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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루리 Sep 10. 2022

밤밤언덕(18)

26

소희의 실종 소식은 순식간에 마을 전체로 퍼졌다. 경찰의 공개수사가 진행된 이후 마을 사람들의 궁금증 역시 점점 더 커져만 갔다. 대체 왜 소희가 사라졌을까? 이 한적하고 조용한 마을에서 왜 또다시 이런 사건이 벌어진 것일까? 어쩔 수 없는 일부 사람들의 편견은 엄한 아버지에게로 시선이 향했다. 그러나 몇 개월간 아버지의 심성을 직접 보고 경험한 직장동료들이 발 벗고 나서 아버지를 옹호해 준 덕분에 논란을 쉽사리 잠재울 수 있었다. 반대로 소희 아버지가 지자체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이후 매스컴의 관심은 한시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순식간에 소희의 실종은 전국적으로 모든 이의 이목이 쏠린 중대 사건이 되어 버렸다. 난 더더욱 괴로웠다. 나 때문이다. 나 때문에 소희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것이다. 그동안 소희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을 거란 믿음 하나로 견딜 수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고 하니 삶이 무너져 버리는 것만 같았다. 나를 반겼던 모든 사람들에게 내 치부가 낱낱이 드러나 버릴 것 같았다. 또다시 마음속의 갈등이 요동쳤다. 그 날밤 있었던 소희의 사고 소식을 경찰에 알려야 할까?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뒤바뀌었다.


마을에서도 학교에서도 개별적으로 소희를 찾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다. 어느덧 소희를 찾는 것은 우리 마을의 최대 관심사가 되어 버렸다. 나 역시 그들과 함께 소희를 찾아 나섰다. 내가 미쳐 찾아보지 못한 언덕 곳곳을 친구들과 함께 돌아다녔다. 이상한 감정이 머릿속에 공존했다. 어떻게든 소희를 찾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만약 소희의 시체가 발견되면 난 어떻게 되는 걸까.. 하는 걱정에 한숨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의 이런 걱정과는 상관없이 소희의 행방은 그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과 마을 주민들이 두 발 벗고 나서서 소희를 찾으려 사방팔방 뛰어다녔지만 헛수고였다. 마을 사람들의 시선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소희 부모님은 열성을 다해 소희를 찾아 나섰다. 지난 몇 달간 선거운동을 하느라 소희에게 소홀했던 것이 마음에 걸린 탓인지 당장의 일도 제쳐두고 늘 현장에서 경찰들을 따라다녔다. 당연하게도 소희 아버지는 군의 중요한 직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다. 때로는 흠집 내기에 여념이 없는 정치적 논리가 소희 아버지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소희 아버지는 급기야 군수직을 사퇴하기에 이르렀다.


“안녕하십니까? 인주군 군수 한지용입니다. 제 개인사로 인해 저는 오늘부로 인주군 군수의 직을 사퇴하고자 합니다. 누구보다 사랑하는 딸아이를 찾지 못한 상태에서 군의 중요한 책무를 수행하기에는 무리가 따를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저를 믿고 선택해 주신 모든 군민 여러분들께 머리 숙여 사죄드립니다.”     


“상우야, 너 괜찮아?”


“상우야. 힘내.”


“소희는 다시 돌아올 거야. 상우야.”


나와 소희의 관계를 알게 된 반 친구들은 위로의 말을 건넨답시고 하루가 멀다 하고 나를 찾아왔다. 내 마음은 알지도 못한 채.. 나는 더 이상 가만히 듣고만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고함을 질렀다.


“나 좀 그만 내버려 둬. 알겠어? 너네들이 대체 뭘 안다고 떠드는 거야. 사람 좀 그만 괴롭히라고!!"


날씨도 나의 마음을 아는 듯 아침부터 맑았다 흐렸다 오락가락한 날씨가 계속되었다. 어느새 내 주변에는 친구들의 발길이 뚝 끊겨 버렸다. 잠시 동안이나마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자 생각한 모양이다. 아니, 어쩌면 어수선한 나의 마음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일는지 모른다. 하루 종일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오후 내내 맑았던 하늘은 어느덧 비구름에 뒤덮여 있었다. 수업 시간을 마치고 한참의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멍하니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할 뿐이었다. 날이 조금씩 어둑어둑해질 즈음 어디서 나타났는지 종수가 내게로 다가와 옆자리에 앉았다.


“상우야, 나랑 얘기 좀 하자.”


나는 힘없이 종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무슨 얘기?”


“정신 좀 차려 인마, 너 대체 요즘 뭐 하는 거야? 마치 세상 다 산 사람처럼 왜 그러는 거냐고?”


요 며칠 새 갈 길을 잃고 방황하는 내가 못마땅했는지 종수가 점점 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막말로 소희가 없으면 세상이 끝나기라도 하는 거야. 이쯤 했으면 할 만큼 한 거잖아. 사내자식이 이렇게 나약해서 대체 어쩌자는 거야?”


차라리 소희에게 버림받은 것뿐이라면 이렇게까지 마음이 아프지는 않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 나 때문에, 내 잘못으로 소희가 죽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이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날 밤 있었던 일을 종수에게조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날의 기억을 입 밖에 내는 순간 정말 내가 소희를 죽게 만든 죄인이라 스스로 낙인찍는 것 같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그런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았다. 정말.


비 오는 거리를 종수와 함께 걸었다. 종수는 끊임없이 나를 향해 소리쳤다. 그러나 종수의 외침은 더 이상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급기야 종수는 나를 잡아끌고는 내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종수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왔지만 서로가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는 비 오는 길바닥에 쓰러진 채로 한참을 누워 있었다. 종수 역시 내 옆에 가만히 따라 누웠다. 잠시나마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내리는 비가 어떻게든 내 마음을 씻겨 주었으면 좋겠다. 소희의 기억까지 함께.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세찬 비를 내리던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하게 개어 있었다.


“그만 가자. 상우야.”


종수의 음성이 다시 또렷하게 들렸다. 종수가 먼저 일어나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날밤의 일을 종수에게 말할 수는 없지만 마음속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는 존재가 내 옆에 있어야만 했다. 난 그렇게 나약한 존재니까. 그러기 위해선 내가 먼저 종수에게 원하는 답을 주어야만 한다. 나는 종수의 손을 맞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해. 종수야. 힘들겠지만 네 말대로 나 이겨내 볼게.”


가만히 나를 쳐다보던 종수의 얼굴이 이내 밝아졌다.


“정말이야?”


"응. 나도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수는 없으니까. 고마워. 종수야."


언제나 그랬듯 종수가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아까 때린 거 미안해. 네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내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나 봐."


"괜찮아. 아프지도 않았는걸."


나와 종수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씩 웃었다.     


마을 어귀가 가까워지자 멀리서 사람들이 한데 모여 있는 듯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다. 나와 종수는 고개를 갸웃하며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저기.. 상우 너네 집 아냐?”


가까이 다가갈수록 사람들이 우리 집 앞에 모여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무슨 일이지? 집 앞에 다다르자 마을 사람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며 뭔가 쉬쉬하는 듯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리고 인기척을 들은 낯선 사람들이 집 밖으로 나와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중 한 명이 나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박상우 학생인가요?”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들의 정체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경찰입니다. 박상우 씨, 당신을 한소희 씨 살해 용의자로 체포합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당신이 한 발언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으며.”


옆에 있던 경찰들이 일제히 내 팔을 붙잡았다. 나도 적잖이 놀라긴 하였지만 나보다 훨씬 더 놀란 사람은 종수였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상우가 살해 용의자라니.. 말도 안 돼?”


잔뜩 화를 내며 경찰에게 달려든 종수는 바로 그들에게 제지를 당했다.


“괜찮아. 종수야.”


나는 종수를 향해 억지웃음을 지었다. 그 짧은 순간 어쩌면 잘 된 건지도 모른다는 안도감이 생겼다.    

 

27

정직이 끝나는 첫 출근 날, 상우의 체포 소식을 들은 재이는 황급히 동호에게로 달려갔다.


“계장님, 이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 박상우를 체포하다니요?”


동호는 슬쩍 재이의 얼굴을 쳐다보고는 기다렸다는 듯 책상 위에 있는 서류를 재이에게 내밀었다. 상우와 소희의 통화기록이다.


“너 이미 알고 있었지?”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모르는 척하지 마. 한소희 양이 실종되기 하루 전날 박상우랑 같이 있었다는 거 너도 알고 있었잖아. 알고 있었으면서 왜 보고를 안 해?”


“아뇨. 둘이 통화를 했었단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만났는지 어땠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건 지금부터 조사를 해 보려 했는데 무턱대고 이렇게 잡아들이면 어쩌자는 겁니까? 그것도 살해 용의자라니.”


“그 날밤 박상우와 한소희가 산으로 올라가는 걸 본 목격자가 있어. 지금 그 일대를 수색하고 있으니까 곧 시신이 나올 거야.”


재이는 말문이 막혔다. 목격자가 있었다고? 물론 의심은 하고 있었지만 확신은 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상우를 처음 만나던 날 소희의 행방을 궁금해하던 상우의 표정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 누구보다 소희를 걱정하는 진심이 어려 있었다. 지난 십수 년간 짧지 않은 경찰직을 수행하면서 재이는 스스로 남에게 뒤처지지 않는 직감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아무리 숨기려 해도 사람의 진심이란 드러나기 마련이다. 상우는 고작 17세에 불과한 어린 나이가 아니던가. 재이는 지금도 소희의 이름을 부르던 상우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았다.


“그럼, 시신을 찾고 난 후에 체포하더라도 늦지 않잖아요. 왜 이렇게 신중하지 못하십니까? 안 그래도 언론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는데 그러다가 만약 시신이 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장소를 알았는데 시신이 왜 안 나와? 그럼 그 밤에 한소희가 어디로 사라졌겠어? 박상우가 거짓말을 한 건 사실이잖아. 너도 그때 들어서 알고 있지? 박명훈과 한지용 군수와의 관계 말이야."


“그게 살해 동기라도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동호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답지 않게 왜 그래? 요즘 10대들이 얼마나 영악한지 몰라서 하는 소리야?”


“그럼, 한소희 어머니가 받은 메세지는요?”


“그것도 뻔하잖아. 박상우가 소희 양 핸드폰을 어딘가에 감추고 있다가 주기적으로 메세지를 보냈겠지. 이렇게 뻔한 사건을 고민하고 말고 할 시간이 어딨어?”     


예상대로 사건은 모든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역방송국뿐만 아니라 공중파 방송사에서도 연일 톱뉴스로 사건을 보도해 호사가들의 가십을 넘어 일반 대중의 입에도 오르내렸다. 게다가 논란을 더욱 부추기는 인터넷의 개인 방송들은 이 사건을 10여 년 전 아버지의 복수를 꿈꾸는 아들의 치밀한 계획범죄로 몰아갔다. 불과 며칠 사이에 상우는 전 국민이 다 아는 지독한 범죄의 피의자 신분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경찰의 대대적인 수사에도 불과하고 소희의 시신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재이의 말대로 좀 더 신중했어야 하는데 무턱대고 상우를 잡아들인 동호는 가슴이 타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계장님, 시신을 못 찾았습니다. 산 전체를 이틀째 고박 뒤졌어요. 이제 1시간밖에 안 남았는데 어떡하죠?”


“이틀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1시간 후면 상우를 풀어주어야 한다. 소희 양의 부모님이 곧 자신을 찾아올 텐데 증거가 없어 상우를 풀어줬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동호는 자신에게 쏟아질 비난의 화살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이제 동호에게는 한 가지 방법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자백이다. 어떻게 해서든 상우의 자백을 받아내야만 한다. 동호는 상우가 앉아 있는 취조실 안으로 들어가 의자를 걷어찼다.


“빨리 말해. 네가 죽인 거 다 알아. 응? 너 맞잖아.”


상우는 고개를 푹 숙인 채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저 때문입니다. 제가 소희를 보호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이 새끼가.. 지금 그런 소리 듣자는 게 아니잖아. 한소희 어디에 묻었어? 묻은 장소를 말하라고!!”


상우는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말입니다. 제가 말씀드린 게 전부에요. 그 날밤 소희의 손을 놓쳐 버린 건 사실입니다. 그래서 한참을 찾았지만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 소희가 어떻게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걸 지금 나보고 믿으라는 말이야?”


동호는 다시 한번 더 크게 소리치며 탁자를 내리쳤다. 그때였다. 형사 한 명이 다급하게 취조실 안으로 들어와 동호에게 귓속말을 했다. 동호는 깜짝 놀라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게 무슨 말이야? 누가 자수를 했다고?”


강력반 사무실 한구석에 누군가가 무기력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와 마주 앉아 있던 재이는 고개를 들어 동호를 쳐다보았다. 재이의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상우의 아버지 박명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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