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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주부 Nov 01. 2018

"수학"과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KHAN ACADEMY 수학 공부가 재미있는 이유

요즘 수학 공부한다. 미적분, 선형대수, 확률과 통계. 고등학교, 대학교 때 손도 대지 않았던 녀석들이다. 그 녀석들을 요즘에는 하루 종일 끼고 산다. 데이터과학을 공부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만만하지 않다. 공부량도 많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 급전이 필요해 오래도록 연락을 끊은 친구에게 전화를 거는 듯한 심정이랄까.


그때 구세주처럼, 어느 웹 사이트가 눈에 들어왔다. (사실 학원에서 추천해줬다) 그곳은 칸 아카데미(KHAN ACADEMY)로, 살만 칸(Salman Khan)이라는 사람이 만들었다. 그는 원래 헤지펀드(hedge fund) 애널리스트였는데, 조카를 위해 수학 강의 영상을 만들다가 강의가 대박 나서, 지금은 교육인으로 살고 있다.


 


칸아카데미(KHAN ACADEMY)의 창립자 Salman Khan [ 출처 : http://thesign.al/sal-khan/]




뒷걸음질 치다가 쥐 밟은 격이지만, 뭐 어떠한가. 칸아카데미는 매우 훌륭하다. 특히, 현행 공교육보다는 훨씬 더. 만약 수포자(수학 포기자) 경험이 있다면 혹은 수학 공부를 다시 하고 싶다면, 칸아카데미를 단연 추천한다. 마냥 훌륭하다고 예찬하는 게 아니라 확실한 근거가 있다. 그 이유를 조목조목 말하기에 앞서, “실력”은 어떻게 쌓이는지 그리고 “배움”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짚어보자.








자기 계발서 좀 뒤져본 사람이라면, “1만 시간의 법칙”을 들어봤을 것이다. 조금 더 자기 계발서를 뒤져본 사람이라면, “1만 시간의 법칙”이 실제로 성립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사실도 들어봤을지도 모른다. 인지과학자 안데르스 에릭슨은 그의 저서 <1만 시간의 재발견>에서, 1만 시간의 법칙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1만 시간의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1만 시간의 “의도적 수련”(deliberate practice)을 해야 한다고 언급한다. “의도적 수련”이란, 노동 혹은 여가와 구별되는 것으로, 실력을 쌓기 위해 실질적, 구체적으로 수행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의도적 수련의 요건은 무엇인가. 안데르스 에릭슨은 의도적 수련의 요건으로 4가지를 언급했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1. 작업이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다. - 잘했다, 못했다 기준이 명확한가?
2. 난이도가 적절하다. - 지나치게 어렵거나 혹은 쉽지 않은가?
3. 피드백이 적절한 때에 풍부하게 이루어진다. - 내가 어떻게 했는지에 대한 자세한 피드백이 있는가?
4. 반복, 실수 교정의 기회가 주어진다 - 하나를 여러 번 시도하면서 실수를 교정할 기회가 있는가?


안데르스는 위 요건이 충족되었을 때, 의도적 수련이 일어나, 투입 시간만큼 실력이 쌓인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의도적 수련이 일어날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은, 실질적으로 실력을 쌓도록 하는, 다시 말해 배움이 일어나도록 하는 교육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칸아카데미로 돌아오자. 칸아카데미가 훌륭한 이유는, 그 시스템이 의도적 수련의 4가지 요건을 잘 충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칸아카데미는 수행 과제가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다. 사실 이는 칸아카데미의 고유 특성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수학” 분야의 특성상, 옳고 그름이 명확하게 나누어져 있기 때문이다. 칸아카데미를 이용하든, 학교 수업을 듣든, 문제집을 풀든.


칸아카데미가 돋보이는 순간은 다음부터다. 사용자의 실력을 고려한, 적절한 난이도의 강의와 퀴즈를 제공한다는 점. 이 기능의 강점을 알기 위해, 우리가 학교에서 어떻게 수학을 배웠는지 되돌아보자. 학교는 결코 학생 개개인을 위한 서비스가 아니었다. 그래서 학급 혹은 학년의 모든 학생을 고려하여 수업을 했고, 시험을 봤고, 평가 했다. 결국 학생에 따라 수업의 난이도가 천차만별인 상황이 발생한다. 학생 A는 진도가 너무 느려서 수업이 너무 쉽다. 그 학생은 수학이 지루하다. 반면, 학생 B는 기본 개념이 탄탄하게 뒷받침되지 못해 진도를 따라가기가 어렵다. 그 학생은 수학이 어렵다. 학생 A와 B 모두 수업이 재미없긴 마찬가지다.




수학도 이렇게 차근차근 할 수 있다면? [ 출처 : Photo by Brittany Simuangco on Unsplash ]

 



그러나 칸아카데미는 사용자 개개인의 실력을 고려하여, 그에 걸맞은 난이도의 강의 및 퀴즈를 제공한다. 사용자 A는 실력에 따라 고난도의 강의를 듣고 퀴즈를 풀 수 있다. 실력이 쌓이는 만큼 난이도가 올라가다 보니, 진도가 느리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다. 사용자 B도 자신의 실력에 걸맞은 난이도의 강의를 듣고 문제를 풀 수 있다 보니, 수학이 지나치게 어렵지 않다. 정리하면, 칸아카데미에서는 모든 사용자가 자신의 속도에 따라 수학 공부를 이어나갈 수 있다.

 

또한, 사용자는 칸아카데미 생태계 안에서 언제 어디서든, 풍성하고 다양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칸아카데미의 플랫폼은 웹이다. 그래서 사용자는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즉각적으로 자신의 공부에 대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특히, 퀴즈 부문에서 칸아카데미의 시스템은 사용자가 입력한 값이 옳은지 그른지 명확하게 판단해서 알려준다. 그래서 사용자는 내가 해당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그리고 적용할 수 있는지 곧바로 알 수 있다.

 

강의 밑단에 있는 Q&A 섹션도 인상 깊다. 사용자가 자신이 모호한 개념에 대해서 질문하면, 운영자 혹은 다른 사용자가 그 질문에 대해 답변을 달아준다. 그동안 우리는 적절한 피드백을 받기 위해 이동하거나, 기다리거나,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그러나 이제 더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맞춤형 개인교사가 상시 대기하는 셈이다.

 

아무리 과제의 난이도가 적절하고 피드백이 풍성해도, 반복할 수 없다면 실력을 탄탄하게 쌓을 수 없다. 칸아카데미는 끊임없이 문제를 풀고 자신의 실력을 확인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여, 의도적 수련의 마지막 요건을 충족한다. 칸아카데미에서 반복적 시행착오 및 개선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칸아카데미의 목적이 평가와 그에 따른 보상이 아닌, 배움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칸아카데미는 당장 점수가 낮아도, 다음에 다시 풀어 높은 점수를 받는다면 높은 점수를 기록한다. 사용자의 점수보다 배움을 중시하는 것이다.








요즘 수학이 재미있다. 중, 고등학생 때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다. 학교에서 배움은 늘 뒷전이었다. 배움의 공간인데도, 배움보다 점수 그리고 그에 따른 보상이 더욱 중요했다. 지금은 다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다시 말해 수학 자체를 위해 배운다. 그래서일까, 누구 하나 점수 매기는, 칭찬해주는 사람 없지만, 수학이 재미있다. 


사실, 수학은 원래 재미있는 녀석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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