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ㄱㄸㄸ Apr 26. 2024

무엇이 아이를 위한 최선일까? 제왕절개 vs. 자연분만


사람이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생각이 다르다 했던가. 난 결혼 전과 결혼 후, 임신 전과 임신 후의 생각이 정말  많이 바뀐 사람 중 하나다.


출산방법에 있어서는 더욱 그랬다.


20대 초반, 나와 6살 터울의 언니가 젊은 나이에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게 되면서 나는 언니의 결혼생활과 임신과정을 모두 함께했다. 자연분만까지의 과정도 모두 함께 했기에 나는 나중에 아기를 낳게 되면 꼭 제왕절개를 하리라 마음먹었었다. 누군가 눈앞에서 진통을 겪으며 소리 지르는 모습을 보았다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임신을 하고 나니 자연분만에 욕심이 생겼다.


첫 번째 이유는 자연분만이 아이에게 좋다는 것이었다. 아이의 지능에도 정서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데 기왕에 태어나는 아이를 위해 한번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꼈다.


두 번째 이유는 임신, 출산과 관련된 많은 부분은 유전이라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엄마와 언니가 수월하게 자연분만을 했으니 나도 당연히 그리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나의 언니는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자기가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아느냐며 펄쩍 뛰지만, 그녀는 분만 시작 후 1시간도 안되어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이런 나의 다짐에도 불구하고 산부인과 내진이 있던 날 나의 주치의 선생님은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셨다. 나는 키는 크지만 속골반은 그리 크지 않고, 아이는 머리가 커서 힘들 것 같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도 다 하는 자연분만, 내가 못할게 뭐 있냐며 자연분만을 하겠노라 공언했다. 선생님도 의지가 있으니 한번 해보자고 하셨다.




예정일 일주일 전이었다.

낮에 남편이랑 함께 공원도 산책하고 맛있는 저녁도 먹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밤에 갑자기 피가 비쳤다. 진통처럼 배도 주기적으로 조여 오는 느낌을 받았다.


너무 무서워서 병원에 전화를 했고, 병원으로 오라는 간호사선생님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싸둔 출산가방까지 챙겨서 병원으로 향했다(출산가방은 미리 싸놓는 게 좋다고 해서 엑셀시트까지 만들며 리스트를 정리해 한 달 전부터 가방을 완성해 두었다). 씩씩한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계속 머릿속에서 엄마가 예전에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런 말이 있어. 애를 낳으러 갈 때 신발을 벗어놓고 들어가면서 과연 내가 다시 나와 저 신발을 다시 신을 수 있을까 생각이 든다는. 아기를 낳는 게 그렇게 아프다.”


경험해보지 못한 고통에 대한 공포가 나를 감싸 안았다.


병원에 도착했다. 간단한 내진 후에 자궁문이 열렸으니 기다려보자 했고, 진통이 왔다 갔다 하며 나를 들었다 놨다 했다. 무통주사를 맞고 잠깐 웃으며 남편에게 너스레를 떨었던 것 같다. 그 후로 간호사선생님께 자연분만을 꼭 하고 싶으니 도와달라 말씀드리고 14시간의 진통을 겪으며 분만 시도를 했다. 잠깐씩 기절을 했던 건지 쇼크를 받았던 건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뚜렷이 기억나는 부분은 주치의선생님께서 이제 아기의 심박수도 올라가서 안 되겠으니 응급제왕을 하자고 하신 순간부터다. 자연분만을 하겠노라 그렇게 이를 악물고 힘을 주던 노력이 무색하게 온몸에 힘이 빠지며 나도 더 이상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되도록 빠르게 수술을 해달라 요청했다. 남편이 눈물을 글썽이며 수술에 동의했다(고생한 나에게 자기가 평생 잘하겠노라 약속했는데, 그 약속이 지켜지고 있는지는 논외로 하겠다).


차가운 수술대에 누워 바들바들 떨다가 어느 순간 잠이 들었고,  깨어나니 절대로 잠들지 말라는 간호사선생님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큰 목소리로 울었나요?”


마취에서 깨자마자 내가 처음 말한 말이었다.

아마도 제일 걱정되었던 부분이었던 것 같다.


“네. 공주님이 우렁차게 울었어요. “


그 말에 그렇게 눈물이 났다. 입원실로 들어오니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나를 간호조무사님들께서 들었다 놨다 하시며 보살펴주셨다(내가 아기를 낳았을 때는 코로나가 피크를 치던 때라 남편도 금방 나가야 했다).


드디어 내 딸이 태어났다.


나이가 많아 출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딸이 건강하게 태어나 우렁차게 울어주었다.


그걸로 모든 것이 되었다.





아이를 위한 최선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아이를 위한 최선은 바로 그것이 무엇이든 엄마가 선택한 방법이다. 모든 엄마는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최선의 선택을 한다.


엄마들은 10개월 가까이 또는 그 기간이 넘도록 아이를 품고, 먹고 싶은 것도 참고, 온갖 욕구를 절제하며 지낸다. 아이가 건강하게만 태어났으면 하는 바람에 작은 일에도 노심초사하며 10개월을 지낸다. 그렇게 운동을 안 하던 사람도 아기를 위해서라면 이 악물고 운동도 한다. 물론 분만 후 자기를 위한 운동은 다시 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러므로 어떤 방법이든 엄마가 선택한 방법은 그 엄마의 아이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출산의 방법이 달랐다 하여 누가 누구보다 더 자기 자식을 사랑하고 아낀다고 할 수 없다.


자연분만을 하면 짧게 고생을 한다 하지만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진통을 노심초사 기다려야 하며, 진통이 시작되고 난 후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뿐이겠는가. 출산 후 봉합한 상처부위를 잘 관리해주지 않으면 또 엄청난 고통을 겪고, 항문과 관련된 다양한 질환이 동반될 수 있으니 짧은 고통이라고 할 수 없다.


제왕절개는 그럼 편안할까? 14시간 진통을 하고 응급제왕을 한 나 같은 경우는 제외하고(난 항문질환까지 얻었으니 정말 억울한 경우이다), 제왕절개를 선택한 많은 경우는 진통이라는 극심한 고통은 겪지 않는다. 하지만 훗배앓이 역시 가벼운 고통은 아니며, 짧게는 3개월 이상 내 배지만 내 배 같지 않은 느낌을 안고 상처를 관리해주어야 한다. 또 만약 켈로이드 피부라면 비가 오는 날이면 간지러워지는 상처 부위를 꾹꾹 누르며 내가 제왕절개 했었다는 사실을 평생 상기시켜야 한다.


자연분만을 안 해봤으면 말을 말아라, 훗배앓이를 안 겪어봤으면 말을 말아라, 엄마들끼리 누구의 고통이 더 컸는지 비교하지 말자. 엄마들은 여자들만이 할 수 있는 숭고한 경험을 한 것이며, 우리는 모두 엄청난 절제와 인내를 통해 아기를 낳았다. 우리는 세상에 생명체를 탄생시켰다. 우리를 통해 사회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며 박수쳐주자. 우리 엄마들 모두는 박수받아 마땅한 대단한 존재들이다.

이전 02화 흔하지만 쉽지 않은 경험, 유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