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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루리 Jul 19. 2022

밤밤언덕(15)

21

재이는 인주고등학교 교문 앞을 몇 시간째 지키고 서 있었다.


“학교 측에서 절대 알게 해서는 안 돼. 알겠지?”


동호의 단호한 말투가 다시금 귓가에 아른거린다. 실종 신고를 한 학부모를 만나서도 안 된다. 학교의 도움도, 경찰의 도움도 바래서는 안 된다. 그럼 대체 어떻게 수사를 하란 말인가? 재이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건가? 전에 없던 회의감이 온몸을 감쌌다. 그러나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일단은 부딪혀 보자. 애초에 모르면 상관이 없겠지만 한지용 군수의 딸이 실종되었다는 소식에 어찌 마음이 동요하지 않겠는가? 2년여 전 재이가 지구대에서 근무할 당시 처음 만났던 지용의 얼굴이 불현듯 머릿속에 떠올랐다. 지용은 군에서 몇 년간 대대적으로 준비한 국화축제를 핑계로 경찰의 탐문수사를 가로막았다.


“도대체 며칠째 지원을 나가야 하는 겁니까? 황민석건은 제가 수사하던 거잖습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수사를 중단하라니 대체 그게 무슨 말씀이나구요? 그놈들이 어떤 인간들인지 몰라서 하시는 얘깁니까? 지금도 무언가 작당모의를 하고 있을 거라고요. 그런데 지금 인력을 철수하라는 말이 가당키나 한 겁니까?”


“위에서 그렇게 하라는 걸 나더러 어쩌란 말이야. 우리 군에서 처음으로 대외적인 행사를 유치한다는데 협조를 하라잖아.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각계 유명 인사들도 다녀갈 텐데 지금 네 꼴을 좀 보라고. 그럴 거면 강력반으로 가지 왜 지구대로 왔어? 그 꼴로 대체 무슨 지원을 나가겠다는 거야? 우리 군 이미지가 어떻게 되겠냐고?”


재이는 오랜 강력반생활을 뒤로하고 지구대 근무를 자원했다. 아내의 바람이었다. 그 또한 고되기는 마찬가지일 테지만 하루하루 남편의 안위를 걱정하는 아내의 근심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고 싶었다.


“팀장님,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십니까? 그놈의 박람회가 군민들의 안전보다 더 중요하답니까?”


재이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 길로 곧장 지용을 만나기 위해 군청을 찾았다. 몇 날 며칠이고 지용과의 면담을 요청했지만 군수라는 자리는 말단 지구대 경관이 쉽게 독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재이 역시 그리 호락호락한 성격이 아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지용의 집 앞을 지키고 섰던 재이는 며칠 만에 드디어 그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군수님.”


지용은 의아한 듯 한참 동안 재이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네, 안녕하세요? 그런데 누구시죠?”


“불쑥 이렇게 찾아뵙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저는 인주군 지구대에서 근무하는 장재이 경사라고 합니다.”

지용은 옆자리를 지키고 섰던 경호원을 한발 물리며 말했다.


“아, 그래요? 우리 군 경찰분이시군요. 수고가 많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로..”


“그게 말입니다.”


재이는 황인석 일당에 대한 지명수배를 지금이라도 다시 강행해야 한다 항변하였다. 황민석은 지금 이렇게 놓쳐서는 안 될 인물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그들 일당이 또 다른 범죄를 모의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말이다.


“음, 장재이 경사라고 했나요? 무슨 말인지는 잘 알겠습니다만 지금으로선 저도 어쩔 방도가 없습니다. 당장 내일부터 군내에 대외 귀빈이 여러 명 찾아올 텐데 안 그래도 인력이 부족한 우리 군에서 경찰 인력이 빠져서는 안 될 일이지요.”


“그렇다면 타 지역에 인력 요청을 해서라도..”


지용은 손을 들어 재이의 입을 막았다.


“문제는 그게 아닙니다. 손님들을 모신 자리에서 지명수배라니.. 보기가 안 좋다는 말이에요.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어요? 무슨 일이든 경중을 따져야 하는 것이죠. 수사를 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지 않습니까? 나중으로 미루자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군에서 제일 중요한 일이 무엇입니까. 범인 한 명을 잡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무엇인지 장경사님도 아실 것 아닙니까?”


오랫동안 지용을 기다린 보람이 전혀 없었다. 적어도 재이가 느끼기에 우리 군의 군수는 군민의 안전보다 대외적인 행사의 성공적인 개최 여부가 더 중요한 듯했다.


낮에는 대민지원에, 주차단속에 여념이 없었지만 밤에는 자신의 몸이 힘들지라도 재이는 독자적인 수사를 강행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 재이는 드디어 민석이 은신해 있는 장소를 찾았다. 오랜 기간 발품 팔이를 한 끝에 그의 아내를 꼬드겨 낼 수 있었다. 재이는 민석의 아내에게 거짓말을 했다. 만약, 그가 은둔해 있는 장소를 알려 준다면 정상참작을 해 주겠노라 말이다. 여전히 강력반에서 근무하던 시절의 못된 습성을 버리지 못한 탓이다. 만삭이었던 민석의 아내는 재이의 말에 순순히 응할 수밖에 없었다.


재이는 한참을 달렸다. 앞서 달려가는 민석의 뒷모습이 조금씩 시야에 가까워졌다. 이쯤 되면 이제 정신력의 싸움이다. 재이는 가까스로 민석의 뒤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드디어 민석의 손에 수갑을 채워 그를 차에 태웠건만 어디서 나타났는지 알 수 없는 갑작스러운 차량의 돌진 때문에 재이는 재차 그의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재이의 시야에서 민석의 모습이 아른거릴 때쯤 자신의 의식 또한 조금씩 흐려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를 어째. 죽은 거 아냐?’


모여드는 군중들 사이를 비집고 나온 민석은 그 길로 자취를 감춰 버렸다. 마지막 순간 재이는 민석의 귓속말을 어렵사리 들을 수 있었다.


“장 형사님. 내 아내가 어떻게든 무사하길 바라야 할 겁니다. 그러지 않으면 이 낯짝을 또 보게 될 테니까요.”

손안에 거의 들어왔었는데 재이는 어쩔 수 없이 눈앞에 마주했던 범인을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이후, 민석에 대한 수사권은 인근 경찰서 강력반으로 넘어가 버렸다. 재이가 그를 다시 마주했던 것은 그로부터 약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재이가 오랜 입원치료를 마치고 퇴원을 하던 날이었다.


“알겠어. 알겠으니까. 그녀를 그만 놓아줘.”


“당신 때문에 다 이렇게 됐어. 다 당신 때문이야. 내가 그랬잖아. 내 아내는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고.”


“그래, 무슨 말인지 알아. 그래서 내가 최선의 방법을 찾아보자고 했잖아. 그 칼 내려놓고 얘기하자. 지금이라도 다 바로잡을 수 있어.”


“내 처자식이 떠나버렸는데 이제 와서 다 무슨 소용이야. 안 그래? 내가 이제 어떻게 살아갈 수가 있겠어. 난 원래가 이런 놈인데.”


실랑이가 계속되는 와중에 재이는 자신의 뒤 호주머니에 꽂혀 있는 권총을 발견했다. 경고사격을 해서 어떻게든 그를 그녀에게서 떼어놓아야만 한다. 재이는 민석을 향해 권총을 겨누었다.


“마지막이야. 이제 그만 내 아내를 놓아 줘. 어서!!”


찰나의 순간, 재이는 민석에게서 이상야릇한 웃음을 보았다. 일전에 본 적 없는 참 기분 나쁜 웃음이다.  

   

한참을 사색에 잠겨 있던 재이는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괜히 실종수사를 하겠다고 말한 탓에 잊고자 했던 옛 기억이 다시 떠올라 버렸다. 재이는 팔 소매를 내려 쓱 눈물을 훔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계를 들여다보니 5시가 다 되었다. 이제 학생들이 나올 시간이다. 아니, 벌써 나오고 있구나. 저 멀리서 교문을 향해 삼삼오오 걸어오는 학생들의 모습이 하나둘 재이의 눈에 들어왔다. 재이는 자신의 틈 사이를 스쳐 지나가는 학생들 중 한 무리를 무심코 불러 세웠다.


“애들아, 잠시만.”


“네? 왜요?”


“너희들 혹시 한소희라고 알고 있니?”


“네?”


학생들은 경계하는 눈빛으로 재이를 노려 보았다. 하긴, 자신의 차림새가 그리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재이는 아직 수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을 설정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무턱대고 학교를 찾은 것이 긁어 부스럼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22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전혀 아닐 것만 같은 나의 일상도 어느덧 조금씩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불과 몇 주일 만에. 사람의 마음이란 이토록 간사하기만 하다. 어른들의 말처럼 정말 치기 어린 불장난에 불과했던 것일까. 한동안은 아무렇지도 않게 수업을 듣고 밥을 먹고 친구들과 농구를 하는 나 자신이 참 싫었지만 나는 어느새 그 생활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상우야, 이번 주말에 3반이랑 농구시합이 잡혔어.”


“좋지.”


생각이 많을 때는 운동만큼 좋은 것이 없다. 공 하나에 울고 공 하나에 웃는다. 상대팀의 집중 마크를 피해 손에서 공을 넣을 때면 묘한 쾌감에 사로잡힌다. 종수는 언제나 내 마음을 가장 먼저 알아주는 고마운 친구다. 때로는 내가 걱정하고 있는 게 무엇인지 나보다 더 잘 아는 것만 같다. 어느덧 나의 하굣길 옆자리는 소희 대신 종수가 대체하고 있었다. 아니, 종수뿐만 아니라 지현이, 민주, 태성이, 찬열이까지 나는 반 친구들 무리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소희가 없지만 나는 더 이상 외롭지 않다.

딩동댕. 종소리가 울리고 담임선생님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다들, 한 주 동안 고생 많았어. 주말 잘들 보내고 다음 주에 건강하게 만나자.”


듣기 싫었던 선생님의 말씀도 금요일이 되면 상냥하게만 들린다. 내일은 또 무엇을 할지 고민을 한다. 누구는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하고 누구는 어떤 영화를 볼지, 어떤 음악을 들을지 고민을 한다. 지난 몇 달간 그런 친구들의 고민이 내 것에 비하면 참 하찮게 느껴졌는데 나 역시 오늘만큼은 어떤 운동화를 신고 농구를 할지 그 생각만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 있었다.     


무슨 일이지? 오늘따라 하굣길이 어수선하게만 느껴진다. 기분 탓인가? 저 멀리 정문 근처에서 친구들이 한데 모여 누군가를 둘러싸고 있다.


“아저씨, 소희를 왜 찾는 건데요? 정말 소희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거예요?"


학교 정문이 가까워질수록 친구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기분 탓이 아니었다. 소희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었으니까.


“지현아,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종수의 물음에 지현이 뒤돌아 보았다.


“응, 그게 말이야?"


친구들 틈바구니에서 4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한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후줄근한 옷에 제대로 씻지도 않은 듯 초췌한 모습이다. 그런데 그의 눈만큼은 또렷하게 빛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누구일까?


“마침 잘 됐다. 여기 상우한테 물어보세요. 소희랑 제일 친했으니까. 그치? 상우야.”


지현이 말하는 남자와 다시 눈이 맞았다. 묘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소희에 대해 묻는다고? 


“아저씨 누구세요? 혹시 소희 소식을 알고 계신 거예요?"


남자는 한참 동안 말이 없다. 이내 그 빛나는 눈동자로 관찰하듯 우리들을 쭉 둘러본다.


“사실 난 소희 먼 친척인데 이 근방에 들렀다가 소희 얼굴이나 보러 가려고 들른 거야. 전학을 갔다는 소식은 미쳐 듣지 못했구나.”


"친척이라고요? 그럼 소희 소식을 알 수 있는 거네요?”


“상우라고 했지? 미안하구나. 이렇게 다들 소희와 연락이 끊어졌을 거라고는 미쳐 알지 못했어.”


"그렇지만 친척이라면 소희 소식을 알 수 있는 거잖아요. 저한테 알려 주세요. 소희가 어디에 있는지, 잘 지내고 있는지요?”


참고 있던 소희에 대한 궁금증이 봇물처럼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란 게 이런 걸까? 나는 애원하듯 아저씨에게 달려들었다.


“혹시, 소희 소식을 알게 되면 저한테 꼭 좀 알려 주세요. 네? 부탁이에요.”


“난 급한 일이 있어서 그만 가 봐야겠구나.”


남자는 당황스럽다는 듯 황급히 길 옆에 주차되어 있는 차에 올라 탔다. 그토록 듣고 싶었던 소희 소식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나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어 달리는 차를 붙잡기 위해 한참을 달렸다.


“저기, 아저씨. 아저씨. 잠시만 멈춰 봐요.”


그러나 나의 목소리를 전혀 듣지 못한 것인지 차는 쌩하니 대로변으로 자취를 감춰 버렸다. 내 등 뒤로 종수가 달려왔다. 종수는 말없이 나를 감싸 안고는 어깨를 두드렸다. 나는 멍하니 서서 차가 떠난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지난 몇 주간 잊고 있었던 소희에 대한 기억이 일순간에 되살아났다. 잊고 살 것이라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나의 엄청난 착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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