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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루리 Aug 08. 2022

밤밤언덕(16)

23

“여기가 한지용 군수 집이라고요?"


재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생각보다 훨씬 작은 집이다. 군수가 살고 있는 집이라고 하면 막연하게 엄청난 크기를 자랑할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TV드라마에서나 보던 높은 담장의 저택 말이다.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일 거라 생각했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재이가 살던 본가 집보다도 더 평범하지 않은가.


“네, 안녕하세요? 사모님. 저 김동호입니다.”


“네, 어서 오세요.”


인터폰에서는 힘없는 중년 여성의 음성이 들려왔다. 문이 열리자 재이는 대문을 열고 성큼성큼 집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동호가 급히 재이의 팔을 붙잡았다.


“너, 나랑 약속한 거 잊지 않았지? 진짜 쓸데없는 소리 하면 안 돼.”


“알겠어요.”


재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집안은 밖에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고풍스러운 벽지와 갖가지 소품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전체적인 집안 분위기와 따로 노는 기분이다. 재이는 한참이나 거실 곳곳을 돌아다녔다. 


“재이야, 그만 돌아다니고 여기 와서 좀 앉아 있어.”


동호의 핀잔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아무리 나라의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다지만 대체 어떤 사람들이길래 딸자식이 실종되었는데 신고조차 하지 않는단 말인가. 종종 집안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통해서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성격인지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재이는 이 집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 순간 언뜻 보아도 고상해 보이는 중년 여성이 방 안에서 나왔다. 아름답다는 표현이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 없었다. 재이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켜 버렸다.


“안녕하세요? 형사님. 소희 엄마 김미진이라고 합니다.”


한지용 군수의 집을 방문한 이래 느꼈던 이질적인 분위기가 극에 달했다. 재이가 가장 어색하다 느낀 것은 애써 감추려 한 듯 하나 그 누구보다 핏기 없는 미진의 얼굴이었다.    

 

“남편은 소희에게 욕심이 많았어요.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동문을 얻기 위해서는 도시에 있는 명문 고등학교로 전학을 가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애초에 도시에 있는 학교로 진학을 하길 바랐지만 그때만 해도 군수직 초선의 입장에서 여러모로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느라 소희를 마을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시킬 수밖에 없었어요. 그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전학을 시킬 예정이었지만요. 정말 죄송하게 되었어요. 반장님께 이런 개인적인 일로 결례를 범하게 되다니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그렇지만 꼭 우리 소희 좀 찾아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미진은 정중하지만 애절한 목소리로 부탁하며 고개를 숙였다.


“아니, 아닙니다. 소희 학생이 무사히 돌아온다면 저희로서도 더 이상 바랄 게 없죠. 어떻게든 저희가 힘을 합쳐서 꼭 찾아내도록 하겠습니다.”


동호는 무심결에 재이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잠자코 있던 재이가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


“어머님은 단순히 전학에 대한 반발심 때문에 소희 양이 가출을 하신 거라 생각하시나요?”


미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정식으로 실종 신고를 하지 않으신 거죠? 역시 남편분의 선거 때문인가요?”


“네, 맞아요. 아시겠지만 남편에게는 지금이 정말 중요한 시기라서요. 남편은 이번 선거에 사활을 걸고 있답니다. 물심양면으로 당신의 선거를 돕고 있는 분들의 기대를 저버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고심 끝에 소희를 찾는 것을 선거 이후로 미루기로 했습니다.”


재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그런데 전 그게 도통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선거가 중요하다곤 하지만 딸아이의 안위가 걸린 문젠데 이렇게 손놓고 있을 수가 있는 건가요? 단순히 전학을 가기 싫어서 연락을 끊고 이렇게 오랜 기간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도 저로서는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아.. 그게.”


미진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마침내 결심이 선 듯 입을 열었다.


“사실 소희가 실종되기 몇 주 전부터 남편과 소희 사이에 다툼이 있었어요.”


“다툼이요? 무엇 때문이죠?”


“그건 좀..”


미진은 난처하다는 듯 동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동호가 재이를 제지하며 입을 열었다.


“하하, 이거 죄송합니다. 곤란한 일이라면 말씀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나 재이는 동호의 손을 재차 뿌리쳤다.


“아뇨, 말씀을 해 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소희 학생을 빨리 찾을 수 있습니다. 소희 어머님이 알고 계신 상황은 하나도 빠짐없이 저희에게 다 말씀해 주셔야 저희도 대책을 강구할 수 있으니까요.”


한참을 망설이던 미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힘겹게 입을 열었다.


“사실은 소희에게 남자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그 애를 탐탁지 않아 했어요.”


미진은 소희와 상우와의 관계, 그리고 소희 아버지가 상우와의 만남을 만류한 사실을 빠짐없이 이야기했다. 재이는 한참을 듣고만 있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걸로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제가 오늘 여기 오기 전에 소희 학생의 학교에 들렀다 왔습니다. 그러지 않았어야 했는데.. 아무튼 소희 학생의 친구들을 만나고 왔는데 그 누구도 소식을 모르고 있더군요. 과연 그게 가능한 일일까요? 게다가 제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말씀하신 박상우 군은 불량한 학생도 아니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모범생이더군요. 사춘기 학생이 좋아하는 누군가가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인데 왜 극구 둘 사이를 갈라 놓으려 한 것이죠? 그럴만한 이유가 있나요?”


체념한 듯 한숨을 크게 내쉰 미진은 탁자 위에 놓인 태블릿PC를 펼쳐 재이와 동호에게 건네었다. PC 화면에는 10여 년 전 온 마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살인사건에 대한 기사와 함께 명훈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그리고 사건 담당 검사란에 한지용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24

며칠 전 소희의 소식을 묻던 남자의 정체가 형사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창수 덕분이었다.


“재이야, 어제 본 그 아저씨 말이야. 창수가 그러는데 경찰이래.”


“뭐? 경찰?”


“응, 창수가 몇 년 전에 사고 쳐서 지구대에 잡혀 간 적 있었잖아. 분명 그때 봤던 경찰이라고 그랬어.”


나는 그 길로 창수를 찾아갔다. 창수는 처음에는 긴가민가했지만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말투를 떠올리고는 분명 지구대 경찰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이름이 뭐랬더라? 특이한 이름이었는데. 장재이라고 했던가. 그런데 왜 경찰이 소희의 행방을 묻고 다닌 걸까? 정말 소희의 신변에 이상이라도 생긴 걸까? 이상한 기분이었다. 직감적으로 소희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것만 같았다. 소희의 손을 놓쳤던 그 날밤의 기억이 다시금 떠올랐다. 이대로는 안 된다. 무슨 소식이라도 듣고 싶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경찰 지구대 앞에 와 있었다. 그런데 막상 문을 열고 들어가서 어떤 질문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고민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결론은 한 가지밖에 없다. 직접 부딪혀 보는 수밖에 없어. 나는 조심스레 인주 경찰서 지구대 문을 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한참을 두리번 거렸지만 아무도 나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한 듯했다. 지구대 앞을 지날 때마다 느낀 것이지만 경찰 아저씨들은 그 누구보다 바쁘게 움직이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입구 앞에 서 있던 내 모습이 마침내 눈에 띄었는지 가장 가까이 앉아 있는 경찰 아저씨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시죠?”


“안녕하세요? 저기.. 장재이라는 분을 뵈러 왔는데요. 혹시 여기 계신가요?”


“장재이경사님? 장경사님은 지금 여기 안 계신데. 근데 무슨 일이니?”


경사? 정말 경찰이 맞았구나.


“아, 그게요.”


그 순간 팀장이라 불리는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는 옆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재이를 찾는다고? 학생, 무슨 일 때문에 장형사를 찾는 거야?”


“장재이, 그러니까 장 형사님한테 물어 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묻고 싶은 거? 그게 뭔데? 무슨 고민거리라도 있어? 학생, 우리도 경찰이야. 우리한테 말해도 돼.”


나는 일전에 담임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나 소희가 다쳤거나 안 좋은 일이 생겼어도 그날 있었던 일은 그냥 말하지 않는 게 좋겠구나. 괜히 너한테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거든. 그럴 수 있겠지?”


확인도 되지 않은 소희의 사고 소식을 괜히 경찰에게 말할 필요는 없어. 굳이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희의 행방을 찾고 있는 장재이 형사와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죄송한데 장 형사님과 직접 만나 뵙고 이야기하겠습니다.”


처음에 나에게 말을 걸었던 젊은 경찰이 불쑥 일어나 말했다.


“용건이 무엇인지 말도 하지 않고 무턱대고 장 형사님을 찾아달라고 하면 어쩌자는 거야. 최소한 무슨 용건인지는 말을 해야지 알지.”


나는 팀장이라 불리는 아저씨와 눈이 맞았다. 아리송하다는 듯 한참 동안 내 눈을 쳐다보던 아저씨는 내가 믿을만한 사람이라 판단했는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장경사는 지금 여기 없어. 작년에 인주군 경찰서로 자리를 옮겼거든.”


“그렇군요. 실례했습니다. 그럼 제가 경찰서로 직접 찾아가 볼게요.”


“학생, 근데 말이야. 지금 경찰서로 찾아가더라도 재이를 만나지는 못할 거야. 김순경, 재이한테 전화해 봐.”


“네? 그치만 팀장님.”


“괜히 그렇게 깐깐하게 굴 필요가 뭐 있어. 무슨 사연이 있는가 본데 연락해서 만나게 해 줘.”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알 수가 없다. 빨리 장 형사님을 만나서 소희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듣고 싶었기에 나는 매시간이 초조하기만 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그는 이미 알고 있을지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소희의 행방을 찾아다닐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나는 한참 동안 유리창 밖을 쳐다보았다. 이윽고 들뜬 표정으로 카페 문을 여는 누군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며칠 전 학교 앞에서 보았던 바로 그 남자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장 형사님을 향해 손을 들었다. 장 형사님은 엷은 미소를 띠며 내 곁으로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아, 네가 상우구나. 박상우. 반갑다. 나는 장재이라고 해. 이미 알고 있겠지만.”


“네, 안녕하세요?”


자리에 앉은 후,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나였다.


“저.. 제가 어떻게 불러야 될까요? 장 형사님이라고 부르면 되나요?”


“그래.. 뭐, 좋을 대로 해.”


장 형사님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었다.


“장 형사님, 혹시 소희 소식에 대해 알고 계신 게 있으신가요?”


장 형사님은 나의 질문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여유 있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미안하구나. 소희 소식이 궁금한 모양인데 나도 잘 알지 못한단다. 너도 짐작은 하고 있었겠지만.. 실은 소희가 지금 실종 상태라서 내가 찾고 있었거든.”


“네? 소희가 실종됐다고요? 정말이에요? 그럼 소희 지금 집에 없는 거예요?"


이럴 수가. 설마 했는데 소희가 실종되었다니. 그렇다면 그날 밤의 사고로 집에 돌아가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어떻게든 집에 돌아가 나 같은 건 잊고 건강하게 잘 살고 있을 거라 자위했었는데 그게 아니라니. 말 그대로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어째 장 형사님의 표정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좀 전과는 달리 얼굴에 당황한 빛이 역력했다. 장 형사님은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정말이니? 정말 모르고 있었던 거야? 난 네가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네? 제가 알고 있을 거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한참이나 말이 없던 장 형사님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아니다. 그 말은 그냥 잊어버려. 그럼, 내가 묻고 싶은 걸 질문해도 괜찮겠니?”


짐짓 무거운 분위기로 나를 쳐다보는 장 형사님의 표정이 순간 무섭게 느껴졌다. 


“네.”


“상우, 네가 소희 남자친구였다는 데 사실이니?”


반 친구들도 모르는 사실인데 장 형사님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여자친구가 갑자기 사라져 버려서 정말 걱정이 많겠구나.”


소파에 기대앉아있던 장 형사님은 이내 자세를 고쳐 앉고는 내 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기분 탓인가. 장 형사님의 눈빛이 갑자기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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