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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민 Jul 07. 2023

다지는 시간이라 쓰고 버텨내고 있는 중입니다

 결혼과 요가원 인계, 출산 그리고 장거리 이사가 거의 7개월 사이 이루어졌다. 서울로 이사를 앞둔 몇일 전 나보다 먼저 이런 경험을 한 사촌언니와 통화했다. 결혼생활과 육아를 목전에 둔 나에게 “이제부터의 시간은 다져지는 시간이라고 생각해. 지금 신랑과 아이와 가정을 잘 다져놓아야 네가 나중에 사회로 와도 조금은 평안할 거야.” 그리고 정인의 ‘오르막 길’을 추천했다. 그날 영문도 모르고 그 노래를 들으며 몇 시간을 울었다. 정말 왜 눈물이 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원인은 앞으로의 시간들에 놓여있었다. 즉, 앞으로의 시간들을 알아챈 선 눈물 후 사건이랄까.


 요가강사이자 원장이었던 불과 몇 달 전, 나는 날아다녔다. 임신을 했어도 마찬가지였다. 전성기의 하루 6-7타임은 아닐지라도 3-4타임 정도는 당연하게 했고 한두 시간이 걸리는 특강도 마다하지 않았다. 코로나 시즌이지만 대면, 비대면 가리지 않았다. 그전에도 전국의 워크숍을 찾아다니는 것이 일과였다. 그러던 내가 ‘꼼짝 마라’가 되었다.


 정신 차릴 새도 없이 추운 겨울 갓 태어난 아기와 서울이었다.  숨 쉬듯 하던 요가도 할 수 없었다. 매일 아사나를 하던 나는 이삿짐을 정리해야 했고 요가수트라와 해부학 책을 들여다보던 나는 아기에게 수유를 하고 있었다. 매일 듣던 “원장님”이란 호칭은 “제수씨, 수민아, 고은찬어머니” 등등으로 바뀌어 있었다. 샐러드와 선식을 먹던 나는 하루 두 끼의 밥상을 차려내고 있었다. 언제나 삶을 긍정하며 살아내자던 내가 유일하게 나로 존재하는 시간은 샤워를 하는 20-30분이 다였다. 순간순간에 반응하는 ‘무아’ 그 자체였다. 고고하게 ‘무아‘니 어쩌니 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육아를 하며 살랑살랑 유모차를 끌고 다니던 엄마들을 보며 ’ 팔자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이야 하루에 얼마 안 되는 산소호흡하러 나오는 시간인 줄 알지만 말이다.  


100일이 눈코 뜰 새 없이 지나고

200일 즈음에 디스크가 터지며 아기는 혼자 키울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300일을 앞두자 이제야 서서히 정신, 기운, 신체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놀라운 점은 아기를 낳고 얼마 안돼서 알았는데 말이 어눌해지고 기운이 잘 생겨나질 않는다는 거였다. 사회적 역할에 20년을 충실히 살아낸 나로서는 한 프로젝트가 끝나면 잠깐의 휴식기를 가진 후 살아나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처음 살아본 남자와 싸우는 건 당연할 수도 있는 일인데 나오라는 말은 제대로 안 나오고 눈물만 나왔다. 그건 에너지가 전부 소진되어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 200일이 지나서야 알아챘다.


 우는 아기를 데리고 유모차를 끌며 모르는 동네를 하루 두 번씩 거의 매일 돌면서 언제가부터 눈물이 마르고 어떻게든 잘 버텨보자는 다짐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사이 달달한 커피와 색색의 네일팁들을 새벽에 붙여가며 마음을 달랬다. 어떻게 해서든 마음이 힘을 낼 수 있는 것이라면 별을 잡는 마음으로 붙들어 두려했다. 다행인 것은 아기가 커갈수록 회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엔 혼자 빨리 날았지만 이젠 아기와 함께니 느리지만 안락하고, 도파민이 아닌 세르토닌으로 날고 있으니 행복의 노선이 달라지고 있음이 새롭기도 신기하기도 하다.

다져지는 관계이든 버티는 시간이든

소중한 우리의 순간들을 살아내야지싶다.


그래도 아기를 보고 있자면 참 귀엽다.

여전히 결혼을 장려하기는 미흡한 삶이나 아기와의 삶은 분명 가치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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