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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민 Jul 06. 2023

손끝에도 꽃이 피어나길 바라봅니다

 아기를 낳은 지 42일 되는 날 서울로 이사를 했다. 엄마와 srt를 타고 귀여운 아기를 소중히 담아 서울로 와서 새로운 집에 나를 놓아두곤 친정 부모님은 다시 대구로 향했다. 씩씩하게 손을 흔들었지만 마음은 우주에 홀로 떠있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이삿짐을 정리하며 갓 태어난 아기를 돌보고 신랑과 살아가는 날들이 내게 펼쳐졌다. 잘하고 싶었다. 그리고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집과 아이와 신랑을 돌보려 했다. 그리고 얼마 안돼 하루 한두 번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나를 만나게 되었다. 신랑과는 매일 싸웠고 매타임 아기가 잘 자고 있는지 코를 대고 숨소리를 들었다. 공간과 나는 이질감으로 겉돌고 있었고 모든 것이 불편했다. 내 안이 불편하니 어딜 가고 무얼 해도 불편하다는 게 맞는 듯했다. 아 그리고 겨울이라는 계절적 특성이 나를 가두고 있기도 했다. 눈물이 났다. 주룩주룩


 문득 정원을 가꾸는 이들의 영상을 보게 되었고 마음이 조금 살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아픈 허리를 이겨내며 아기띠를 하고 무작정 꽃집을 찾아 나섰다. 낯선 골목들을 헤치고 눈을 반짝이며 길 건너 초록의 식물들이 있는 할머니가 운영하는 꽃집을 찾았다! 만세! 좌판에 나와있는 색색의 꽃들을 보자 마음이 환해졌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베로니아, 시세보다 두세 배는 비쌌다. 아기를 품고 있었고 멀리 가기에는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훗날 허리 디스크 파열이라는 걸 알았지만 그때는 그냥 육아의 한 부분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당장 이 꽃을 곁에 두고 싶었다. 까만 봉지에 담긴 베로니아를 들고 집에 오는 길, 날아갈 듯했다. 그리고 그날부터 눈에 띄는 꽃이 있으면 우리 집이 몇 평이고 어디 두어야 할지 생각지도 않은 채 꽃을 사들고 왔다. 그리고 그 꽃들이 그 겨울의 나를 살렸다.



 그리고 곧 봄이 왔다. 생명력이 터져 나왔고 골목 귀퉁이에서 그리고 옆 빌라 담장에서 식물의 힘과 꽃의 기운을 받으며 나는 서울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40살이 되어도 새로운 곳에서 산다는 건 여러 면에서 마음이 두근거리는 일이었다. 산후우울감일 수도 향수병일 수도 있는 시간들을 건너며 식물에게서 힘을 받았다. 음양오행에서 말하는 목의 생명력과 아로마테라피에서 식물의 다양한 효능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체득하며 역시 인생은 실전임을 다시 한번 느끼고 있다.


 잘 크기를 바라는 정성을 주었다고 생각했지만 가만히 보면 이들의 자라남에 동화되어 나의 생명력이 꿈틀거리며 되려 나를 살리고 있었다. 눈물과 함께한 200일간의 여정을 통해서 엄마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끼고 있다. 새벽녘 비몽사몽간에 젖을 물리는 자동적이고 순수한 사랑을 경험하며 나 또한 그러한 사랑으로 자라났구나 싶은 것이다.


 2023년 봄을 지나며 나의 손끝에도 꽃망울이 터져 나와 저절로 글이 마구마구 써졌으면 좋겠다고 신랑이 들으면 콧방귀를 날릴 생각을 해본다. 살다 보면 아무리 강하고 단단하고 아름다운 사람이라도 마음의 힘이 빠질 때가 있다. 그런데 바람에 흩날리는 아기엄마의 유리멘탈이야 오죽하랴. 다행히 우리에겐 자연이 있고 자연을 담은 식물을 추천해 본다. 식물에게는 힘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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