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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루리 Mar 02. 2022

밤밤언덕(10)

14

“선생님, 괜찮은 거죠? 정말.”


엄마는 의사선생님에게 걱정스러운 말투로 아버지의 안위를 물었다.


“음, 3도 화상이라 붕대를 풀고 나면 얼굴에 화상 자국이 조금 남지 않을까 싶군요. 그렇지만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조금 더 지켜보긴 해야겠지만 미리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얼굴에 화상 자국이 남을 거라면서 걱정은 하지 말라니.. 의사선생님의 말씀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아버지의 사고 소식을 들은 엄마는 새벽부터 병원을 찾아 아버지 곁을 지켰다. 아침에서야 소식을 전해 들은 나 역시 걱정스러운 마음에 병원을 찾았지만 아버지는 붕대를 감고 있는 그 순간에도 괜찮다며 나를 안심시켰다. 할머니에게는 아직 아버지 사고를 말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불편하신 당신의 몸이 괜한 걱정 때문에 더 불편해지실까 봐 아버지가 나중에 기회 봐서 직접 얘기하겠다며 고집을 피우셨기 때문이다. 하긴, 나 또한 할머니에게 걱정을 끼쳐드리고 싶지는 않았다.


“상우야, 미안하다. 아버지가 또 이런 모습을 보여서. 근데 나는 괜찮아. 걱정하지 마.”


“네, 알겠어요.”


“환자분, 말씀하지 마세요.”


옆에 있던 간호사가 아버지를 나무랐다. 엄마는 입원 수속을 하러 접수창구로 향했다. 아버지 곁에는 좀 전까지만 해도 여러 명의 직장동료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아버지의 사고 소식을 영웅담 말하듯 얘기했다. 그중 반장이라 불린 어떤 아저씨는 연신 아버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내가 아저씨 때문에 목숨을 구했어요.”


아버지는 괜찮다는 듯 반장 아저씨에게 되려 고개를 숙였다.


“네가 상우구나. 너희 아버지 정말 대단한 분이셔. 나도 자주 찾아뵐 테니까 너도 너희 아버지 빨리 쾌차할 수 있게 옆에서 수발 잘 해야 한다.”


아버지가 회사에서 동료들의 신임이 두터운 모양이구나. 나는 적잖이 놀라고 말았다. 교도소에서 오랜 기간 복역한 신분이란 사실이 분명 아버지에게 엄청난 걸림돌이 될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버지는 그 누구보다 남들의 시선을 잘 헤쳐 나가고 계신 모양이다. 정작, 나의 마음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니.. 순간, 아버지에게 나는 남보다 못한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의 마음은 지금도 여전하지만 힘없이 누워 있는 아버지를 쳐다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오랜 시간 아버지에 대한 원망의 마음을 씻어 내려면 무엇보다 아버지가 건강해야만 한다. 나의 마음이 그랬다. 만약, 당신이 지금보다 더 나약한 모습을 보인다면 내 마음이 더 공허해질 것이다. 나는 아버지를 쳐다보며 말했다.


“빨리 나으세요.”


아버지는 순간 무언가 말을 하려고 움찔하셨으나 옆에 있는 간호사를 의식하고는 살며시 고개만 끄덕이셨다. 입원 수속을 마치신 엄마가 병실로 돌아오셨다.


“상우야, 아까 회사 반장님이란 분이 그러시던데 회사에서 산재처리를 해 주겠다고 하는구나. 다행이야. 병원비 어떡하나 걱정했었는데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어.”


엄마는 한시름 놓으셨다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아버지 침대 옆에 놓인 의자에 걸터 앉아 붕대 사이로 삐져나온 아버지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셨다. 엄마 또한 아버지가 많이 편해진 모양이다. 나만 빼고.


“상우는 어떡할래? 굳이 너까지 여기 있을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집에 가 있을래?”


나는 엄마와 아버지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6인실 병실이라 내가 마땅히 있을 자리도 보이지 않았다.

“네, 그럴게요. 엄마 피곤하시면 나 바로 불러요.”


“그래. 알았다.”


나는 병실 문을 나서며 다시 한번 아버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어서 들어가라며 손짓을 하셨다.


“몸조리 잘 하세요. 그리고.. 이제 다치지 마세요. 아버지.”


아버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나는 얼굴에 감겨 있는 붕대 사이로 아버지의 눈을 쳐다보았다. 아프지도 않으신 걸까? 아버지의 눈은 한없이 크게 웃고 있었다.     


시험은 내 예상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평소 내가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관련 서적을 들여다보았던 내용들이 주류를 이뤘다. 경시대회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나는 주저 없이 문제를 풀었다. 답안지를 감독 선생님께 넘긴 후 나는 뿌듯한 마음에 기지개를 켰다. 주변의 친구들이 짧은 탄식을 내뱉거나 고개를 젓는 것과는 달리 나의 마음은 이보다 더 가벼울 수가 없었다. 나는 옆반에서 시험을 마치고 힘없이 걸어 나오는 소희를 마중했다.


“소희야, 시험 잘 쳤어?”


나의 얼굴을 보고 반가워할 새도 없이 소희는 맥이 빠지는 듯 허탈한 표정으로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글쎄, 너무너무 어려운 것 있지? 교과서에서 배운 건 거의 나오지도 않고 어디서 보도 듣도 못했던 어려운 용어들만 나오잖아. 나 시험 치면서 이렇게 멘탈이 나가버린 건 처음인 것 같아. 상우, 넌 어땠어?”


소희는 내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뭐야? 표정을 보니까 잘 친 것 같은데.”


나는 살며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와~ 어쩜 그래? 상우 정말 똑똑하구나. 내 남자친구 대단하네.”


소희는 웃으며 나를 반겼지만 이내 말수가 줄어 버렸다. 내가 잘못한 건가? 아님 기분 탓인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소희와 함께 집으로 가는 동안에도 어색해진 온도차를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정작 자신은 시험을 망쳤다는데 내가 괜한 얘기를 한 건지도 모른다. 눈치도 없는 놈. 항상 모범생이었던 그녀가 시험을 치루며 처음으로 좌절을 맛보았기에 그저 본인에게 실망한 탓이라고만 여겼다. 단지 그뿐이라고. 알았어야 했는데.

은근히 경시대회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나의 바람은 며칠 후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나는 과학경시대회에 좋은 성적을 얻어 군에서 수여하는 상을 받게 되었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교실 안으로 들어오신 담임선생님은 들뜬 목소리로 나의 이름을 호명하였다.


“상우가 경시대회에서 1등을 했단다.”


“우와~ 상우 대단하다.”


나는 또 한 번 친구들의 환호성에 둘러싸였다. 지금은 소희도 다른 친구들과 함께 손뼉을 쳐 주고 있겠지? 그러나, 그날만큼은 나도 소희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볼 새가 없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한 공간 안에 있는 소희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다.     


지난 몇 달간 나의 일상은 무언가 바뀌어도 한참이나 바뀌었다.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다. 삶이란 흐르는 물과 같다고 했던가. 무언가에 열중하며 살다가 잠시 잠깐 멈춰서 뒤를 돌아 보면 어느새 우리는 한참이나 먼 길을 떠나와 있다. 나의 일상이 정말 그랬다. 그것도 상당히 긍정적인 방향으로. 물론 그 기간 동안 아버지가 병원 신세를 져야 했지만 그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나의 감정이 원망으로만 물들어 있는 게 아님을 깨달았으니 그 또한 작지 않은 수확일 것이다. 나는 소희에게 아버지의 입원 소식을 말하지 않았다. 애초에 서로의 가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으니 상관이 없었다. 소희 역시 마찬가지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소희의 일기장을 본 이래로 나는 내내 가슴속에 무언가가 걸려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아버지에 대해 원망의 마음을 가지는 것과는 별개이다. 어디까지나 나는 당사자이며 소희는 제3자의 입장이라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희는 항상 아버지에 대한 나의 마음을 응원해 주었다. 적잖은 위로가 되었다. 다른 친구들이 아무리 살인자 아들이니 어쩌니 떠들어도 소희만큼은 그들과 전혀 다르다는 사실이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소희니까. 그런데 아니었다니. 결국 소희도 아닌 척 내색하지 않았을 뿐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소희도 평범한 고등학생일 뿐인데. 여자친구라는 이유로 그녀에게 남다른 감정을 강요해서는 안 되는 일이지. 그래서 이해를 하려 했다. 정말 이해를 하려 했으나 아픔을 참아가며 웃음 짓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소희 일기장의 마지막 문장이 다시금 머릿속에 떠올라 가슴이 저려 왔다.


‘차라리 상우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으셨다면 좋았을 텐데.’     


아버지는 나흘간의 짧은 입원 기간만 거친 채 집으로 돌아오셨다. 근로복지공단에서는 아버지에게 한 달간의 요양 기간을 부여하였다. 그 기간 동안 출근을 할 필요는 없었지만 아버지는 일주일 만에 다시 회사에 출근하셨다. 천만다행히도 아버지의 상처는 그리 크지가 않았다. 물론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흉터 자국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지만 아버지는 영광스러운 훈장처럼 여기는 듯했다. 아버지를 대하는 동료 직원들의 태도도 확연히 바뀐 듯했다. 무엇보다 몇 개월 만에 범죄자라는 편견을 스스로 떨쳐 버리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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