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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루리 Aug 31. 2022

밤밤언덕(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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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이는 한참 동안 소희의 인스타그램을 들여다보았다. 요즘 또래의 학생들과 별반 다르지가 않다. SNS를 통해 남들의 시선을 독차지하기 위해 극성인 일부 학생들만큼 열성적이지는 않지만 소희 역시 소소한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물론 확실히 남다른 점이 하나 있긴 하다. 그 누구보다 학구열에 불타 있다는 사실이다. 하루하루 SNS에 써 내려간 소희의 일기에는 일상의 기록들만큼이나 학업에 대한 관심들이 묻어 있었다. 역시 부잣집 따님이 뭔가 달라고 다르구만. 

한참 동안 소희의 SNS를 들여다보고 있으니 지난 가을 이후로 게시물의 수가 눈에 띄게 늘어났음을 알 수 있었다. 이전보다 훨씬 더 활기찬 일상이다. 무엇 때문일까? 분명 적잖은 심경의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전에는 보기 힘들었던 아름다운 풍경과 예쁜 그림들이 줄을 이었다. 지역에서 유명하다는 각종 맛집과 데이트 명소 또한 눈에 띄었다. 남들처럼 인물사진이 많지는 않았지만 분명 직접 찍은 사진을 올린 것이다. 아마 이쯤이겠구나. 소희가 상우랑 연애를 시작하게 된 시점이. 


재이는 오후에 경찰서 후배에게서 받아온 상우의 신상정보 명세를 책상 위에 꺼내 놓고는 조심스레 페이지를 넘겼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와 함께 사는 평범한 학생이다. 아버지가 마을에서 유명한 범죄자였다는 사실을 제외하곤 별다른 특징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박명훈, 박명훈의 아들이라.. 재이 역시 10년 전의 사건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경찰이 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마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이니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사실, 경찰들 사이에서는 명훈이 사건의 진범이 아닐 것이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떠돌았다. 치밀한 계획범죄라고 하기엔 너무나 손쉽게 경찰에 붙잡혔기 때문이다. 술에 취해서 범죄를 저질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범행 수법은 참 정교했다. 피해자에게 남은 상흔이 도저히 술에 취한 이가 행한 범죄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정황증거를 제외한 모든 물적 증거는 박명훈이 범인임을 가리키고 있었다. 역시 검찰에서도 정황증거보다는 눈에 드러난 물적 증거를 신뢰했다. 재이는 10여 년 전 TV 뉴스 화면에서 보았던 어린 시절 상우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성숙치 못한 당시의 매스컴은 상우 가족들을 전혀 보호해 주지 못했다. 그래서 오랜 기간 기억에 남아 있었다. 며칠 전 상우를 만났을 때 상우가 낯설지 않게 느껴졌던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래. 한지용 군수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당신의 성품상 상우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겠지. 소희가 상우와 한 공간에 있는 것조차 감당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자신이 직접 기소한 피의자의 아들이 아니던가. 상우 역시 어리긴 하지만 분명 기억에 남아 있을 것이다. 아버지가 범죄자로 낙인찍히는 광경을 마주하는 아들의 심정은 과연 어떨까? 오랜 기간 아버지에 대한 원망의 마음을 간직하고 살았을까? 아니, 어쩌면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아버지를 뺏어간 이들에 대한 미움이 커졌을지도 모른다.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재이의 머릿속에 계속해서 최악의 가능성이 떠올랐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 말도 안 돼. 떨쳐 버리려 해도 그게 쉽지가 않다.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야. 재이는 직감적으로 상우를 의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머릿속에 떠오른 이 최악의 수가 실현 가능하려면 상우의 반응이 그래서는 안 된다. 분명 알고 있어야 하는데 왜 그런 반응을 보인 걸까? 연기를 하는 것일까? 아니, 아니지. 오히려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재이는 한참을 앉아있던 책상에서 일어나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찬물을 한가득 컵에 따라 벌컥벌컥 들이켰다. 지금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내가 너무 한 가지 생각에 깊게 빠져들어버린 건지도 몰라. 정신 차리자. 재이의 머릿속엔 어떻게든 스스로의 추리를 확인해 보고 싶은 욕망이 가득 차 있었다.


다음 날, 재이는 전 소속 근무처에서 함께 일했던 석진을 찾았다. 석진은 몇 번이나 투털대며 마지못해 재이에게 파일을 건넸다.


“아, 정말 안 되는 건데 해드리는 거예요. 요즘 보고 안 하고 핸드폰 추적하면 큰일 난다니까요.”


“나도 알아. 그래서 너한테 부탁하는 거 아냐. 내가 널 한 두해 본 것도 아닌데.”


석진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니까, 이게 3월 첫째 주 박상우 통화기록이란 말이지.”


“네, 이건 한소희 통화기록이고요. 근데 장 형사님 대체 무슨 사건인데 그래요? 듣자 하니 형사님, 요즘 정직이라고 하던데 이래도 되는 거예요?"


“넌 알 것 없어. 그냥 관심 끄는 게 피차 좋을 거야. 아무튼 고맙다.”


“이렇게 도와드리는 건 정말 이번이 마지막이에요. 저도 지금 윗 분들 눈치 때문에 저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요.”


"그래, 알았어."


재이는 카페 한구석에 앉아 석진이 건넨 통화기록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렇지. 시간이 딱 맞아떨어지네. 이날 한소희가 마지막으로 통화한 사람이 박상우였어.”


재이는 며칠 전 상우를 만났을 때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분명히 상우는 2월 이후로 소희랑 통화를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말을 했다. 재이는 그게 미심쩍었다. 왜 그런 뻔한 거짓말을 했을까? 바로 들통나 버릴 텐데. 그날 밤, 마을에는 비가 억수같이 내렸다. 소희가 실종된 날이 이튿날이었으니 처음에는 비 때문에 사고를 당한 것이 아닐까 의심하였지만 지금은 생각이 전혀 달랐다. 상우에게로 향한 재이의 의심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그날 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박상우가 뭔가를 숨기고 있어. 재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혼잣말을 되뇌었다. 이윽고 재이의 머릿속에 또 다른 궁금증이 하나 생겨났다. 만약, 재이가 추리하는 바가 틀림이 없다면 소희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2022년 지자체 선거 인주 군수 당선자는 기호 1번 한지용 후보입니다.”


TV 화면에 한지용 후보의 당선을 확정하는 문구가 드러나자 지용의 사무실에 모여 있던 당원과 지지자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축하합니다. 군수님”


“역시, 우리 군수님이십니다. 축하드립니다.”


여기저기서 축포가 터지고 지용의 당선을 축하하는 메시지가 물밀 듯이 쏟아졌다. 지용은 그들의 인사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자신을 찾아준 지지자들마다 한 명도 빠지지 않고 악수를 건넸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 유독 한 사람만은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미진은 아침부터 내내 지용의 곁을 지키고 있었지만 좀처럼 기쁜 내색을 할 수 없었다. 선거운동을 함께 한 당원들이 미진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네어도 내내 감춰둔 슬픈 표정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다. 물론 미진 역시 지난 몇 달간 이날의 승리를 기대하고 있었던 건 사실이다. 남편이 얼마나 고생하며 일궈낸 결과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마음껏 축하해 줄 수 없는 현실이 아프기만 하다. 그나마 이제부터라도 사랑하는 딸아이를 찾아 나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섞인 바램 때문에 근근이 자리를 지키고 서 있을 수 있었다. 그때, 당사 사무실 입구 쪽에서 우당탕탕 적잖은 소음이 들려왔다. 무언가 소동이 일어난 모양이다. 지용은 이 기쁜 날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의아해하며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보았다. 


“이 봐, 대체 무슨 일이야?”


이윽고 소란의 주인공인 재이가 지용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재이는 자신을 제지하는 경호원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성큼성큼 지용이 서 있는 단상 근처로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군수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누구시죠? 우리당 당원이신가요?”


지용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재이가 내미는 손을 맞잡았다.


“아닙니다. 저는 인주군 경찰서 장재이경사라고 합니다. 일전에 몇 번 뵌 적이 있었는데 기억을 못 하시는군요. 하긴, 너무 오래된 일이라.”


“경찰이라. 수고가 많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죠?”


“죄송합니다. 축하를 받으셔야 할 자리에서 제가 너무 큰 실례를 범했네요. 외람되지만 따님의 실종 건에 대해서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뵈었습니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이 되어서요.”


당황한 듯 할 말을 잊어버린 지용은 이내 고개를 돌려 미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미진은 남편의 시선을 애써 외면하며 고개를 숙였다.     


재이는 당사 휴게실에서 미진과 나란히 앉아있는 지용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죄송합니다. 오늘이 아니라면 도저히 군수님을 만나 뵐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군수님. 한소희 양의 안위가 걱정되신다면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해서는 안 됩니다.”


“네, 무슨 용건인지 대충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아내가 딸자식 걱정에 괜한 짓을 했나 봅니다. 소희는 곧 다시 돌아올 테니까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전 제 자식을 그렇게 키웠습니다. 하나를 가르치면 둘을 알고 본인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아이였죠. 살면서 처음으로 하는 반항입니다. 이만하면 깨달은 바가 있을 것입니다. 이제 저에게도 한숨 돌릴 시간이 주어졌으니 슬슬 소희와의 시간을 가져 보려고 합니다.”


재이와 지용은 팽팽하게 기싸움을 하는 듯 서로의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소희를 찾으려고 수사를 하셨다고 하니 묻겠습니다. 그래서 지금 소희는 어디에 있습니까?”


지용의 얘기를 듣고 한동안 말이 없던 재이는 짐짓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군수님, 아니, 소희 부모님, 지금부터 제가 하는 얘기를 잘 들어 주십시오. 이런 말씀을 드리게 되어 정말 죄송하지만..”


재이는 다시 한번 지용과 미진의 얼굴을 천천히 번갈아 쳐다보며 헛기침을 하였다.


“아시겠지만 한소희 양이 자취를 감춘 게 정확하게 3월 13일입니다. 저는 이미 그날 소희 양이 유명을 달리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힘드시겠지만 지금이라도 소희 양의 시신을 찾고 싶으시다면..”


그 순간 지용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성난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요? 우리 소희가 죽다니?”


“지난 3월 13일 이후로 소희 양이 사용하는 모든 전자기기의 기록이 끊어졌습니다. 아무리 가출을 했다곤 하지만 이렇게 생활반응이 없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자.. 잠시만요. 소희의 기록이 끊어졌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지용은 재이의 말을 끊고는 험상궂은 얼굴로 미진을 쳐다보며 다그쳤다.


“당신, 나에게는 소희와 연락을 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소?”


미진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지용이 놀란 만큼 재이 또한 당황한 기색을 감출 길이 없었다.


“네? 소희 어머님,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시죠? 소희 학생과 연락을 취하셨습니까?”


안색이 흐려진 미진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입을 열었다.


“저기, 형사님. 좀 전에 소희가 3월 13일에 나쁜 일을 당했을 거라고 말씀하셨죠?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럼, 이건 어떻게 된 건가요? 여기 이걸 보세요.”


미진은 재이에게 자신의 핸드폰 화면을 보여 주었다. 소희가 미진에게 보낸 메세지였다. 


“엄마, 미안해요. 나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요. 곧 돌아갈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마지막 메세지가 전송된 날짜는.. 불과 열흘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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