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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루리 Apr 07. 2022

밤밤언덕(14)

19

선거철이 다가오자 여야의 후보들 모두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유세 준비에 여념이 없다. 시간은 언제나 부족하기만 하다. 모든 게 마찬가지겠지만 항상 여유 있게 준비를 한다고 한들 지나고 보면 무언가가 늘 부족할 따름이다.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있는 인주군에서도 선거를 준비하는 공무원들의 발걸음이 점점 바빠지기 시작했다. 인주군 경찰서 상황도 예외는 아니다. 아침부터 선관위의 협조 공문을 받아든 동호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경찰서 안으로 들어갔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던 동호는 이내 큰소리로 누군가의 이름을 불렀다.


“장재이, 재이 어디 있어? 정민아, 장형사 오늘 안 나왔어?”


쭈뼛쭈뼛 눈치를 살피던 강력반 막내 김 형사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계장님, 그게, 장 형사님은 오늘부터 정직 기간이라서요.”


“뭐?”


잠시 멈칫하던 동호는 그제야 생각이 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그 자식 오늘부터 정직이지? 왜 하필 오늘부터야. 개똥도 약에 쓸려면 없다더니만. 꼭 필요할 때마다 이렇게 사고를 쳐요. 아니, 아니지. 오히려 잘 된 건지도 모르지. 혹시 장형사랑 연락되는 사람 없어? 내 전화는 도통 받지를 않아서 말이야."


사무실 안에 모여있는 사람들은 서로의 눈치만 살피다 고개를 저었다.


“아무도 없는 거야? 대체 팀원이란 사람들이 어떻게 된 거야? 아무리 정직이라지만 같은 팀 동료랑 항상 연락은 하고 지내야 할 거 아냐.”


“죄송합니다.”


그때였다. 취조실 안에서 우당탕탕 큰 소리가 들려왔다.


“뭐, 뭐야?”


형사 몇 명이 취조실에서 밖으로 뛰어나왔다.


“계장님. 여기 좀 와 보시겠습니까? 장 형사님이 여기 계시는데요.”


재이는 마침내 꿈에 그리던 그녀의 손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재이는 이내 그녀의 손을 놓쳐 버리고 말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집안으로 침입한 괴한이 그녀를 낚아채 버린 것이다. 재이는 괴한에게 권총을 겨누었다. 몇 번이나 그녀를 놓아 주라고 경고를 하였으나 괴한은 그의 말을 들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재이는 숫자를 세었다. 하나, 둘, 셋.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야. 아니면 발포한다. 재이는 괴한을 향해 경고사격을 하였다. 그러나 당연히 장전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공포탄 대신 총에서 발사된 탄환은 실탄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재이의 눈앞에서 쓰러져 버린 사람이 바로 자신이 사랑하는 그녀라는 사실이다. 재이의 머릿속에 낯설지 않은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러고는 짧은 비명과 함께 꿈에서 깨어났다.


“으악”


재이의 눈앞에 한심하다는 듯 자신을 내려다보는 동호가 서 있었다.


“괜찮아? 뭐, 안 좋은 꿈이라도 꾼 거야?”


“계장님? 계장님이 저희 집에 왜 와 있는 거예요?"


“정신 좀 차려 인마. 여기가 왜 너희 집이야?”


재이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그제야 자신이 경찰서 취조실 안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아, 그러면 그렇지.”

동호는 옆에 있던 의자를 바싹 당겨서 재이의 옆에 앉았다.


“어떻게 된 거야? 인마, 너 오늘부터 정직이잖아. 근데 왜 여기서 아침부터 이 꼴로 잠을 자고 있는 거냐고.”


“정직이요? 아, 그게 오늘부터였나?”


동호는 재이가 누워있는 자리 옆에 널브러져 있는 소주 병을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부터 여기 와 있던 거야? 여기가 어디라고 술을 마셔? 너 대체 어쩌려고 그러냐?”


“그럼, 혼자 사는 놈이 집에만 틀어박혀 있음 뭐 합니까? 나 집에 혼자 있기 싫어하는 거 계장님이 더 잘 아시잖아요. 그렇다고 내가 어디 다른 데 갈 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동호는 막냇동생 같은 재이가 안쓰럽게만 느껴졌다. 나이가 40줄에 접어든 재이는 승진을 했어도 벌써 했어야 할 나이지만 몇 번이나 때아닌 사고를 치는 바람에 여전히 임용 직후의 계급에 머물러 있었다. 재이는 동호가 건네는 물병을 받아 들고는 벌컥벌컥 물을 들이켰다.


“아, 이제 좀 살 것 같네.”


“정신 차렸으면 얼른 여기 정리하고 밖으로 나와.”


동호는 여전히 못마땅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일어나 취조실 문을 열었다.


“뭔데 그래요?”


두서없는 재이의 물음에 의아한 동호가 뒤를 돌아 보았다.


“응?”


“계장님, 어제부터 저한테 계속 전화했었잖아요. 뭐 급한 일이 생겨서 아침부터 저 찾은 거 아니에요?”


“너, 그럼 내 전화 알고도 안 받은 거야?”


“제가 근무시간 이외에는 전화 안 받는다고 했잖아요.”


재이는 벽에 걸려 있는 시계를 쳐다보았다.


“지금은 근무시간이니까 말씀하셔도 되겠네요. 뭔데 그래요?”


동호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어휴, 내가 너를 어떻게 말리겠냐? 너 한 달 동안 정직이잖아. 근무시간은 무슨.”


한동안 아무런 말이 없이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동호가 재차 헛기침을 했다.


“정직이라고 하니까 오히려 잘 됐다 싶네. 세수도 좀 하고 정신 차리거든 회의실로 좀 와 봐. 내 긴히 너한테 할 말이 있으니까.”


동호는 재이를 뒤에 남겨둔 채 취조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재이는 동호가 건넨 사진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사진 속에는 여고생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예쁘고 착해 보이는 인상이다.


“그러니까 저보고 이 학생을 찾으라는 이 말인 거죠?”


“그래. 맞아.”


“참, 계장님도 감 다 떨어지셨네. 딱 봐도 단순가출이구만. 실종된 날짜가 언제인데요?”


“13일”


“13일이면 지난 주 토요일이요? 이제 이틀밖에 안 됐잖아요.”


동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신고받고 수사하면 되는 거지. 이걸 왜 나한테 보여주는 거예요? 아시다시피 저는 정직 중이라서 공적인 업무를 할 수가 없는데.”


“그게 말이야. 이 건 실종신고가 접수된 게 아냐. 비공식적으로 이 학생을 좀 찾아야겠어.”


“계장님, 지금 무슨 소릴 하시는 겁니까? 우리가 어디 흥신소 직원들도 아니고. 잠자코 기다리라고 해요. 언제 그랬냐는 듯 며칠 안 돼서 집에 돌아올 테니까.”


어이가 없다는 듯 항변하는 재이의 입을 동호가 틀어막았다.


“재이 너, 이 학생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지?”


“아버지가 누군데요?”


동호는 한껏 무게를 잡고는 입을 열었다.


“한지용”


동호는 경찰서 입구 맞은편에 붙어 있는 선거벽보를 가리켰다.


“한지용? 그게 누군데요? 설마, 한지용 군수 말이에요?”


“그래, 맞아. 이제 좀 감이 오냐? 네가 비밀리에 그 애를 좀 찾아야겠다.”


20

산들바람이 나의 머리를 쓸고 지나갔다. 햇빛은 환하게 운동장을 내리쬐었다. 학교 주변 곳곳에도 꽃샘추위를 이겨낸 예쁜 꽃들이 조금씩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운동장을 내려다보니 친구들이 한데 모여 마음껏 봄의 기운을 만끽하고 있다. 축구공을 차고 있던 몇몇 친구가 스탠드에 앉아 있는 내 이름을 부르며 손짓을 하였지만 나는 쓴웃음만 지어 보였다. 며칠이나 시간이 지났지만 나의 마음은 여전히 공허하기만 했다. 소희의 손을 놓아버린 그날 밤, 나는 내가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후에 들은 바에 의하면, 마을 입구에 쓰러져 있는 나를 종수가 부축해서 집에 데리고 왔다고 한다. 큰 병이 난 것은 아니라고 했지만 나는 집에서 꼬박  하루를 잠이 들어 버렸다.


다음 날, 나는 소희의 손을 놓쳐 버린 밤밤언덕을 다시 찾았다. 소희의 안위가 걱정이 되어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 날밤의 기억을 다시 한번 더 떠올렸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소희의 흔적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밤새 억수같이 내린 비의 여파로 사람이 오가는 마을 언덕길 곳곳마다 보수작업이 한참이나 진행되었지만 소희의 행적을 찾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소희의 핸드폰은 며칠째 전원이 꺼져 있었다. 하릴없이 또다시 소희의 집을 찾았지만 굳게 닫힌 대문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대답이 없었다. 벌써 이사를 가버린 것일까? 그날 밤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일까? 나는 몇 번이고 등하굣길에서 소희의 집 앞을 서성거렸다.


어제는 엄마에게 학교에 다녀오겠다는 거짓말을 하고 시외로 나가는 버스를 탔다. 소희가 전학을 가기로 한 학교를 수소문하여 정문 앞에서 하루 종일 그녀를 기다리기 위함이었다. 나와 연락을 끊은 채 그곳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희와 함께 하지 못해도 상관이 없다. 다른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나를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쳐 버려도 상관이 없다. 그저 먼발치에서라도 그녀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하교하는 학생들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소희의 모습은 발견할 수가 없었다. 애써 먼 길을 다녀온 보람이 전혀 없었다. 나는 터덜터덜 힘없이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있었던 소희의 사고는 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1년을 함께 생활한 친구가 사라져 버렸는데 학교생활은 언제나 그렇듯 이렇게도 평온하게 흘러갈 수가 있는 것일까? 마치 그들은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날 밤의 기억 때문에 나는 며칠이나 악몽을 꿔야만 했다. 한참이나 소희의 뒤를 쫓아가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뿌리치는 그녀의 손을 놓아버려야만 했던 그날의 기억이 너무도 생생하다.

며칠이 지나도 나의 마음은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했다. 늦었지만 다음날 바로 경찰서에 찾아가 신고를 했어야만 한다. 그랬다면 혼자서는 감당하지 못할 커다란 짐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었을는지 모른다. 그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위안을 얻고 싶다. 어떻게든 답을 찾고 싶다. 지금이라도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아냐, 그랬다가 오히려 더 큰일을 만들게 될지도 몰라.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바람에 나는 제대로 된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똑똑, 노크를 하고 방문을 열자, 담임선생님이 나를 보며 환하게 웃으셨다.


“어서 들어오너라, 상우야. 거기 앉아.”


나는 조심스레 선생님이 앉아 있는 테이블 맞은편에 앉았다. 교내 상담실에서 담임선생님을 만나 뵙게 될 것이라곤 전혀 생각지 않았다. 그건 선생님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난, 요즘 상우 표정이 참 밝아져서 아무런 걱정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상담 신청을 했길래 엄청 놀랐단다. 그래, 우리 상우가 무슨 고민이 있는 걸까?”


나는 한참이나 입을 열까 말까 망설였다. 아직까지도 내가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선생님은 말없이 앉아만 있는 나를 채근하지 않으셨다. 그러고는 조용히 내 앞에 따뜻한 녹차를 건네주셨다.


“상우야, 말하기 곤란한 얘기라면 지금 당장 하지 않아도 된단다. 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고민이 된다면 좀 더 신중하게 생각을 하고 말해도 돼. 그런데 말이야. 선생님 경험상 말 못 할 고민이 있을 때 그걸 들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큰 도움이 되더라고. 지금 내가 상우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는데 말이야."


나를 위로해 주는 선생님의 말씀이 오늘따라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나는 마침내 선생님께 그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로 마음먹었다.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었던 그 이야기를..

한참 동안 내 얘기를 듣고만 있던 선생님은 처음에는 적잖이 당황한 듯 보였다. 그러나 이내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내 손을 잡았다.


“우리 상우가 마음고생이 심했겠구나. 상우랑 소희가 그런 관계였는지도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말이야. 왜 얘기를 안 했니? 그랬다면 더 좋았을 텐데. 나도 상우 같은 시기가 있었으니까 잘 알고 있단다. 어른들은 그 감정을 무시하고 어린 시절의 열병쯤으로 취급해 버리고 마는데 그게 너희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거든.”


선생님의 말씀은 언제나 그랬듯 포근하게 나를 달래 주었다. 그러나 그런 얘기도 좋지만 나는 무언가 해답을 찾고 싶었다. 지금부터 내가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인지 일러 주길 바랐다. 한참 뜸을 들이던 선생님은 그제야 내가 원하는 답을 말씀해 주셨다.


“그런데, 상우야. 네가 지금 걱정하는 그 생각은 전혀 할 필요가 없단다. 소희는 건강하게 잘 있을 테니까. 만약 그날 밤에 소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라면 아직까지도 소희 집에서 아무런 말 없이 가만히 있었겠니? 벌써 소희를 찾기 위해 경찰에 신고를 하거나 병원에 데려갔을 텐데 말이야. 학교에서는 그런 소식을 전혀 전해 들은 바가 없거든.”


나는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선생님 말씀대로 소희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소희 아버지가 넋 놓고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말 못 할 무슨 사정이 있는 걸까? 이전처럼 소희는 나에게 연락을 하기 힘든 상황에 빠져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버지와 또 다른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게 아닐까. 다른 곳으로 전학을 가기 싫다는 소희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리고 상우야,”


나는 선생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선생님은 짐짓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여셨다.


“상우가 지금 나에게 말한 이 이야기는 우리끼리만 알고 있는 걸로 하자. 응?”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나 소희가 다쳤거나 안 좋은 일이 생겼어도 그날 있었던 일은 그냥 말하지 않는 게 좋겠구나. 괜히 너한테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거든. 물론 소희가 먼저 이야기를 꺼낸다면야 어쩔 수 없겠지만 그전에 네가 나서서 말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구나. 아니,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어. 혹시나 하는 노파심에서 하는 얘기니까. 그럴 수 있겠지?”


지금의 나는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아무것도 판단을 할 수가 없다. 나는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누군가에게 속에 있는 이야기를 털어놓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소희가 정말 아무렇지 않게 건강히 잘 지냈으면 좋겠다. 더 이상 그녀의 남자친구가 아니더라도, 다시는 소희를 만나지 못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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