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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ㄱㄸㄸ Apr 19. 2024

흔하지만 쉽지 않은 경험, 유산

일상다반사? 청천벽력!

난 지금의 딸을 낳기 전에 두 번의 유산을 경험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 번의 유산과 한 번의 자궁 외 임신이었다.


처음 임신이 된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을 때였다. 크리스마스 선물 같이 아기가 찾아와 주어서 나도 남편도 너무 기뻤다. 가족들에게는 아직 알리지 말자는 남편의 만류를 뿌리치고 가족들, 주변 친구들 모두에게 이야기를 했다.

그때가 37살? 아마 그 정도.


 나이가 많았지만 철이 없었다.


 아기가 유산되었다.

 나에게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새벽에 왈칵 쏟아지는 무언가를 느꼈고, 병원에 갔을 때는 이미 아기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행이라고 했다. 하지만 남아있을 수 있는 잔여물 제거를 위해 수술 날짜를 잡자고 했다.


 다행은 뭐가 다행이라는 건지, 잔여물이라는 표현은 또 무슨 말인지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단어와 문장들이 모두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니며 하나도 흡수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하지도 못해 꺽꺽 소리를 내며 울고 있는데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회사. 내가 울고 있는 걸 알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는 듯 급히 처리해야 할 일들을 쏟아내는 수화기 안의 사람이 야속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유산 사실을 알리는 것이 가장 고역이었다. 말로 내뱉을 때마다 병원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유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거의 같은 반응이었다.


“괜찮아, 나도 경험했었어.”

“괜찮아, 많이 경험하는 일이래.”

“네 잘못이 아니야. 그냥 털어버려. “


그런가 보다 했다. 다들 많이 경험하는 거니 괜찮아야 하는 건가 보다 했다.


하지만 전혀 괜찮지 않았다. 거의 일주일 가까이를 매일매일 울었다. 두 번째 임신시도까지 거의 반년이 넘게 걸렸다.


 두 번째 임신은 테스트기부터 이상했다. 기뻐도 기뻐할 수가 없었다. 병원예약일이 다가오면서 테스트기에 줄은 점점 흐려졌지만 사라지지는 않았다. 오전에 병원에 갔는데 자궁에 아기는 보이지 않았고, 피검사를 받았다. 회사에서 중요한 회의를 진행하고 있는데 산부인과에서 전화가 왔다. 회의를 끝내고 다시 전화를 걸어보니 자궁 외 임신 같으니 다시 내원하라고 했다. 또 잘못된 거라고? 눈물이 차올랐지만 꾸역꾸역 참고 회의를 마쳤다.


 퇴근 후 병원에 갔더니 아기가 배출될 수 있도록 주사를 맞으라고 해서 주사를 맞았다. 배가 미칠 듯이 아팠고 피도 많이 나왔다. 두어 번 주사를 맞고 나니 잘 배출된 것 같다며, 또 다행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두 번째 임신이 종료되었다.


 어린 나이가 아니니 임신을 준비하면서 이런 일은 흔하게 경험할 수 있다고들 했다. 이런 일들 하나하나에 상처받으면 안 된다고들 했다.


 나이가 많으면 이런 일에도 무뎌져야 하는 걸까. 다른 사람들도 흔하게 경험하는 일들에 상처를 받으면 안 되는 걸까.


 두 번의 경험에서 다른 사람들의 위로는 위로가 되지 않았다. 누군가가 같은 경험을 했었다는 사실 역시 위로가 되지 않았다. 임신테스트기가 무서웠고, 임신이 무서웠다. 포기해야 할 것 같았고, 시도조차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존감이 높은 나였지만 사람들과 이야기할수록 자존감이 무너져 내렸고 실패자같이 느껴졌다.


 남편은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다려주었다.

 내가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다시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며 일상을 종알종알 이야기해 주기를 기다려주었다. 내가 말하지도 않은 나의 기분을 대신 정리하며, 괜찮다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게 가장 큰 위안이 되었다. 아마도 이래서 내가 이 남자랑 결혼을 결심했었구나 싶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잘 위로하지 못한다. 특히 내가 그 사람의 마음도 모르면서 ‘괜찮아’라는 무책임한 위로는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대신 ‘그랬구나, 그런 마음이 들 수 있겠다. 속상하겠다.’와 같이 그 마음에 공감하려고 노력한다.


 아이를 키울 때도 마찬가지 같다.


 속상해서 울고 있는 아이에게 가서 괜찮아라고 말하면 아이는 어쩌면 속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난 이렇게 속상한데 엄마는 괜찮다고?’


 이러한 경험들이 계속해서 쌓이면 아이는 언젠가는 자기 마음에 공감해주지 못하는 엄마에게 자신의 감정을 말하기 꺼려질지도 모른다. 난 그게 제일 무섭다.


 지금은 혼자 잘 여닫지도 못하는 딸의 방문이 최대한 늦게 닫혔으면 좋겠다. 닫혀도 언제나 엄마를 위해서는 기꺼이 문을 열어줬으면 좋겠다. 영혼의 짝을 만나기 전까지는, 아니 어쩌면 그 이후에도 가장 힘든 일을 가장 편하게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엄마였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다양한 실패를 경험하고, 고통을 느낀다. 누군가는 대수롭지 않게 이겨내는 고통에 또 다른 누군가는 복구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상황을 바라보는 위로가 아닌 사람의 감정을 헤아리는 배려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함부로 남의 고통에 괜찮다는 배려 없는 위로를 건네지 말자. 흔하다 할지라도 쉽지 않은 실패와 고통의 경험들이 우리 삶엔 너무나도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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