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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이란 게 그렇다. 나쁜 일은 더 크게 부풀려져 억울한 마녀사냥으로 귀결되기도 하고, 좋은 일은 실제보다 더 큰 영웅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퇴원을 하고 회사로 돌아간 명훈은 그야말로 직원들 사이에서 영웅이 되어 있었다. 태석은 명훈이 알지도 못하는 예전의 과오를 실토하며 용서를 구했다. 명훈은 태석을 일으켜 세우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의 손을 맞잡았다. 태석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시선 역시 예전과는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병욱은 그 누구보다 명훈을 자랑스러워했다. 자신의 사람 보는 눈은 언제나 옳다며 큰 소리를 쳤다. 명훈이 회사로 복귀하던 날 병욱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크게 명훈의 이름을 부르며 와락 껴안았다.
“처음 볼 때부터 뭔가가 다르더라니까. 일하는 모습에 꾸밈이 없더라고. 보통 사람들은 사람이 볼 때 일부러 더 열심히 일하려고 하고 사람이 안 볼 때는 설렁설렁 농땡이도 부리고 하는데 박 씨는 전혀 달랐어. 사람이 없는 곳에서 더 열심히 일하더라고. 그때 내가 바로 알아본 거야. 봐, 내 눈이 틀림없지?”
어느덧 공장 안에서는 명훈의 예전 범죄 이력에 대해서도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그리고 무죄를 주장하며 항변했던 그 옛날 명훈의 항고심도 직원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나는 정말 저렇게 순하고 성실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니까.”
“정말이야. 어제는 본인 물량을 다 쳐내고, 내 거까지 나서서 도와주겠다고 하더라고. 아직, 몸도 불편할 텐데 말이야. 요즘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딨어?”
“10년 전에도 그랬다잖아. 그렇게 마을 사람들 일을 자기 일처럼 돌보고 다녔대요. 정말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게 아닐까?”
명훈 역시 그들의 목소리를 어렵지 않게 인지할 수 있었다. 참 고마웠다. 자신을 다른 눈으로 봐 준다는 게. 아니, 이제는 다른 근로자들과 똑같은 눈으로 자신을 대한다는 것이 참으로 기뻤다. 어느덧 회사 안에서는 명훈에게 씌여진 편견이라는 굴레가 싹 벗겨져 있었다. 명훈은 이제 식사시간에도 혼자가 아니었다. 언제나 그렇듯 병욱은 명훈의 앞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며 함께 기계 작업을 하는 같은 반 동료들까지 명훈의 주위를 에워쌌다. 명훈은 더 이상 외롭지가 않았다.
그럼에도 명훈은 회식자리만큼은 몇 번이고 극구 사양을 했다. 술을 마실 여지를 절대 두지 않으려 함이다. 어머니에게 아버지의 죽음을 상세히 들은 이후부터 그의 생각은 더더욱 확고해졌다. 술을 마시면 전혀 다른 유형의 사람으로 변해 버리는 뉴스 속 사건사고들을 마치 자신의 일인 양 대입하였다. 저들의 이야기가 바로 나의 것이다. 나는 결코 그 과오를 반복하지 않으리라.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병욱은 명훈을 못마땅히 여겼다. 술을 좋아하는 자신에게 비슷한 연배의 명훈이 둘도 없는 술친구가 될 것만 같은데 한 잔만, 딱 한 잔만 하자고 노래를 불러도 돌아오는 얘기는 한결같았다.
"죄송합니다. 술은 마시지 않겠습니다."
술은 마시지 않더라도 술자리에는 참석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주위의 핀잔에 병욱은 손사래를 쳤다.
“마시지도 않을 건데 뭐 하러. 됐어. 이쯤 했는데도 안 마시겠다면 어쩔 수 없는 게지.”
그래도 병욱은 명훈을 스스럼없이 친하게 대하였다. 아쉽긴 하지만, 자고로 술은 억지로 권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훈은 어슬렁어슬렁 식당 앞을 맴돌았다. 너무 일찍 온 게 아닐까? 시계를 쳐다보았다. 12시 5분. 약속시간에서 5분이 지났다. 이제 들어가도 되겠지? 몇 분이라도 늦게 들어가야 같잖은 자존심이 세워질 것 같았다. 공무원 시험 준비는 마음먹은 대로 잘되지 않았다. 어떻게든 공부를 해 볼까 했는데 역시나 책상에 앉아 있는 것은 내 적성에 맞지가 않았다. 정작 퇴직금은 가족들 빚을 갚는데 다 쓴 통에 책을 살 돈도 없다. 아니, 애초에 공부를 다시 할 것이란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말만 그렇게 한 것일 뿐. 할 줄 아는 거라곤 프레스 기계를 작동하는 것 밖에 없어서 다른 공장에 지원서를 제출해 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다음 기회에 함께 하자고. 젠장,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돼버린 거야? 그래도 남아 있는 건 자존심밖에 없어서 태석의 부름을 외면할까도 생각했지만 고기를 사주겠다는 그의 말에 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열흘 넘게 밥상에서 고기 구경은 해 보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어, 여기야 여기”
태석은 환하게 웃으며 지훈에게 손을 흔들었다. 지훈은 억지웃음을 지으며 태석이 앉아 있는 테이블 앞으로 다가갔다.
“어쩐 일이에요? 형이 고기를 다 산다고 하고.”
“응, 그냥 너 한번 보고 싶어서 부른 거지. 내가 밥 한번 산다고 했잖아.”
지훈은 못마땅한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왕 사 줄 거면 저녁에 술을 사주지. 왜 점심이에요? 낮술은 좀 그런데.”
“술 안 마시려고 일부러 점심을 사겠다고 한 거야.”
“그건 또 무슨 소리래.”
지글지글 삼겹살이 불판에서 익어 간다. 지훈은 벌써부터 군침이 도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지훈은 다 익지도 않은 고기까지 두 번, 세 번 빠르게 뒤집더니 누가 쫓아올세라 입안에 욱여넣었다.
“야, 체할라, 천천히 좀 먹어? 걸신이 들렸냐?”
“형도 수험생활해 봐요. 공부하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모르죠? 스트레스 풀 거는 먹는 거 밖에 없다니까.”
“짜식, 나 다 알고 있어.”
“뭘요?”
“너, 공부 안 하고 다른 공장 일자리 알아보러 다닌다는 거.”
지훈은 들고 있던 고기쌈을 식탁에 내려놓으며 빨개진 얼굴로 말했다.
“누.. 누가 그래요? 나 공부하고 있는데.”
“이 바닥 좁은 거 몰랐어?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처진대. 너 알게 모르게 소문이 쫙 퍼져서 일자리 구하기 쉽지 않잖아.”
“아이씨, 대체 누가 그런 소리 해요? 제가 안 하는 거예요. 난 사무직이 적성에 맞다니까.”
지훈은 큰 소리를 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식당 손님들이 일제히 그를 쳐다보자 태석은 무안한 듯 그를 달래며 다시 자리에 주저 앉혔다.
“그래그래, 알았어. 화내지 말고 먹어. 인마. 암말도 안 할게.”
씩씩대던 지훈은 다시 한번 크게 고기쌈을 싸서 우걱우걱 입안에 집어넣었다. 그의 볼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한참이나 입안에서 고기를 씹었지만 도저히 목구멍 안으로 넘어가지가 않았다. 이내 지훈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사나이답게 핑 도는 눈물을 훔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서럽게 목놓아 울었다. 점점 더 울음소리가 높아졌다. 어찌나 서럽게 울던지 주위 사람들이 힐끔힐끔 그를 쳐다보았다. 태석은 지훈의 옆으로 다가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에휴, 생각보다 여린 건 알고 있었지만 완전 얘구나. 얘야.”
그때였다. 식당 안으로 명훈이 들어왔다. 명훈의 모습을 확인한 태석은 꾸벅 절을 하고는 테이블 앞자리에 앉으라고 손짓을 했다. 명훈은 말없이 다가와 지훈의 앞자리에 앉았다. 한참을 울던 지훈은 눈앞에 앉아 있는 명훈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 헛기침을 하고 말았다.
“쿨럭.. 아.. 아저씨가 여기 왜 왔어요?”
“안녕하세요?”
명훈은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왜일까? 지훈은 명훈의 표정에서 전에 없던 평온함을 느꼈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