 기분이 상하지만, 죽지 않았으니 너그러운 마음으로 흘려듣는다. 어제는 처음으로 오후에도 바다에 갔는데 느낌이 사뭇 달랐다. 빛바랜 큰 수건을 펴고 누워 책을 읽다가 가끔 아이들이 눈에서 멀어지면 종종거리며 달려가 발만 담그는 나이지만, 그마저도 물에 빠진 이후로는 굉장히 조심스러워졌지만, 잠시 손을 넣어보는 것으로도 오전의 바다와 달리 물이 따뜻하다는 걸 알았다. 물 밖의 기온은 조금씩 떨어지고 있어서 물이 찰 줄 알았는데 오후 내내 데워진 물은 포근하고 따스하다. 수영을 할 줄 알면 저 포근함이 몸을 감싸는 기분을 느껴볼 수 있었을 텐데. 처음으로 다섯 살의 내가 한 선택이 원망스러워진다.



 지는 해가 어찌나 강렬한지 눈을 뜨기가 힘들어 몇 문장을 겨우 읽다 졸다 했다. 까무룩 잠에 빠져들 때면 선크림도 안 발랐으니 선글라스 모양대로 자국이 날 수도 있겠구나, 그렇게 자국이 나면 정말 웃기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도 그늘로 피하는 건 생각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린 나는 요즘 하루가 다르게 까매지고 있다. 어깨는 어린 시절 이후 처음으로 허물을 벗는 중이다. 바다에서 신나게 놀던 사람들이 다들 우르르 물 밖으로 나온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는 언니에게 물으니 해파리가 나타났단다. 우르르 나온 사람들은 우르르 맥주를 마시러 가고 나 역시 땀에 다 달라붙은 원피스를 입고도 좋아서 삼천 원 가량의 돈을 내고 그들과 함께 생맥주를 마셨다. 시끄러운 이태리어와 웃음소리가 떠다니는 테이블에는 바다의 습기와 짠 내음을 머금은 끈끈한 바람이 불고, 해는 졌지만 남아있는 열기는 그대로 몸에 스며든다. 적당히 취기가 올라 노곤해진다. 이 나라의 언어는 더 이상 내가 듣고 말할 수 있는 언어가 아니다. 집중해야 알아들을 수 있는 과거의 언어가 된다. 점점 멀어져 바로 옆에서 말하는데도 그저 소음 같다.  이 바닷가에서 이렇게 취해가는 저녁이라니. 마흔의 여름이 놀랍기만 한 일들로 채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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