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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e Jun 09. 2019

분만 후 12시간 동안 해야할 일

이전 글에선 출산 직후 캥거루케어에 관한 부분을 썼습니다. 제대로 캥거루케어를 해보지도 못한 저는 아이는 진즉에 신생아실로 보내고 병원 분만실에서 한두시간 정도 대기(회복을 위해)한 뒤 입원실로 향했습니다. 자연분만이라 3일 입원하는 일정이었죠.


병원에선 갑자기 쓰러질 수 있으니, "조심 또 조심"하라고 권했습니다. 화장실 갈 때에는 반드시 누군가의 부축을 받아야 하고(제가 입원한 병원은 간호사 간병이 의무화된 곳이어서, 움직일 때마다 간호사가 따라 붙어주었습니다), 침대에서도 낙상을 막기 위해 항상 bar를 쳐놓아야 했습니다.

기분 좋게 미역국을 먹고 남편과 면회온 가족들을 맞이하면서 출산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문제는!


바로 그 12시간 동안 움직이지 말라는 지시였습니다(정확히는 지시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닙니다. 그 지시를 받아들인 제 태도였습니다)

여느 표준적인 한국인처럼 시키는 대로 하는 모범생 DNA(?)를 지닌 저는 진짜로 12시간 동안 꼼짝없이 병원 병실에만 머물렀습니다. 화장실도 방안에 있었으니 움직일 필요도 없었구요. 돌이켜 보니, 어쩌면 그래서 제가 회복이 빨랐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지나고보면 너무나도 아쉬운 부분이 많습니다. 병원은 산모의 회복을 위해 더할나위 없이 좋은 환경을 제공했지만, 지나고 보면 아이와의 관계를 위해서라면 과연 그랬을까, 라는 질문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저는 병실에 있고 남편과 가족들이 면회실 창문을 통해 찍어온 아이 사진을 봤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역시나 제 아이임이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사진 속 아이는 엄청 울고 있었습니다. 눈도 뜨지 못했구요 당연히. 저는 갓난 아이는 "원래" 잘 우니까 그런가보다 했습니다.

12시간 뒤, 만나게 된 아이는, 양 미간에 주름 두개가 쫙 있었습니다. 그것도 깊이 패인채로요. 지나고 보니, 이 주름은 아이가 너무 많이 울어서 그런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듭니다.

제 행동에 아쉬움을 느낀 건 나중에 전문가의 말을 통해서였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는 극도의 공포와 긴장으로 목청을 높여서 엄마를 찾습니다. 뱃속에서 조용하고 어둡고 따스했던 상태로 편안하게 있었던 것과는 엄연히 환경이 달라졌을테니까요.


실제로 뱃속은 30LUX로 빛이 거의 없습니다. 말 그대로 동굴 속 같겠죠. 반면 형광등이 켜진 분만실이나 신생아실은 10만 LUX. 엄청난 밝기 차이죠. 또 나즈막한 엄마 아빠 소리를 뱃속에서 듣다가 바깥 세상은 처음 들어보는 소리가 가득찬 낯선 세상입니다.

© apsprudente, 출처 Unsplash


그 '낯선 세상'에 나온 아기는 당연히 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아이에게 엄마 손길이 느껴져야 하는데 기계적으로 젖병을 물리는 간호사의 손길이 간헐적으로만 느껴진다면요? 아마 실제로 저희 아기를 그랬을 것이구요. 뒤늦게 그런 생각에 미치니, 이제는 주변에 출산한다고 하는 후배들을 볼 때마다 아기가 태어났을 때 아이를 많이 안아주라고 얘기합니다. 저 역시 이를 미리 생각했다면, 휠체어를 타고 신생아실에 내려가 종종 아이를 안아줬을텐데 말이죠. 그 방법을 생각 못했습니다.

 
원하면 모자동실을 할 수 있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고 모자동실을 하겠다고 했지만, 제 방에 들어온 아기는 너무나도 많이 울었고, 아이도 너무 작아 무섭기도 하고 바로 신생아실에 내려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ㅠ
첫 엄마, 첫 아빠는 당연히 아무 것도 모르고, 아이는 우는 게 당연한데도 말이죠. 그 때 제가 왜 더 안아주지 않았을까, 왜 다시 내려보냈을까, 이런 아쉬움이 너무 많이 드는 거죠.


© wdongxv, 출처 Unsplash


이렇게 써놓고 보니, 제가 출산한 병원이 아기에게는 매정한 것처럼 묘사가 되네요. 하지만 산모 회복을 위해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병원이었습니다. 간호/간병 통합서비스를 실시하고 있어서 간호사가 산모의 모든 것을 도와줍니다. 남편이나 다른 가족의 도움 없이, 오로지 간호사 도움으로 침대에서 움직이고 화장실에 가고 등등. 또 12시간 동안 절대 안정을 취하라고 강조했던 지라, 저는 그  지시를 따랐고 회복도 비교적 빨랐었습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그 시간동안 아기 케어를 상대적으로 안했다보니(못했다보니) 회복에 도움이 된 것도 있기는 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출산 직후 산모 회복이냐 아이 케어냐, 라는 질문을 다시 해 봅니다.
그 답은 산모가 판단하기 나름인 것 같습니다. 정해진 답은 없지만, 아이를 위해서라면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안아주거나 여건이 되는 한 "자신감을 갖고"(첨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는 생각으로) 아이를 케어하는 것은 꼭 했으면 합니다. 

다만, 저처럼 12시간 동안 아이를 보지 않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아이가 신생아실에 혼자 남겨져서 간호사들의 손에만 맡겨져서 케어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물론 간호사들께서 잘 돌봐주시겠지만요, 뱃속에서 냄새가 익숙했던 우리 엄마가 안아주는 것과 늘상 신생아를 안아주는, 그래서 제 아이를 많은 신생아 중 하나로 여길 간호사가 안아주는 것과는 다르잖아요). 상황에 이끌리기보다는, 분만 후 12시간 동안 내가 무엇을 할지 미리 머릿 속으로 그려보면 도움이 많이 되겠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출산 병원에서도 출산 이후에도 산모가 해야할일, 하면좋은일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알려주는 일도 병행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엄마, 여성주의자, 신문기자
출근 전 스벅에서 일기를 씁니다
유별나지 않게, 유난하지 않게
아이를 기르고 싶습니다


일하는 엄마도 행복한 육아를!

일하는 엄마의 임신 출산 육아기는

매일 밤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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