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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주부 Nov 01. 2018

<프레이리의 교사론>을 읽다

기꺼이 가르치려는 이들에게 보내는, 어느 교육자의 진심어린 편지

파울로 프레이리는 나에게 있어 참으로 추상적이고 와닿지 않는 존재였습니다. 그의 저서 페다고지의 명성 탓에 그의 존재를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뿐, 그가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행하였는지 관심도 없었고 전혀 알지도 못했거든요. 그래서, <프레이리의 교사론>이라는 책으로, 내가 프레이리를 접한 건 순전히 우연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우연은, 내 마음 깊숙이 들어와 내 생각을 하나 하나 부수었습니다. 그리고 교육, 교육자, 학습자에 대한 생각이 얼마나 막연했는지 깨닫게 했습니다. 그의 말투는 정중했고 그의 생각은 겸손했지만, 그의 생각은 과학적이며 동시에 삶에서 우러나왔기에, 저 스스로를 부끄럽게 했지요.


다음은 <프레이리의 교사론>에서 발췌한 문구들입니다. 앞 부분은 도날도 마세도(Donaldo Macedo)라는 미국의 언어학자가 쓴, "프레이리를 읽기 위해서"라는 글, 뒷 부분은 파울로 프레이리가 직접 쓴 글입니다.







21

프레이리의 방법은 혁명적이다. 문자를 모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굴종적이고 수동적인 삶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때문이다. 프레이리가 꿈꾼 이 혁명은 피억압자와 억압자의 자리를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착취와 권력 서열이 없는 사회, 힘없는 자들의 세계 읽기를 방해하지 않는 사회로 재창조하려는 것이었다. 


22

프레이리 연구의 독창성은 효율적 문해방법에 있지 않고,  (인간화 교육의 일부로서) 의식 발달 설계를 위한 내용에 있다. 인간화 교육은 사람들이 세상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의식할 수 있게 되는 통로이다.


26

권한 부여(empowerment)는 전문가들의 특권적 지위를 침해하지 않는 한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 (이는) 온정주의적으로 타인에게 권한을 주는 지배자의 입장에 불과하다. 온정주의적이고 식민주의적인 태도는 이런 유의 진보적 교사가 주요 회의석상에서 공공연히 지역민들은 대학에 갈 필요가 없다고 말하도록 만든다. 공식적으로 이런 주장을 하면서, 그녀 자신은 도심에서 부유한 교외로 이사가기에 바빴고, 자기 아이들이 명문학교에 다니는 것을 자랑스러워 했다. 


이는 교수들이 상당한 혜택을 누렸던 문화자본을 지역민들은 이용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실질적 권한부여에 대학의 문화자본이 꼭 필요한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또한, 이는 프레이리가 맹렬히 반대했던 온정주의의 위선적 관용의 냄새를 풍긴다.


28

도구주의 문해는 학문을 과잉 전문화해서 최고 수준의 문해에 이르는 것을 포함한다. 도구주의 문해는 세계를 비판적으로 읽고 사실의 이면에 놓인 이유와 관계까지도 파악할 수 있는 능력, 즉 비판적 사고를 개발하지 못하게 막는다. 


가장 낮은 수준의 도구주의 문해에서 반 문해란 글은 읽지만 세계를 읽지 못하는 것이다. 전문화를 이룬 최고 수준의 도구주의 문해에서, 반문해란 전문 텍스트는 읽을 수 있지만, 지식세계를 구성하는 다른 모든 지식들에 무지한 것이다.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반문해 상태에 있는 전문가들을 학식 있는 무식꾼이라고 했다. 학식 있는 무식꾼은 주로 아주 협소한 자기 세계에만 관심을 갖고, 다른 세계에는 무심하기 때문에 많은 정보들을 연관지어 세계를 비판적으로 읽지 못한다.






우리는 어리석고 감상적이라는 말을 듣거나 반과학까지는 아니지만 비과학적이라는 말을 듣더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용감하게 사랑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우리는 온몸으로 공부하고, 배우고, 가르치고, 알게 된다는 것을 단순히 허튼 소리로가 아니라 과학적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느낌, 정서, 소망, 두려움, 의심, 열정과 비판적 이성으로써 이 모든 일들을 해냅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마음의 관료화에 '아니오'라고 말하는 법을 꼭 배워야 합니다. 



79

공부를 한다는 것은 밝히는 것입니다. 공부하는 것은 대상을 좀더 정확하게 이해하는 일이며 다른 대상들과의 관계를 깨닫는 것입니다. 이 일은 배움의 주체인 학생의 입장에서는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할 것을 요구합니다. 도전하고 위험을 무릎쓰지 않으면 창조나 재창조를 할 수 없습니다.


84

우리가 공부만 하는 사람이건 가르치면서 공부하는 사람이건 모두 다 텍스트를 읽고, 노트를 정리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며, 우리가 읽었던 바에 대해 소논문이라도 구성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읽기와 쓰기와 생각하기 간 관계에 대해서 숙고해본다면, 우리는 적어도 일주일에 세 번 정도는 무언가 쓰는 데 열중해야 한다는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쓴 글은 우리가 읽었던 것에 대한 노트가 될 수 있고, 대중매체에서 보도된 어떤 사건에 대한 논평일 수 있으며, 미지의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일 수 있습니다. 무엇에 대해 쓰는 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91

교사든 학생이든 간에 공부를 할 때 범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실수 가운데 하나는, 직면한 최초의 난관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공부하는 일은 많은 노력이 필요한 고된 일입니다. 공부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고통, 즐거움, 승리감, 패배의식, 회의, 행복감 등을 느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부하는 일은 엄격한 규율을 개발할 것을 요구하는데, 그 규율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우리 내부에 형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도 이런 규율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거나 부과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공부를 위협하는 또 다른 것은 자신의 주장을 검증해보지 않고 이해했노라 공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텍스트 자체의 어려움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자신이 직면한 난관을 극복하지 않고 회피해버리는 가장 최악의 위협입니다. 


내가 읽은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부끄러워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해하지 못한 텍스트가 읽기에서 핵심적인 부분으로 보인다면, 그 텍스트가 핵심적인지를 판단하기 위한 관점을 얻기 위해서라도 나는 텍스트 이해에 따르는 어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151

(교육자는) 학생들이 살고 있는 세계의 구체적 조건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학생들의 구체적 조건이야말고 그 학생을 형성하는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의 현실을 알아야 하는 것은 교육실천을 하는 교사들에게 당연히 부과되는 과제입니다. 이런 노력 없이는 학생들의 사고 방식을 알 도리도 없고, 학생들이 무엇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를 밝히는 데도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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