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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e Mar 26. 2019

출산준비물, 결정장애 겪는 분들께

출산을 앞둔 분들은 "출산준비물" 고민 많이 하시죠. 포털에 출산준비물을 치면 엑셀파일이 제법 많이 눈에 띕니다. 


Overwhelming! 


저는 출산 두달 전부터 검색만 하다가 끝없는 리스트에 압도 당해서 처음엔 준비할 엄두가 안났어요. 맘카페에서 각 아이템별 브랜드에 대한 "연구"를 하고, 코엑스 별마당 도서관 가서 출산준비 책을 읽으면서 노트에 옮겨 적어오기도 하고 마음이 분주했습니다.

© heathermount, 출처 Unsplash


아이템도 한 둘이 아니고 브랜드는 죄다 첨 들어보는 것들 ...엄청난 "결정장애"에 시달렸죠 

어떤 날은 커피숍에 노트북 들고 가서 하루 종일 자리 잡고 앉아서  살펴봤죠 

물티슈는 그냥 물티슈 아니었던가요?  그런데 물티슈 브랜드만 해도 베*숲, 페**페, 밀*앤*비 등등 엄청 많았어요 . 임신하지 않았으면 평생동안 몰랐을 브랜드죠. 심지어! 베*숲 브랜드의 경우 그 안에서는 센서티브, 프리미어, 시그니처 네이처골드 등등 sub-라인이 엄청 많았어요. 각 브랜드와 각 브랜드별 라인을 조합하면 경우의 수가 백개는 넘었죠. 

이렇게 고민에 고민한 끝에 물티슈를 골랐는데도 물티슈 박스들은 옷장 속에 쳐박혀 있습니다. 막상 아이 낳고 6개월이 지난 현재 제 결론은  뭐든 상관 없다는 생각입니다.  예컨대 
숱한 고민 끝에 물티슈를 골랐음에도 불구하고 아이 기저귀를 갈아줄 때에는 가재 수건을 냄비에 적은 물을 끓여 적신 뒤 닦아주고 있습니다. 덕분에 발진이 거의 안났고 물티슈와 발진크림은 괜히 산 물건이 됐죠. 


이처럼 막상 아이 낳고보니 안쓰고 처분한 물건이 한 두개가 아니었습니다. 수유패드는 아예 필요 없었고 스와들업이나 핫슬링은 사놓고도 아기가 답답해해서 개시조차 못했죠. ‘아가의 상징' 공갈 젖꼭지의 경우 저희 아기는 한 번도 안물었죠. 


이걸 안사도 된다는 게 아니라, 아기별 산모별 개인차가 있는만큼 낳고 나서 구비해도 절대로 늦지 않을 품목들이죠. 무엇보다도 저희에게는 다음날 로켓을 타고 바로 배송되는 쇼핑몰이 있죠. 출산 후 필요하면 바로 구매해도 됐던 거죠. 그런데도 맘카페와 블로그 등등 통해 검색에 검색을 거듭하며 '세상에서 가장 좋은 육아템' 사기에 온힘을 기울였던 것 같아요.

사람의 인지 자원은 한계가 있는만큼 
어떤 품목 살지 검색하고 고민하기보다는
곧 만날 아기를 어떻게 맞이하는 게 좋을지
고민하는 게 나았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어요.

최근 정신과의사인 하지현 쌤의 신간 '고민이 고민입니다'라는 책엔 이런 내용이 나와요. 고민을 방해하는 감정으로 자기 확신의 결여를 꼽습니다


....내 결정을 내가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결정이 영 미덥지 않으니,이 정도면 마무리 됐다는 마무리를 하지 못한다. 그리고 더 많은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 막연히 짐작한 채 불안해 하며 더 많은 정보를 찾으려 노력한다...(중략)...지금의 나를 믿지 못하면서 완벽하고 무결점의 이상적인 결과를 기대하는 심리 때문이다.

모든 고민에 적용할 수 있는 문구겠지만 이를 출산 준비에 한정해놓고 읽어보면 세상에 완벽한 육아템이란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예비 부모로서 스스로 더 자신감을 갖고 출산과 육아에 임했으면 합니다. 괜한 압박으로 스트레스 받지 않길 바라는 맘에서 글을 써봤습니다. 

흔히들 육아는 장비빨이라고 합니다. 막상 아이 낳고보니 이 말이 무지하게 불편하게 들립니다. 인스타 보면, 맘카페 보면 하나같이 좋은 브랜드 육아템 사고 그 육아템 안사는 나는 웬지 준비안된 엄마일 것 같고...

© gabriellehenderson, 출처 Unsplash


하지만 괜한 죄책감 갖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경영학에서도 공급자가 drive 하는 시장이 나오는데 저는 국내 육아 시장이 그런 사례라고 봅니다. 소비자 수요에 따라 제품이 나오는 게 아니라 공급자가 제품을 만들어내면 수요가 거기를 따라가는 거죠. 쉽게 말해 굳이 안사도 되는 것들을 마케팅에 휩쓸려, 혹은 인스타의 그녀가 사길래 사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육아시장 규모는 연간 3조8000억원에 달합니다. 물론 모든 육아템이 그런 건 아니겠지만 저출산 시대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성장하고 있습니다. 

출산 6개월을 맞이한 제가 지금 다시 출산 준비를 한다면요? 육아템은 최소로만 준비하고 아이를 맞이할 정서적 준비를 할 것 같습니다.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지, 어떤 엄마가 되고 어떤 아빠가 될지, 어떻게 육아를 분담하면 좋을지 아이로 인해  바뀔 생애 계획을 생각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육아는 장비빨이란 생각에 검색에 검색을 거듭하면서 혹은 남들과 비교하면서 정작 중요한 건 놓치고 있는 게 아닌지 봐야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실용적인 팁을 드리자면 저보다 출산 선배인 제 동생은 출산 준비물을 이렇게 한 방에 정리하더군요. 배넷저고리, 목욕시킬 대야, 속싸개, 겉싸개, 젖병 두 개 정도 필요한 게 아니겠느냐고요. 그리조 무엇보다도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중요하겠지요.그래야 끝없는 육아템 고민에서 헤어나올 수 있겠죠. 


그러하므로, 출산 준비물은 육아템이 아닌 부모로서의 자신감을 '장착'하는 게 우선일 듯 싶습니다. 첫 출산이어서, 출산 준비물 준비가 막막하게만 느껴지는 분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맘에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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